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⑧ 호텔 조식 부럽지 않은 골목길 아침식사
2016. 9. 21. 00:05


상하이의 한 맥주바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다. 대기 테이블 구석에 놓인 영자 잡지를 하릴없이 뒤적거리다가 눈이 번쩍 커졌다. ‘상하이에서 가장 좁은 길 펑라이루(蓬萊路)’를 소개하는 토막기사였다. 길 이름이 왠지 낯익다했는데, 알고 보니 며칠 뒤 가기로 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바로 그 거리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갔다. 펑라이루는 승용차가 들어가기 힘들 만큼 좁은 도로다. 도로라기보다는 집앞 골목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집 앞에 의자 하나만 두면 앞집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이고, 앞집 지붕에다 대나무대를 걸쳐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원래 닝허루 시장은 악명이 자자했다. 지금처럼 따로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비좁은 거리 양쪽으로 500개가 넘는 좌판과 리어카가 늘어서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었다. 상하이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었지만 혼잡함과 더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날씨 좋은 날에는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상인끼리 싸우는 소리에 주민들이 창문도 못 열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민들의 불편 호소로 인해 좌판은 모두 사라지고, 평범한 동네 시장이 됐다.


이곳엔 중국식 아침을 파는 식당도 일찌감치 문을 연다. 빈속으로 나온터라 출출해서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 보였다. 우선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아침식사인 ‘요우탸오(油條)’와 달달한 두유 ‘더우장(豆漿)’을 사서 먹었다. 꽈배기처럼 생긴 요유탸오를 한입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기름에 튀겼는데도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해서 식감이 프랑스 빵 크로와상과 비슷했다. 예전에도 몇 번 먹어봤지만 제대로 만든 요우탸오는 이때 처음 맛봤다.



옆집에선 지글지글 셩젠바오(生煎包)를 튀기고 있었다. 셩젠바오는 상하이의 명물 군만두로, 두터운 만두피 안에 돼지고기 또는 새우 소가 들어있다. 납작하고 큰 솥에 기름을 자박하게 붓고 굽는 동시에 찌는데, 덕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푹 익는다. 이 가게의 셩젠바오는 동네 주민에게도 폭발적인 인기인 모양이었다. 큰 솥에 담긴 셩젠바오가 다 팔리면 한 차례 다시 구울 때까지 5분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눈앞에서 ‘완판’을 지켜본 뒤에야 내 차례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앞의 앞 아주머니가 솥에 있던 여남은 셩젠바오를 깡그리 쓸어 담았다. 그 모습을 본 내 앞의 아주머니가 불 같이 화를 냈다. 나도 덩달아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저 군침 도는 소리를 들으며 공연히 5분을 더 기다려야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맛본 닝허루의 셩젠바오는 유명 체인점에서 먹은 것보다 10배는 더 맛있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지단총요우빙’ 가게도 있었다. 간단히 지단빙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중국인이 즐겨먹는 아침 메뉴다. 개어놓은 밀가루를 철판에 두르고 계란과 파를 올려 지진 뒤 둘둘 말아준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계란 토스트 맛인데, 여기에 매콤한 라장을 뿌리면 훨씬 먹기 좋다.
나름 세 가지 코스 메뉴로 든든히 허기를 채우고 나니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나 세련된 브런치가 부럽지 않았다. 닝허루에서 파는 이같은 아침 먹거리는 우리 돈으로 300~800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간판도 없이 동네 장사를 하는 집들인데, 그 맛이 일품이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음식을, 늘 같은 사람이 만들어왔기 때문일까. 대충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맛의 균형이 잡혀 있다. 장인의 손맛이 느껴진다.
상하이의 후미진 골목에서 문득 깨달았다. 거리에도 셰프가 있고, 참맛에는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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