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사오정] 문재인, 피난민 아들에서 대통령까지
조문규 2017. 5. 10. 00:14
인권변호사 이어 '王수석'
盧 비서실장 거쳐 친노 큰형..
10일 별도 취임식 행사 없이
2022년까지 5년 임기 시작
문재인(64) 대통령은 6ㆍ25 전쟁 중이던 지난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도에서 아버지 고 문용형씨와 어머니 강한옥(90)씨 사이에서 2남 3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경도 흥남 출신으로 전쟁 때 월남했다. 부친의 사업 실패 후 어린 문재인은 어머니의 연탄배달을 도우며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1년 펴낸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중략)… 이런 자세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고 썼다.
부산 명문 경남고(25회)를 수석 입학했다. 하지만 술ㆍ담배에 손을 댔고 싸움을 하다 정학도 당했다. 중ㆍ고교 때 별명이 ‘문제아’였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72학번)에 들어갔다.
법대 72학번 문재인은 같은 대학 2년 후배(성악과 74학번)인 김정숙(63) 여사를 지난 1974년 대학 축제 때 파트너로 만났다. 축제 이후 마주칠 때마다 간단히 인사만 했던 두 사람의 본격적인 인연은 이듬해인 1975년 유신반대시위 현장에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9일 JTBC ‘썰전’에 출연, 김정숙 여사와의 만남에 대해 “비상학생총회를 열어서 시국토론 연설을 했다. 선두에 서서 교문을 향해 나가다 가스차의 최루탄을 맞았다. 1m 코앞에서 발사를 했는데 응축된 걸 그대로 맞아 순간적으로 기절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누군가가 김정숙 여사다.
경희대 4학년 때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그의 전과기록에는‘특수공무집행방해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이라는 죄명에 처분일자는 1975년 6월18일로 기록돼 있다. 대학에서도 제적당했다. 강제징집돼 특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에 입대했다. 1978년 2월, 31개월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복학도 취업도 여의치 않았다. 아버지 문용형씨가 돌아가신 뒤 49재를 마친 다음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고시공부에 몰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당에서 공개한 ‘59문59답’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이라는 질문에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잘 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듬해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시위와 공부를 병행하던 당시 문재인은 계엄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1980년 청량리경찰서에서 2차시험 합격증을 받았다. 차석으로 최종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7년 연애한 김정숙 여사와 1981년 결혼했다. 7년동안 김정숙 영부인은 문 대통령의 대학ㆍ감옥ㆍ군대 생활을 함께 했다. 지난 4월3일 더불어민주당의 문 후보와의 ‘59문59답’에서 당시 문 후보는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나”는 질문에 “아내가 먼저 했다. 친구들과 있는데 아내가 와서 갑자기 ‘재인이 너 나랑 결혼 할거야 말거야? 빨리 말해!’라고해서 깜짝 놀라‘알았어’라고 했다”고 답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시위경력으로 인해 희망했던 판사가 되지 못했다. 사법연수원 동기는 고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대법관, 송두관 헌법재판관, 이귀남 법무장관 등이다. 1982년 부산으로 낙향했다.
이곳에서 문재인의 운명을 바꾼 변호사 노무현을 만났다. 1980년대 후반 당시 부산에선 4명의 재야 인권 변호사가 안기부의 요시찰 대상이었다. 김광일ㆍ이흥록ㆍ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이었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을 잘 모르거나 돈이 없어 애태우는 근로자를 돕고자 한다. 상담료는 받지 않는다’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녔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농성 때는 82m의 크레인 꼭대기까지 올라가 변론했다. 주변의 만류에 “거기에 노동자가 있고 나더러 도와 달라 하는데 가봐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2002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위본부장을 맡으며 정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 행사에서 문재인을 소개하면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라고 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정수석으로 끝낸다”는 조건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검은 비닐 봉투에 속옷ㆍ양말만 싸 들고 상경했다. 이후 시민사회수석ㆍ비서실장을 맡았다.
총선 출마 압력을 받자 청와대를 나왔다. 그 사이 스트레스로 치아 10개를 뽑아낼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 이유도 있었지만 그해 4월 총선에 출마하라는 당시 열린우리당의 요구를 거절하며 생긴 불편함도 있었다. 그러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접한 대통령 탄핵 소식에 변호인단 간사로 돌아왔다.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이 2004년 3월 12일 야당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가결됐지만 두달만인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탄핵심판이 기각된 뒤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다. 2004년 7월 제1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문재인(당시 51세) 시민사회수석은 어머니 강한옥(당시 77)씨와 함께 북한에 사는 이모 강병옥(당시 55)씨를 금강산에서 만났다.
2005년 다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 6월까지 역임했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실장이 됐다. 2008년 2월까지 역임하며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처음과 끝을 같이 했다.
