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은퇴, 해태 출신 현역 선수 누가 남았나

유병민 2017. 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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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유병민]
프로야구 최초의 '왕조'는 해태 타이거즈가 건설했다.

1983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무려 아홉 차례 정상에 올랐다. 새빨간 상의와 검은 하의, 강렬한 해태 유니폼은 상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사태로 모기업 해태제과가 자금난에 빠졌고, 해태그룹이 해체되면서 팀 존속에 어려움을 겪었다. 재정난 속에 주력 선수들이 잇따라 떠나면서 1998년 이후 3년 연속 승률 5할에 미치지 못했다. 창단 이래 최악의 승률(0.442)을 기록한 2000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결국 KIA에 인수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타이거즈'라는 이름은 남았다. 프로야구 역사상 매각된 구단의 이름을 승계한 새 주인은 KIA뿐이다. 선수들도 여전히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른다. 2017년 KBO 리그 그라운드를 밟는 해태 출신 선수는 이호준(41·NC)을 비롯해 임창용(41·KIA), 차일목(36)·김경언(35·이상 한화), 정성훈(37·LG), 강영식(36·롯데) 등 6명뿐이다. 내년에 한 명은 확실히 줄어든다. 이호준이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해태 출신 현역 선수'라는 단어가 프로야구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해태 왕조 일원 이호준·임창용

이호준과 임창용은 각각 1994년과 1995년에 해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은 닮았지만 주전 도약 시기는 달랐다. 투수로 입단한 이호준은 1996년 타자로 전향했지만,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팀이 한창 어려움을 겪던 1998년 그는 121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3·19홈런·77타점을 올리며 입단 5년 만에 이름을 알렸다. 임창용은 입단 2년 차인 1996년 꿈틀대는 사이드암 강속구를 뿌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듬해 14승 26세이브로 활약하며 해태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고, 1998년 34세이브를 따내며 리그 최강의 마무리로 군림했다.

해태와 인연은 더 이어 가지 못했다. 임창용은 1999년, 이호준은 2000년 나란히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임창용은 양준혁의 트레이드 파트너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푸른 유니폼을 입었지만 임창용은 변함없었다. 1999·2000시즌 각각 38·30세이브를 따내며 3년 연속 30세이브를 기록했다. 2001년 선발로 전환한 임창용은 그해 14승으로 단숨에 에이스 투수로 등극했다. 2002년에 17승과 2003년에 13승을 거뒀고, 2004년 다시 마무리로 복귀해 36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호준은 2000년 성영재의 맞상대로 SK에 트레이드됐다. 야구 인생 2막을 활짝 열었다. 2002시즌 23개 홈런을 기록한 이호준은 2003년 데뷔 후 처음으로 30홈런(36개)·100타점(102개)을 달성하며 SK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이듬해엔 타율 0.280·30홈런·112타점으로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 기록을 세웠다. 2007년엔 SK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책임지며 FA 대박까지 쳤다.

아픔도 겪었다. 임창용은 2005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후유증을 겪으며 2006~2007시즌은 부진했다. 이호준은 FA 계약 첫해인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해 8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9년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 2010년에도 또 한번 무릎 부상을 당해 입지가 좁아졌다.

둘은 도전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임창용은 2008년 일본 무대 진출을 선언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했지만 그는 부활했다. 5시즌 동안 11승13패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로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 2014년 삼성으로 복귀한 그는 2년 연속 30세이브 이상을 따내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지난해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은퇴 위기에 놓였지만, 징계를 소화하고 고향팀 KIA에 복귀해 다시 강속구를 뿌리고 있다.

이호준은 2012시즌을 마친 뒤 두 번째 FA 계약을 통해 NC로 이적했다. 그리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3시즌부터 4년 연속 20홈런을 때려 내며 9구단 NC에 '경험'을 더했다. 지난해도 타율 0.298·21홈런·87타점으로 중심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나성범-에릭 테임즈-이호준-박석민으로 이어지는 막강 타선을 이끌며 NC를 창단 첫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려놨다.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신인 못지않은 힘을 보여 줬다. 그리고 올해 현역으로 마지막 시즌을 뛴다.

◇ 해태와 짧은 인연, 정성훈·강영식

정성훈과 강영식은 해태와 추억이 짧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정성훈은 1999년 해태 1차 지명으로 프로 첫발을 뗐다. 데뷔 첫해부터 타격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그는 1999시즌 108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2(366타수 107안타)·7홈런·39타점을 올렸다. 팀이 KIA로 바뀐 2001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주춤했지만, 이듬해 데뷔 첫 3할 타율(0.312)을 달성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바로 팀을 떠나야 했다. 정성훈은 박재홍의 트레이드 대상자가 되면서 현대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정성훈은 현대와 LG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해태 시절 포함 지난해까지 18시즌을 뛰며 통산 2020경기에서 타율 0.293·164홈런·939타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2000안타를 달성한 그는 우타자 최초 2000경기-2000안타 대기록을 작성했다. 올해 정성훈은 야구 인생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2009년과 2012년 두 차례 FA 대박을 터뜨렸지만, 올해 세 번째 권리 행사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역으로 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그는 LG와 계약 기간을 놓고 줄다리기하고 있다.

대구 상원고 출신 강영식은 2000년 해태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타이거즈 일원이 됐다. 데뷔 첫해 1군 무대를 밟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7경기에 등판해 4패 1홀드 평균자책점 6.99에 그쳤다. 해태와 인연은 1년 만에 끝났다. 강영식은 2001년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다. 당시 김응용 감독이 강영식을 함께 데려갔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2007년 다시 트레이드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필승조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꾸준한 활약을 펼친 끝에 2013시즌을 마친 뒤 FA 계약(4년 17억원)에 성공했다.

◇ 지명은 해태 가슴엔 KIA, 차일목·김경언

차일목과 김경언은 남은 해태 출신 현역 선수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타이거즈' 일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해태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없다.

차일목은 1999년 해태의 2차 5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가 아닌 대학을 택했고, 홍익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차일목이 대학 시절을 보내는 사이 해태는 사라졌다. '타이거즈'는 KIA가 물려받았다. 차일목은 대학 졸업 후 KIA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김상훈과 함께 팀의 안방을 지켰고, 2009년 통산 열 번째 우승에 힘을 보탰다. 2010년 이후 하향세를 겪은 차일목은 지난해 한화로 이적해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김경언은 2000년 열린 2001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 15순위로 뽑혔다. 그를 지명한 팀은 해태였다. 그러나 김경언이 프로 데뷔를 앞둔 시점에서 해태 구단은 KIA에게 인수됐다. 드래프트장에서 입은 해태 유니폼이 마지막이 됐다. 김경언은 2010년까지 백업 외야수에 그쳤다. 2010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뒤에도 네 시즌 동안 평범한 선수였다. 그러나 32세던 2014년부터 타격에 눈을 뜬 뒤 한화의 주력 외야수로 활약 중이다.

유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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