베니스 비엔날레 취재를 마치고 런던으로 건너가 며칠 머무는 동안, 2014년 재단장했다는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한국관을 찾아갔다. 박물관 깊은 안쪽에 자리잡은 아담한 전시실이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한국관의 달항아리 코너
한국관의 스타는 영국박물관 대표 가이드북에도 나오는 풍만한 유백색 달항아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영혼의 미술관』(2013)에서 “겸허의 이상”으로 소개한 바로 그 달항아리다. 박물관 설명에는 달항아리가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에 따른 금욕, 검소, 순수성의 구현이며, 처음 이 항아리를 구입한 20세기 영국 도예의 주요 인물 버나드 리치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씌어있었다.
달항아리 주변에는 그에 영감을 받은 구본창, 강익중, 이수경 등 현대미술가의 작품과 영국 도예가의 새로운 달항아리가 전시돼 있었다. 좁은 공간을 구획해 쓰기 위해서인지 현대미술이 우르르 유리장 안에 몰려있어서 운치가 떨어지는 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옛 조선 달항아리가 현대와 서구를 아우르는 확장된 시공간적 맥락에서 전시되는 게 무척 좋았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한국관 전경
그러나 기분 좋았던 건 여기까지. 전반적으로 유물이 빈약했고 퀄리티가 상급이 아닌 것이 많았다. 전시의 맥락도 잘 잡혀 있지 않았다. 특히 불화 앞에 김홍도의 <빨래터> 풍속화첩 모사본과 빨래방망이(!)가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헐, 이건 아니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 구석에 조선 사랑방을 재현한 것도 어색했고 그 안에 있는 기물도 사대부의 품위와 은밀한 사치를 보여주기에 역부족이었다.
부근에 있는 일본관과 중국 도자기 역사관을 보니 기분이 더 떨떠름해졌다. 전시실의 규모, 유물의 양과 질에서 한국관과 비교가 안 되게 풍성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시아관의 유물과 작품은 해당국이 기증하거나 대여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영국박물관이 수집하고 소장해온 것이다. 그런 수집품은 오랜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서 쌓여온 것이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중국 도자기관 전경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중국 도자기관 청화백자 코너
중국 도자기관에는 그런 국제교류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유럽과 서아시아가 도기밖에 못 만들던 시절 최초로 중국에서 탄생한 자기, 중국이 서아시아 코발트 안료와 그 무늬를 받아들여 개발한 청화백자, 그 청화백자에 열광한 유럽의 수집벽, 유럽의 에나멜 기법에 반한 청나라 강희제의 장인들이 실험한 채색자기 등등. 이들은 활발한 국제교류가 문화를 어떻게 더 풍부하게 하고 혁신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자기를 생산했고 상감청자 같은 독창적이고 멋진 작품도 개발했는데 왜 중국 외 세계에 적극 수출을 해서 국부를 쌓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는 학교 국사 시간에 이 문제를 토론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저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 말고?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일본관 전경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일본관의 백제관음 모작
한편 영국박물관의 일본관은 기획부터 세심하게 일본 문화사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시 시작부터 그들이 백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 일본 국보 백제관음상 모작과 18세기 일본 전통과 서구 문물의 결합을 보여주는 나전칠기 시계가 등장한다. 그리고 18세기 조선통신사 행렬 그림, 나가사키의 중국인 마을 그림, 일본에 온 네덜란드 선원을 묘사한 미니어처 조각, 유럽 여인을 그린 우키요에 목판화 등등이 국제교류의 역사를 말해준다. 서양화의 영향을 받았던 우키요에가 다시 역으로 19세기 서양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다른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도 지치도록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한국은, 적어도 근대화 이전 몇백 년 간은, 소박한 은둔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와 서로 흥미 없어하는 은둔자 말이다. 영국박물관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 박물관 (요즘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활발한 교류전을 하고 있지만) 등을 볼 때도 그랬다. 세계 주요 박물관에서 한국관이나 섹션을 관람하는 것은 갑자기 머리에 찬물을 맞는 것처럼 세계문화사에서 한국의 위치를 냉정하게 돌아보게 해준다.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에 취한 ‘국뽕’ 역사관에 한 방을 날리는 치료제다.
그렇다고 자국비하 ‘국까’에 빠지게 되지도 않는다. 영국박물관에서 독립된 국가관을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20세기 후반 들어와 한국을 알리려는 각계의 노력과 강해진 국력 덕분에 생긴 것이다. 역사는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의 말대로 “유연한 현재적 기억”이다.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쓰여지는 것, 즉 수많은 유기적으로 얽힌 사건 중에 골라서 쓰여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힘의 논리도 작용한다.
박물관은 유물을 통해 역사를 쓰는 곳이며, 그 유물은 현대 문화예술과의 연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달항아리가 그렇듯이 말이다. 잊혀진 옛 한국문화 한 가지가 현대에 발굴되어 세계 동시대 문화예술에 영향을 준다면 문화사에도 다시 기록된다. 주요 박물관의 한국관은 그런 매개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국위선양’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세계인의 문화를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역사 교육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조건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취하고 그것을 외국인에게 설교하는 게 좋은 일일까? 지난 정부 때 국정교과서를 강력히 반대한 역사학자들 중에, 국정교과서뿐만 아니라 그간 한국의 역사교과서가 민족주의에 매몰되고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을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 학자들이 여럿 있었다. 이제 국정교과서는 폐지될 전망이니, 이 문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