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모래 알갱이에 생명을 넣는 샌드일러스트 '하랑'







사진 취재 요청을 하며 취재기자가 물었다.
“‘하랑’이라는 작가를 아세요?”
“처음 듣는 이름인걸.”
“샌드 일러스트를 하는 사람인데 혹시 버스에서 영상을 본 적 없어요?”
버스라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출퇴근 버스에서 자주 본 영상이 떠올랐다.
모래를 흩뿌리고 손으로 쓱싹 쓱싹하면 남산타워가 되고,
또 손이 왔다 갔다 하면 남대문이 떡하니 나타났다.
움켜진 손으로 모래를 흩뿌리면 버스가 생겨났고,
그 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버스 안으로 변해 있었다.
보고 또 봐도 마법처럼 신기했던 영상이었다.
뭐에 홀린 듯 보다 보면 목적지에 당도하곤 했었다.마법 같던 그 손의 주인공이 “하랑’이라는 얘기였다.
안 그래도 그것을 만든 이가 꾀나 궁금하던 터였다.
취재차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기 전에 ‘하랑’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인터뷰 기사를 하나 찾았다.
그 기사는 ‘이 남자가 사는 법’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손의 주인이 남자라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영상을 만드는 섬세한 손놀림과 ‘하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었다.
더구나 그는 40대의 중년이었다.
작업실을 방문했다.
당도하고 보니 아파트였다.
인사를 건네는데 유난히 쑥스러워 했다.
말주변 없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아이스 커피를 타주겠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얼음을 쏟기도 했다.
얼음을 주워담는 그의 손, 남자답지 않게 고왔다.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 농담을 했다.
“손이 참 곱네요.”
“작품에 손만 나와 다행입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가 걱정한 대로 말주변이 없었다.
하지만 말주변이 없는 대신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답했다.
숨기고 감출만한 이야기도 툭툭 던지듯 털어놓았다.
그날 그가 들려준 삶의 내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0대, 20대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뭐가 될거니’였다.
공부도 못했고, 꿈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 식당 같은 데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인격적인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니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리긴 했었다
군 제대 후 스물일곱이 돼서야 홍익대 애니메이션학과에 들어갔다.
졸업하자마자 게임회사에 들어가 게임 원화 그리는 일을 했다.
하고 싶은 그림이 맞긴 했으나 주문 그림만 그리는 공장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택한 미술인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도 있던 서른일곱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뒀다.
우선 먹고 살아야 하니 학원강사를 했다.
그때 유튜브에서 샌드 일러스트 공연을 봤다.
한 순간에 마음이 갔다.
즉시 작은 라이트 박스를 사서 여자의 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을 그려봤다.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렇게 작업한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그때가 2011년 말이었다.
당시 그 정도 밀도 있는 작업이 국내에 없었다
그것을 보고 기업에서 연락 오고 또 그걸 보고 다른 데서 연락 오고 그랬다.
그러다 버스에 나오는 영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핸드폰 메모장에 두 엄지 손가락 타자로 입력했다.
그렇게 해도 그의 이야기를 입력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린 말투였다.
그런데도 말주변 없는 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그 또한 모래로 치유를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랬기에 이젠 내성적인 성격이 오히려 장점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아마도 말을 잘했으면 그림으로 전달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인터뷰 후 사진을 찍기 위해 그의 작업실로 들어섰다.
아파트의 문간방이었다.
빛이 새어들지 않게 검은 장막으로 창문을 막은 암실이었다.
모두 두 개의 라이트 박스가 있었다.
큰 것은 120 x 80cm, 작은 것은 80x50cm 규모였다.
그 라이트 박스 위에는 카메라가 각각 설치 되어 있었다.
그동안 버스에서 봐왔던 영상이 바로 예서 나온 것이었다.
마치 마법이 만들어지는 비밀의 방을 본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작업 공간을 사진으로 찍어서 공개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그러십시오. 웬만한 제 작품들도 블로그에 공개하는 걸요.”
하긴 그랬다.
그의 작품을 흉내 내고자 한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두 개의 라이트 박스에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그의 사진을 찍었다.
그런 후 현재 작업중인 작품만 따로 찍으려 의자 위에 올라섰다.
위에서 내려보며 찍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카메라 후드가 작품으로 툭 떨어져 버렸다.
플라스틱 재질이라 작품 위에서 퉁퉁 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심장이 철렁했다.
애써 만들어 놓은 작품에 그만 흠이 난 게다.
그 순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섬세함을 좌우합니다.”
낭패였다.
그런데 그는 “어이쿠”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구르는 렌즈 후드를 쫓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렌즈 후드를 걱정했다.
흠이 난 작품은 아랑곳없이 노심초사하는 나를 달랬다.
취재 후 돌아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모래알갱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유,
그 스스로 모래로 치유를 받았듯이
그 모래로 뭇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리라는 생각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진중권도 진저리 쳤다··· SNS 막말 공격에 절필
▶ "우리집 자장면 최고에요"···수배자, TV 출연했다 쇠고랑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