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년 계약직..며칠 전 계약만료예고통지서를 받다

홍경석 2016. 11. 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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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의 비애

[오마이뉴스홍경석 기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회사로부터 <계약만료예고통지서>를 받았다. 1년 단위의 계약직인지라 우린 이를 일컬어 살생부(殺生簿)라 부른다. 여기에 우울한 사인을 하고 퇴근을 하자니 비루한 내 직업에 새삼 회의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이 엄동설한의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릴 판인데......!' 그래서 대전역에서 내린 뒤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가격도 착한 순대국밥 집을 찾았다. 뜨겁고 뽀얀 국물에 소주를 두 병 비우니 비로소 마음이 평정(平靜)되는 듯 했다.

하지만 '계약만료예고통지서'란 어떤 살생부의 아픈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살생부'를 떠올리자면 한명회(韓明澮, 1415~1487)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는 조선시대 '계유정난'의 설계자였다. 또한 수양대군을 도와 출세가도를 달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딸을 예종과 성종에게 왕비로 들이면서 당대 권력의 정점에서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한다. '계유정난' 당시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정적으로 지목된 인물들을 처단하고자 명부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살생부'다.

한명회는 죽일 자와 살려둘 자의 명부를 적은 그 살생부를 가지고 김종서와 황보인 등 수많은 조정대신들을 참살한다. 그는 만년에 한강변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한데 한명회는 그곳에서 과연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한명회는 죽은 지 17년 후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 씨에 관련되어 무덤에서 꺼내져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에 처해진다. 따라서 그가 생전엔 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위세가 등등(騰騰)했을망정 정작 자신의 사후는 예측하지 못 했다는 한계가 도출되는 셈이다.

또한 그걸 알았더라면 감히 그러한 '쿠데타'는 일으키지 못 했으리라. 어쨌거나 한명회는 한명회고 나는 나였다. 그가 호화호식에 출세의 날개까지 달고 세상사까지를 좌지우지했다지만 나라는 필부는 기껏 박봉의 직장 재계약에도 목을 걸어야 한다.

물론 딱히 근무 평점이 나쁘지 않은지라 재계약이 이뤄질 공산은 매우 높다. 그렇기 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마치 연례행사인 양 계약만료예고통지서를 받아야 하고, 또한 여기에 사인까지 해야 한다는 건 분명 어떤 인권적 모욕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홧술이다 보니 술은 맹물처럼 뱃속으로 철철 잘도 흘러 들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 중앙시장에서 술 한 잔 먹고 들어가려는데 당신 야식으로 순대 좀 사다줄까?'

그러나 아내는 싫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에 6천 원짜리 전기구이 통닭을 한 마리 샀다. 털까지 죄 뽑혀서 쪼그라든 통닭이 마치 나를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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