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퇴사하겠습니다
[경향신문]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정년퇴직까지 회사에 다닐 것이다. 이건 책 제목이다.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회사, 아사히신문사를 그만두고 즐겁게 살아가는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를 읽은 건 기업들을 담당하는 기자로서의 ‘직업적 고민’ 때문이었다. “솔직한 인품과 따뜻한 유머가 녹아 있는 글들로, 기자 시절부터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지은이 소개가 부러웠음부터 고백한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기자의 로망이기도 하다.
이나가키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좋은 회사에 들어가 인생이 순탄할 것이라는 가치관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고, 그걸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월급도 많고 인지도도 있고, 이른바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곳”에 취직했다. 그런데 “회사원이라는 인종에게 주어지는 시련” 즉 ‘인사이동’을 당했다. “그럭저럭 자신감도 붙어 젊은 부원들에게만큼은 오만한 보스 기질을 풍기고 있었을” 즈음에 말이다. 일반회사로 따지면 부장이나 임원 때다. “문득 깨닫고 보니 중년기에 접어들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간인지 그렇지 않은 인간인지 선별 대상 연령이 된 것이다.” “한 단계 더 높은 레벨을 꿈꾸던” 그였다. 그러나 “회사라는 것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언제 내게 상처를 줄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되어갔다”면서 “회사란 조직을 두려워하다보면, 이상하거나 부조리하다 싶은 부분이 있어도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맞다.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 간파했듯 자발적으로 자기를 착취하면서 점점 소진돼가는 현대인의 이면(裏面)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직장인 85%가 시달린다는 ‘번아웃’ 증후군은 아마도 “벼랑 끝 위험한 곳에 서서 필사적으로 ‘회사원’인 자신을 지키려고 애쓴” 결과일 수 있다. 이나가키는 “약점이 잡히면 사람들은 쉽게 통제당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해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삼성과 CJ 총수 간 상속 재산 다툼이 번지자 삼성 직원들은 이재현 CJ 회장 미행에 동원됐다. 이때 그들은 “이건 아니다”라고 하지 못했을까. 박근혜·최순실과 함께 재벌 총수들은 정경유착을 되살린 장본이었지만 우리 기업의 별인 재벌사 임원들은 총수의 안위부터 걱정해야 했을까. 총수 구속으로 전격적으로 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엘리트들. 경영실패에도, 횡령이나 폭행으로 죄를 지었어도 연봉 수십억원을 챙겨가는 총수와는 달리 자기 월급 한 푼 자기 손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노동자들.
이런 구조는 혹시 “회사라는 끈을 필사적으로 잡고 있는 회사원들”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회사에서는 “월급쟁이가 어쩌겠어”라며 비민주적 회사 구조를 너무 쉽게 인정해버리는 건 아닐까.
<퇴사하겠습니다>는 사표를 종용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회사 의존도’를 낮추자고 한다. “돈(월급)과 인사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생활을 점검하고 돈 들이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뜻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 말고 무엇이든 좋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봅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독한 ‘회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업의 민주화’도 필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로버트 달은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우리는 기업 내에서도 민주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다. 국가의 통치가 민주주의로 이뤄지듯 기업 내 의사 결정에서도 민주적 절차를 요구하고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이를 앞당길 수 있는 기회다. 이와 더불어 회사라는 끈이 없는 자영업자도, 전업주부도, 취업을 꿈꾸는 청년도 모두가 희망을 펼치는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기회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하겠다.
<산업부 |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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