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① 중국 최첨단도시의 기묘한 매력










우선 연재에 앞서 상하이(上海) 여행 이력에 대해 소개해야 겠다. 살면서 상하이를 여행한 것은 모두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스물두 살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산둥성(山東省) 지난(濟南)에서 공부했을 때다. 방학을 맞아 친구 두 명과 3주 동안 중국을 여행했는데 그때 상하이가 우리의 첫 관문 도시였다. 하지만 기대를 안고 도착한 상하이는 7월 말의 축축한 습기와 더위에 파묻혀 있었고, 우린 서둘러 산뜻한 남쪽 도시를 향해 떠났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뿌연 안개 너머 생각보다 거대한 동방명주의 실루엣 정도였다.
두 번째는 2014년 7월 말, 회사 출장차 간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상하이는 나의 신조를 가볍게 깨주었다. 최악의 여행이란 없다는 순진한 낙관주의를 말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아직도 그해 여름을 최악의 폭염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온은 섭씨 40도를 웃돌았고, 그 와중에 중국은 구글(Google)이 되지 않는 나라여서 나는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장담컨대 상하이의 폭염 속에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불지옥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한번은 시간이 급해 오토바이를 얻어 탔는데, 오후 2시의 태양 아래 살이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환청이었나?). 그리고 나는 지갑을 도둑맞았고, 스마트폰에 넣는 유심 카드를 잃어버렸고, 기차를 놓쳤다. 한국인의 명예를 걸고 외상을 하기도 했고, 함께했던 일행들의 불만은 속출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게 엉망이었다. 귀국하는 길에 나는 손에 남은 위안화 몇 푼을 짤랑거리며 생각했다. ‘이건 내 영혼이 바닥을 긁는 소리야’. 미리 말해두지만 상하이의 여름만큼은 절대로 피하시라.
세 번째 여행은 올해 4월 한 달 동안 가이드북 취재를 위해 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시절 첫 만남 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짜 상하이를 만났다. 상하이는 그런 도시다. 손을 뻗어서 면사포를 걷어 올리기 전까지는 쉽게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도시는 비교적 단순한 중세사와 매우 복잡한 근대사, 엄청나게 바삐 흘러가는 현대사를 지녔다. 그 여러 겹의 시간이 하나로 중첩돼 상하이라는 기묘한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인 대다수는 중국, 중국인은 촌스럽고 몰취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오랫동안 공산주의 국가를 배제해온, 편향적인 교육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하이에 가서 이 도시의 민낯을 보는 순간 편견은 일제히 깨지고 만다. 인구는 2400만명, 면적은 서울의 10배. 거주하는 외국인만 100만 명.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문화·예술·건축·교통·산업 모든 분야에서 현대 중국의 정점을 찍었다.
중국 4대 요리인 상하이 음식을 비롯해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프랑스, 스페인, 중동, 태국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동서양 미술의 용광로인 크고 작은 갤러리가 도시 곳곳에 예술혼을 불어넣는다. 건축은 말할 것도 없다. 신고전주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만한 와이탄(外灘) 건축군, 개성 있는 마천루가 모여 외계 행성처럼 보이는 푸동(浦東)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다. 상하이 지하철 노선은 세계에서 가장 길어서 607㎞에 이르고, 도시를 동서로 잇는 루푸대교(盧浦大橋)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아치형 다리다. 하지만 가장 독특한 것은 이런 첨단 도시의 이면에 여전히 소박한 뒷골목 정서가 살아 숨쉰다는 점이다. 루쉰과 마오둔이 묘사했던 100년 전 모습 그대로 말이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나는 세 번째 상하이 여행에서 탐닉했던 숨은 풍경과 사람들, 맛과 예술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호화로운 호텔과 레스토랑, 루프탑바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은 동네 서점, 게스트하우스 이층 침대, 허물어져 가는 재개발 지구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흔한 관광지 이야기보다는 직접 보고 느낀 상하이를 다소 주관적으로 소개하는 글이 될 것 같다. 부디 독자분도 이 기묘한 도시 여행에 즐겁게 동참해주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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