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재난에 먹통 된 국민안전처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무력해지기 쉽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1800여 명이 사망하고 10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10년 아이티에선 대지진으로 31만 명이 숨졌다. 이 같은 일은 자연재해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각인시켰다.
경북 경주시에서 12일 발생한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이러한 불문율과 거리가 있었다. 재난 알림 문자는 지진이 발생한 뒤 8분이 지나서야 전송됐다. 이번 지진에는 다행히도 인명피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의 생사가 달린 위기 상황이었다면 국민안전처가 허비한 8분은 수십만 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의 고위 관계자는 재난 문자 전송이 늦어진 이유를 묻자 “한국이 지진에서 안전한 국가라는 인식 때문에 지진 관련 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09/14/joongang/20160914000402205enea.jpg)
재난 문자 한 통이 오지 않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도 마비 상태가 되자 국민들은 국민안전처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몰려들었다. 지진 발생 50분이 지나서야 올라온 ‘여진 등 안전에 주의하시기 바란다’는 게시글에는 “위기 상황이었으면 이미 국민들 다 죽었을 것이다” “재난 문자는 추첨식으로 보내는 것이냐”는 불만 댓글이 줄을 이었다.
지난 7월 울산에서 지진이 난 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지진을 알리는 내용을 보낼 때 국민에게도 동시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2일 밤 김희겸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은 “이번 지진을 계기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기준을 낮춰 전국의 모든 국민에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었다. 지금 국민안전처에 필요한 건 상황 모면용 변명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재난 대응 불문율을 가슴에 새기는 일이다.
정 진 우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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