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리포트] 김광석 노래 들으며 곱창에 한잔 .. 2030 아재들 "취향에 나이가 있나요"

이현 2017. 2. 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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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밥·계란과자 좋아하고
인터넷뱅킹 대신 은행 가서 출금
젊은 애가 왜 그러냐 해도 좋아요
휙휙 변하는 세상, 배울 것 천지인데
여가만큼은 편하게 즐기고 싶어요
나이가 뭐라고 .. 얽매일 필요 있나요

Q: 딸기가 직장에서 잘리면? A: 딸기시럽.

시작은 ‘아재 개그’였습니다. 유행에 뒤처진 썰렁한 말장난을 일삼는, 이른바 ‘부장님 유머’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후 아재는 아무 데나 붙이는 접두사로 진화했습니다. 아재 패션, 아재 취미, 아재 메뉴…. 2030은 불편하고 낡은 기성세대의 문화에 ‘아재’ 두 글자를 붙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세대 담론이 으레 그렇듯 과장된 일반화에 따른 역효과도 생겼습니다. 온전히 개인의 영역인 취향에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겁니다. 세대 차이를 부풀려 강조하면서 소위 ‘아재 취향’인 2030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복학했는데 한번 아재 소리 들으니까 뭘 해도 아재래. 순대국밥 먹는다고 아재, 계란 과자 들고 와도 옛날 과자 먹는다고 아재.” “제 나이 서른둘인데 아재인가요? 여자친구는 스물아홉인데 제게 아재래요.”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 넘쳐납니다. 혹시 ‘나도 아재로 보이지는 않을까’ 마음 졸인 적 있으신가요? 청춘리포트에서 자타 공인 ‘아재’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와인은 회사 들어와서 처음 먹어봤죠
입맛부터 외모까지 ‘아재’ 소리 듣는 추근호씨. 추씨 SNS에는 아저씨 입맛 음식 사진이 가득하다. 아예 #아재스타그램 해시태그도….
회사원 추근호(31)씨는 대학생 때부터 소문난 아재다. 추씨의 SNS에는 닭갈비·회·곱창·파전 등 ‘아재 입맛’을 저격하는 음식 사진이 넘쳐난다. 아예 ‘#아재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단 글도 있다. 와인은 입사 후 회식 때 처음 먹어봤다는 추씨. 얼마 전엔 올겨울 2030 사이에 유행인 패딩을 사 입고 출근했다가 선배들로부터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왔다”며 놀림을 받았다. 추씨는 “외근이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업무 특성상 ‘컨템포러리’해 보이려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대학 땐 학비를 벌어 가며 공부하느라 외모를 꾸미거나 세련된 취미를 개발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아재 이미지가 굳어졌다. 주중에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주말에는 아재다운 모습으로 오랜 벗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추씨의 낙이다.

(서른하나 근호씨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 오래된 친구들과 회 한 접시, 막걸리 한잔)

━ ◆설산에서 주스 한 잔, 그 맛 아세요?
2박3일 설악산 등산을 다녀온 유희원씨. 산에서 주스 마시며 사진 찍어 SNS에 올리는 게 취미.
유희원(28)씨는 지난주 눈 쌓인 설악산 대청봉에 다녀왔다. 유씨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근교 산행을, 1년에 한 번은 며칠이 걸리는 겨울 산 등반이나 종주에 나선다. 로프와 며칠 치 식량, 텐트를 구겨 넣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지나가면 다들 “히말라야라도 가느냐”며 놀란다. 산에서 며칠씩 지내려면 먹는 것, 자는 것, 야생동물 대처법 등 모두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씨는 “나 자신을 오롯이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게 등산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유씨는 “부모님 세대가 젊었을 때는 등산이 하나의 문화였다. 요즘은 다른 놀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산에 가면 전부 아줌마·아저씨뿐”이라고 말했다.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친구들을 산에 데리고 가봤지만, 친구들의 등산화는 그 후 신발장 밖으로 다시 나오지 못했다. 유씨는 “등산이 확실히 아재 감성의 취미이긴 하다. 그래도 청개구리처럼 남들이 안 가는 길을 혼자 간다는 생각에 자꾸만 산에 가게 된다”고 했다.

(스물여덟 희원씨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산을 오르다 숨을 고르며 주스 한 모금 마실 때)

━ ◆핀테크 어떻게 믿나요
스마트폰 인터넷뱅킹 이용 안 해서 틈날 때마다 ATM 찾는 김인경(가명 요청)씨.
김인경(29·가명)씨는 인터넷뱅킹을 해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 한 번 하지 않았다. 돈을 부쳐야 할 때면 근처에 있는 은행을 이용한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인터넷뱅킹에 가입시켰지만 아직 OTP(일회용 비밀번호 발급기)를 발급받지 않아 무용지물이다. 김씨는 대학에서 IT를 전공했다. 그가 전자금융거래를 거부하는 건 IT 지식과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유출될까 막연히 불안해서”다. 불편한 순간도 많다. 얼마 전 회사 동료에게 부의금 봉투 배달을 부탁하려다 현금이 없어 돈을 빌렸다. 하필 현금인출카드가 연결된 계좌의 잔액이 부족했던 데다 출근할 때 현금도 챙겨 나오지 않아 돈을 갚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김씨는 “젊은 애가 유별나다는 얘기도 듣지만, 어른들과 묘한 공감대도 형성되고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며 “몸이 불편한 것보다 마음이 불안한 게 더 싫다”고 말했다.

