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사람 없던 젊은 부부.. 학대의 대물림이 비극으로

신지후 2016. 11. 7.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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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끄럽게 운다며 생후 3개월된 딸을 아버지가 방바닥에 떨어뜨려 죽인 부천 영아 살해사건(2016년 3월), 가출했다는 이유로 폭행 끝에 딸을 살해한 뒤 11개월 동안 집안에 방치했던 부천 여중생 학대ㆍ살해 사건(2015년 3월) 등 최근 그 횟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성호가 2세가 된 2007년 5월부터 최씨는 주먹이나 팔, 파리채 손잡이 등으로 아들의 얼굴과 엉덩이를 때렸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둘째 아이를 때리지 않고 길렀다는 건 사실일 수 있으나 부모의 기본적 태도가 다르다고 보긴 어렵다. 오빠가 맞는 걸 보며 자란 딸에 대한 학대 죄도 인정된 만큼 성인이 될 때까지 기관에서 보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어릴 때 나도 맞아봤지만 병원에 간 적이 없다"(최씨), "부모가 다른 형제들만큼 나를 챙겨줬더라면"(한씨)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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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부모.. 아이들이 죽어 간다] <상> 나는 왜 살인자가 되었나
게티이미지뱅크

1. ‘부천 초등생 아들 살해’ 재구성

아빠, 전과 생겨 일자리 끊긴 후

자신 경험대로 체벌로 훈육시켜

엄마, 사회생활 치여 저지 못 해

폭행 횟수 심해지자 되레 무뎌져

2. 자녀 살해 부모, 2030세대 많아

결혼 반대 부모와 사이 멀어지고

서로에게만 의존해 친구도 없어

“경제문제 등 처지에 극단적 행동”

아이들이 죽어간다. 그것도 제 부모 손에. 시끄럽게 운다며 생후 3개월된 딸을 아버지가 방바닥에 떨어뜨려 죽인 부천 영아 살해사건(2016년 3월), 가출했다는 이유로 폭행 끝에 딸을 살해한 뒤 11개월 동안 집안에 방치했던 부천 여중생 학대ㆍ살해 사건(2015년 3월) 등 최근 그 횟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제 살과 피가 이어진, 이 땅의 일원으로 자랄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는 공교롭게 거의 2030세대다. 용서할 수 없는 패륜이라고 욕하고 남 일이라고 고개를 돌려버리기엔 못다 핀 생명이 너무 가엽다. 그래서 먹먹하고 끔찍하지만 가족의 사연을 끄집어낸다. 비극을 막을 수는 없는지, 공동체가 할 일은 없는지 함께 나누기 위해.

1월 세상에 알려진 ‘부천 초등생 아들 살해 및 시신 훼손 사건’ 피고인이자 아이의 엄마인 한모(34)씨는 8개월 간 침묵했다.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 이후 8월 29일 열린 항소심에서 엄마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씨는 법정에서 “둘째인 딸(9)만은 제대로 키우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절규했다. 6일 경찰 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과 변호인, 재판부의 입을 빌어 한씨의 얘기를 재구성했다.

2004년 22세였던 한씨가 임신하면서 최모(34)씨와 동거를 했다. 당시 최씨는 유년시절 대부분을 아버지 없이 지냈고 홀어머니와도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이듬해 5월 성호(가명)가 태어나자 최씨는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을 해보겠다며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렸다.

애초 결혼을 반대했던 양가 친지는 물질적 지원을 꺼렸다. 관계도 멀어졌다. 설상가상 최씨는 결혼 전 저지른 사기 범죄로 2005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전과가 생기자 일자리도 끊겼다. 2007년 계획에 없던 둘째가 태어나자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한씨가 콜 센터 상담원으로 매달 버는 150만원 안팎의 수입은 빚을 갚으면서 네 식구를 먹여 살리기엔 부족했다.

육아를 떠안은 아빠 최씨의 짜증은 늘어만 갔다. 성호는 또래처럼 동생이 태어난 이후 식탐과 투정이 늘었다. 변변한 육아 교육을 받지 못한 최씨는 체벌을 택했다. 성호가 2세가 된 2007년 5월부터 최씨는 주먹이나 팔, 파리채 손잡이 등으로 아들의 얼굴과 엉덩이를 때렸다. 성호의 고집이 늘수록 최씨의 매질도 거세졌다. 밥도 굶겼다.

