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기억을 잃어도 이 남자의 매력은 끝이 없지! '럭키' 유해진
![`럭키` 유해진 [사진 쇼박스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10/14/joongang/20161014000420472eshm.jpg)
![[사진 쇼박스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10/14/joongang/20161014000420694qqmh.jpg)
Q : 누가 뭐래도 ‘럭키’는 ‘유해진의 영화’라 할 만하네요. 영화를 직접 보니 어떠셨어요.
A : “아우,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제 연기를 평가하겠어요. 관객이 어떻게 봐 줄지 궁금할 뿐이죠. 다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영화로 만들면 분명 재미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유머도 있고 ‘하찮은 인생이란 없다’는 메시지를 슬쩍 던져 주는 점도 좋았고요.”
Q : 그 웃음의 대부분이 배우 유해진의 매력에서 나오잖아요. 킬러였던 형욱이 과거 기억을 잃은 채 분식점에서 일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워낙 칼을 다루는 데 능숙한 사람이다 보니, 김밥을 썰어도 예술이고. 본인은 심각한데, 정작 보는 사람은 그 모습이 너무 웃긴 거예요.
A : “그럼요, 저는 진지해야죠. 그동안 코믹한 연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코미디영화는 절대 ‘코미디’로 접근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극’이라 생각하죠. 가벼운 말장난보다 상황이 자아내는 웃음을 ‘진짜’라고 보니까요. 그러려면 먼저 배우가 그 상황을 진심으로 믿어야 해요.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 이석훈 감독, 이하 ‘해적’)을 예로 들면, 저는 그 영화에서 전직 해적 철봉 역을 맡았잖아요. 산적들 앞에서 고래를 설명하는 저는 장면이 히트를 쳤고요. 그 장면을 연기할 때 웃기려 했을까요? 아니요, 정말 진지했어요. 배우가 ‘어떻게 웃길까’에만 신경 쓰면 관객이 먼저 눈치채요.”
Q : 그래도 코믹한 장면을 찍다 보면, 웃겨서 NG가 나기도 하지 않나요.
A : “나이가 드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왜 그렇게 웃긴지 모르겠어요. 형욱이 분식점에서 일하는 장면을 찍는데, 혼자 너무 웃겨서 웃음 참느라 혼났어요. 엄청 비장하게 칼질하더니 기껏 내놓는 게 아기자기한 김밥이잖아요. 그 설정이 왜 그리 웃긴지….”
Q : 그런 장면에서는 애드리브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A : "음…, 사실 애드리브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에요. 철저히 준비한 후 연기하는 걸 훨씬 좋아하거든요. 애드리브는 상대 배우와의 약속을 깨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연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 진짜 편하게 한 번 해 보자’ 하는 경우는 있죠. 이계벽 감독님은 워낙 배려심이 많고 넉넉한 사람이라, 무엇이든 충분히 논의하고 진행할 수 있었어요.”
Q : 유머도 유머지만, 무명 배우로 새롭게 살아가는 형욱의 모습이 무척 짠했어요. 이를테면 엑스트라 아르바이트하려던 그가 끌려가듯 차에 실려 사극 촬영장으로 향하는 장면이요.
A : “제가 직접 겪은 일이다 보니 감정 이입이 잘됐고, 그게 관객에게도 전해지겠죠. 영화 속 옥탑방이 제가 20대를 보낸 서울 아현동 옥탑방과 너무 흡사해서 더 옛 생각났어요. 그 시절에는 돈이 없어 친구네 집에 얹혀살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A : “그럴리가요. 그 시간은 너무 진한 기억이에요. 극단 생활까지 합하면 30년 정도 배우로 살았으니, 무명 시절이 꽤 길었어요. 그걸 어떻게 잊어요. 아우, 아직도 너무 또렷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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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기억을 잃기 전의 킬러 형욱과 기억을 잃은 후의 무명 배우 형욱은, 분명 같지만 다른 인물이죠. 연기 톤을 잡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A : “기억을 잃은 것이지, 사람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재성으로서의 삶’에 점차 익숙해지는 형욱의 모습을 표현하되 급작스러운 캐릭터 변화는 피했죠.”
Q : 만약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남아 있을 ‘유해진만의 것’은 무엇일까요.
A : “모두 사라져도 ‘예민함’은 남을 것 같아요. 아마 쉴 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로든 가서 땀 흘리는 습관도 남아 있겠죠? 아우, 사실 예민함은 참 징글징글해요. 평소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중요한 촬영을 앞두면 ‘이걸 어쩌나’ 싶어 잠 못 이루죠.”