(스물아홉 인경씨의 거래 방식: 현금, 현장 결제)

━ ◆90년대 가요는 전주만 들어도 알아요
90년대 가요를 즐겨 듣는 이종환씨의 플레이리스트와 옛 노래를 담은 CD.
신해철, 푸른하늘, 더블루…. 이종환(35)씨 스마트폰의 음악 재생목록은 90년대에 멈춰 있다. 스무 살 때 유학길에 오르며 한국의 최신가요와 멀어졌고, 중·고등학교 때 즐겨 찾던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귀가 길들여졌다. 90년대 가요와 팝을 녹음한 CD 수십 장과 미니컴포넌트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이씨는 “요즘 유행하는 음악은 중독성 강한 멜로디 위주라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데, 옛날 노래는 멜로디도 아름답고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잘 아는 노래라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가 변하는 속도가 빨라 새로 배울 것투성이인데, 아이돌 노래는 낯설기만 해 음악조차도 새로 습득해야 할 스트레스 같다”고 덧붙였다.

(서른다섯, 종환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더블루 ‘너만을 느끼며’)

━ ◆아재는 맞는데, 꼰대는 아닙니다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먹기를 좋아하는 이종원씨. 5년 전 단골집에서 찍은 사진.
이종원(32)씨도 “음악은 김광석, 술은 막걸리”라 외치는 자타 공인 아재다. “20대부터 다닌 단골 포장마차”라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앞에는 양은 막걸리잔, 뒤에는 낙서로 도배된 벽을 두고 스물일곱의 이씨가 앉아 있다. 그는 “어쨌든 누구나 아저씨가 된다. 아재로 불리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단 “아재가 모두 꼰대는 아니다”며 둘을 꼭 구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재는 남들을 편하게 품어주는 느낌인 반면, 꼰대는 남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는 ‘불편한 아저씨’라는 것이다.

(서른둘 종원씨가 좋아하는 단골집: 벽이 낙서투성이인 실내 포장마차)

이른 나이에 ‘아재’ 소리를 듣게 된 이들의 공통점은 요즘 유행하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정신이 강하다는 점이다. 유희원씨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등산하러 다닌 추억 때문에 산에 재미를 붙였다. 이종원씨도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변진섭·이문세를 듣고, 스무 살이 돼선 막걸리를 마시다 자연스레 젊은 아재가 됐다. ‘여가시간만큼은 익숙한 대로, 편한 대로 보내자’는 생각이 이들을 아재의 길로 인도했다.

최근 ‘아재미(美)’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인기 아이돌 김세정의 아저씨 같은 말투와 행동이 평범한 이웃 아저씨처럼 털털하고 수더분해 보기 좋다며 나온 말이다. 아재에 아름다울 미까지 붙으니 세대론의 의미는 희미해져 버렸다. 사실 처음부터 ‘아재’는 기성세대의 성향을 부각시키기 위한 이름 짓기였을 뿐, 나이가 많다거나 젊다고 “꼭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아재가 된 X세대 … 지금 2030은 삼포세대·촛불세대

「세대 담론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 1920년대 청년층은 ‘모던세대’로 불렸다. 기성세대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을 계몽·민족·독립에는 관심 없고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소비집단이라고 비판했다.

그 시대를 좌우한 사회적 요인에 따라 어떤 때는 세대의 특징을 정치 성향에서, 어떤 때는 경제 사정에서 찾기도 했다. 19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인구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산업화를 겪으며 경제적 생존을 우선시했던 세대로, 통기타·청바지· 장발·미니스커트 같은 청년문화를 만들었다. 90~2000년대 등장한 ‘386세대(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 다닌 당시 30대)’는 정치적 성향이 특징이었다. 대학 때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한국 정치의 주요 담론을 생산했다.

세대론이 날개를 단 것은 ‘신세대’의 등장부터다. 70년대 이후 태어난 신세대에겐 경우에 따라 ‘오렌지족’이나 ‘X세대’ 등의 별칭도 붙었다. 개성과 탈권위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지만, 풍요하게 자란 젊은 층의 소비를 부추기려 마케팅 업계가 세대론을 부풀린 측면도 있다. 실제 신세대는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취업대란, 부동산 거품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IMF 세대’이기도 하며, 이제는 나이를 먹고 ‘아재’ 세대가 됐다.

2000년대엔 ‘광장세대’ ‘촛불세대’ 등 희망적인 뉘앙스의 세대명 못지않게 비정규직이 양산돼 평균 월급이 88만원밖에 안 된다는 ‘88만원 세대’, 돈이 없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등 비관적인 이름도 등장했다. 『세대문화』의 저자 주창윤 서울여대 교수는 “지금 청년세대는 저성장, 고용 불안이 길어지고 양극화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은 깊어져 ‘정서적 허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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