문 대통령은 2007년 10월 당시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비서실장을 지내는 동안 가장 보람 있고 컸던 일은 2007년 10월의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북핵문제로 시달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확실한 원칙을 단호하고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대통령의 뜻이 워낙 강하다 보니 공화당 부시 행정부도 결국 대북 강경일변도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문재인은 노무현 국장(國葬)의 상주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 한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재단 상임이사를 거쳐 2대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문재인을 향한 정치참여 압박은 거부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 책 맺음말에서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우리야말로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우리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썼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2011년 9월 결성된 ‘혁신과 통합’을 통해 야권대통합에 참여, 민주통합당 창당에 일조했다.
제19대 총선(부산 사상)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정치시작이유를 밝혔다. 문 의원은 2012년 6월17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7월30일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을 통과, 본 경선에 진출했다. 9월16일에는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야권의 단일화를 위한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TV 토론이 2012년 11월21일 진행됐다. 이후 11월 23일 안철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 사퇴를 선언, 문재인이 야권 단일 후보가 됐다.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섰지만 역대 당선자를 능가하는 득표(1469만 표ㆍ48%)를 하고도 낙선했다. 문재인은 대선에서 패배한 뒤 2013년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노무현을 넘어서는 것이 그의 마지막 부탁이라는것을 안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10개월동안의 대표 재직기간은 수월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창당, 2015년 12월 28일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변경했다. 안철수 당시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015년 12월13일 탈당했다.
문재인 대표에 대한 사퇴요구가 빗발쳤다.‘친문(친 문재인)패권주의’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문 대표 사퇴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당초 100석도 힘들다던 2016년 4ㆍ13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의 제1당이 되자 문 전 대표의 위기론은 대세론으로 바뀌었다.
전국을 돌면서 한번도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참석해오고 있던 지난 2월 11일 15차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통령의 조속한 탄핵을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이 다시 광화문에 모였다. 민심이 바로 헌법이다. 헌재는 이 민심을 잘 받들어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며 탄핵 인용을 거듭 촉구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결정한 3월10일 오후 문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오늘 우리는 헌법 제1조의 숭고하고 준엄한 가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역사는 전진한다. 대한민국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 위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며 “이제 나라를 걱정했던 모든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평화로운 광장의 힘이 통합의 힘으로 승화될 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더욱 자랑스러워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4월 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수도권ㆍ강원ㆍ제주 순회경선 결과를 앞서 진행된 호남ㆍ충청ㆍ영남과 합산한 결과 문 후보는 누적 93만6419표(득표율 57%)로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결선투표없이 본선직행을 확정지었다. 2위는 35만3631표(21.5%)를 얻은 안희정 후보, 3위는 34만7647표(21.2%)를 얻은 이재명 후보였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지난 4월17일부터 여론조사결과공표 마지막날인 5월2일까지 문재인 후보는 여론조사 1등을 한번도 놓치지않았다.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은 41.08%로 1342만3800표(10일 오전 7시 기준)를 얻었다.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10일 낮 12시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국민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盧 비서실장 거쳐 친노 큰형..
10일 별도 취임식 행사 없이
2022년까지 5년 임기 시작
피난민의 아들, 인권변호사, 왕 수석,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실장, 친노의 큰형….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 됐다.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시간을 따라 정리했다.
#가난한 피난민의 아들
#문제아
#1974년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의 만남
#1975년 8월 강제징집 특전사
#1980년 사시 합격
#1981년 결혼
#1982년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 시작
#2002년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2004년 2월 민정수석 사퇴
#2004년 5월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기각
#2004년5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2005년 1월 두번째 청와대 민정수석
#2007년 3월 청와대 비서실장
#2007년 10월 2일~4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2010년 8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1년 6월15일 『문재인의 운명』 출간
#2011년 혁신과통합 상임공동대표
#2012년 6월 17일 대선출마선언
#2012년 9월16일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출
#2012년 11월 23일 야권 단일 대선후보
#2012년12월19일 최다 득표 낙선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로 선출
#2016년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퇴
#2016년 4월13일 위기론에서 대세론으로
#2017년 촛불집회
#3월10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4월3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확정
#4월17일~5월2일 여론조사 1등
#5월9일 제19대 대통령 당선
지난 4월3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당시 문 후보와의 ‘59문59답’에서 58번째 질문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달라지지않을 것이 있다면”이었다. 이에 문 당시 후보는 “광화문에서 국민들과 막걸리 한 잔 하고, 주말에는 아내와 같이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소박한 삶‘이라고 답했다.
글= 조문규 기자, 사진=오종택ㆍ박종근ㆍ김현동ㆍ전민규ㆍ우상조 기자, 중앙포토ㆍ문재인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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