Q :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A : “에이, 완벽주의라기보다…, 직업병이에요. 아마 배우라면 누구나 그럴 거예요. 힘든 상황에서도 늘 여유를 지키는 (손)현주 형 같은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부럽죠.”
Q : 그렇다면 형욱과 재성의 경우처럼, 누군가와 인생을 바꿔 살아 보고 싶은 적도 있었나요.
A : “아뇨. 삶은 누구에게나 힘든 거니까, 다른 이의 인생 역시 힘들겠죠. 저는 스스로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늘 감사하죠. 철딱서니 없이 친구들과 낄낄대던 10대 시절이 종종 그립긴 하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A : “모든 것을 잃었다기보다, 너무나 막막하고 힘들었던 순간이 오히려 약이 된 경험은 있죠. 가끔 캐릭터의 감정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이해하지 못하니 표현할 수도 없죠. 그럴 때 상당히 외로워요. 어느 누구도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도망치고 싶어져요. 그런데 그런 연기를 어찌어찌 해내면 ‘물러서지 않기를 잘했구나’ 싶어요.”
![[사진 쇼박스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10/14/joongang/20161014000421063cjps.jpg)
Q : 최근에는 어떤 영화가 그랬나요.
A : “‘이끼’(2010, 강우석 감독)요. ‘덕천’이라는 인물은,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매번 횡설수설하는데도 그 말에 뼈가 있거든요. 이 역할을 도대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패닉에 빠져서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연극하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걸어다니며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렇게 보름 동안 준비했어요. ‘이끼’처럼 몰입도가 높아야 하는 촬영 현장에서 NG를 내면, 그 감정을 도저히 다시 잡기가 어렵거든요.”
Q : 요즘도 그렇게 연습하나요.
A : “아, 매번 그렇게 제주도에 가는 건 아니에요. 하하.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항상 그 인물과 장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파고들죠.”
Q : 무척 성실한 것 같아요.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2015~ 2016, tvN)에서도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서 걷고 뛰고.
A : “성실하다기보다 땀 흘리는 걸 좋아해요. 요즘 ‘택시운전사’(장훈 감독)를 찍고 있는데, 굉장히 깊은 산속에서 촬영해요. 아무리 바빠도 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꼭 한 바퀴씩 뛰어요. 하하. 일이 없을 때도 아침마다 산이든 강이든 가는 편이에요. 그런 다음에 밥 먹고, 극장이나 교보문고에 가죠. 서울 삼청동 골목을 걷다가 커피를 마시기도 해요. 저녁에는 주로 사람들 만나고.”
Q :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워낙 배우 유해진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A : “필요로 하는 곳도 많지만, 버려질 때도 많아요. 으하하.”
Q : ‘럭키’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A : “와아, 활기가 돌았죠. ‘해적’ 촬영 현장이 몸에 좋은 들깨탕 같았다면, ‘럭키’는 샐러드 같았어요. 상큼하고 푸릇푸릇하고. 이준은 굉장히 열심히 연기하는 친구였어요. 오히려 제가 배울 것이 많을 만큼. 액션신이 끝나면 모니터링을 꼼꼼히 하더라고요.”
Q : 이제 촬영 현장에서 많은 배우들에게 선배 역할도 해야겠어요.
A :
“아무래도 후배들과 함께 있으면 이런저런 조언을 하게 돼요. 그런데 정말 조언하는 것에서 그쳐요. 배우에게는 각자의 연기 플랜이 있으니까. 또 연기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요즘은 필름이 아닌 디지털 시대잖아요. 예전보다 배우로서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죠. 그런 기회가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후배들이 조금 더 도전해 줬으면 좋겠다 싶기는 해요. 하지만 절대 강요하지는 않아요, 아무리 답답해도.”
Q : ‘꼰대’처럼 보일까 봐 두려운 게 아닐까요.
A : “맞아요, 꼰대! 딱 그 단어죠. 정말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꼰대가 되기는 싫어서, 후배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더 조심하죠.”
Q : 지금까지 30여 년을 무대 위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보냈어요. 앞으로도 그 이상의 시간만큼 배우 유해진을 볼 수 있겠죠?
A : “모르죠, 뭐. 으하하. ‘충분히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잘 걸어가고 싶어요.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어차피 상황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이런 원칙은 가지고 있어요. ‘끝까지 의심하자.’ 연극할 때 배운 자세인데,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끝까지 점검하고 의심하자’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끝까지, 정말 끝까지 의심하자.”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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