엄마 한씨는 사회생활에 치여, 둘째를 챙기느라 남편을 제대로 나무라지 못했다. 폭행의 강도와 횟수가 심해지고 늘어가자 되레 무뎌졌다. “폭행은 일상이 된 것”(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이다. 최씨가 육아를 핑계로 군 입대를 미루다 2011년 병역법위반으로 수배돼 아예 칩거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2012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성호는 짝꿍의 얼굴을 연필로 찌르고 옷에 낙서를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아빠의 폭행성향을 물려받은 것이다. 피해 학생 부모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아예 성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성호를 때리는 일은 더 잦아졌다. 아빠와 아들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집안에만 틀어박혔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2012년 10월 말 성호가 목욕을 하기 싫다고 투정하자 최씨는 성호를 욕실에 내동댕이쳤다. 턱이 바닥에 부딪힌 성호는 한참이나 정신을 잃었고 이후 혼자 거동을 하지 못하고 먹기만 하면 설사를 했다. 수배 중이라 잡힐까 봐, 학대행위가 알려질까 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아내 한씨도 동조했다. “두려움이 부부를 압도했던”(담당경찰) 것이다.

최씨는 매일 만취했다. 깜빡 기억을 잃고 자해를 하는 등 알코올중독 증세도 있었다. 성호가 조금 나아지자 만화를 보여주는 등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도 했지만 이내 또 이유 없이 아이를 때렸다. 엄마 한씨는 퇴근 후에나 아들을 간호했다. 성호는 2012년 11월 3일 숨졌다. 고작 7년을 산 아이의 당시 몸무게는 또래 정상체중보다 8㎏ 적은 16㎏이었다.

공포의 늪에 빠진 부모는 몹쓸 선택을 한다. 둘째 만이라도 제대로 키우겠다는 뒤틀린 기대는 숨진 아들의 몸마저 훼손시키는 죄악으로 치달았다. 시신 일부는 근처 공중화장실 등에 버리고 아이의 신원이 드러날만한 일부는 집 냉동실에 보관했다. 자녀 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2015년 말 교육당국이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부부의 범죄 행각도 4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부부는 간절히 바랐던 딸의 친권마저 박탈당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 당한 셈이다. 딸은 현재 인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져 생활하는 중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둘째 아이를 때리지 않고 길렀다는 건 사실일 수 있으나 부모의 기본적 태도가 다르다고 보긴 어렵다. 오빠가 맞는 걸 보며 자란 딸에 대한 학대 죄도 인정된 만큼 성인이 될 때까지 기관에서 보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엄마 한씨는 상고를 포기했고, 아빠 최씨는 대법원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부부를 수 차례 대면한 경찰과 변호사들은 이들을 “고립된 섬”이라고 표현했다. 결혼을 반대한 양가 부모와는 일찌감치 사이가 멀어졌고, 서로에게만 의존하다 보니 친구도 거의 없었다. 한씨는 고민을 털어놓을만한 직장 동료도 없었다. 숨어 지내던 최씨 사정은 더했다. “부부 중 누구라도 외부에 기댈 사람이 있었다면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한씨 1심 변호인)이다.

대물림 된 학대와 방임의 기억은 이들 부부를 옥죄었다. 부부는 “어릴 때 나도 맞아봤지만 병원에 간 적이 없다”(최씨), “부모가 다른 형제들만큼 나를 챙겨줬더라면”(한씨)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이 경험한대로 체벌을 훈육방식이라 여겨 죄책감이 덜했고 폐쇄적인 믿음이 굳어졌다”(권 팀장)는 것이다.

관계 단절, 경제적 어려움, 육아 스트레스, 학대의 기억 등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해도 대부분 부모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진 않는다. 어쩌면 이들 부부가 털어놓은 얘기들은 한낱 변명과 뒤늦은 후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에겐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 찬찬히 고민해야 할 숙제가 남겨졌다. 성호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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