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 로맨스? 현실은 놀랍게 '비싸다'
[오마이뉴스이영섭 기자]
▲ 지난 주에는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7주년 기념으로 휘성의 무료 콘서트가 열렸다. 제주에 와서 문화생활을 오히려 더 많이 즐기고 있는 듯하다 |
ⓒ 이영섭 |
육지에 있을 때부터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다. 사람들은 왜 대형마트 같은 곳에 가면 입구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기 위해 같은 곳을 계속 돌고 도는 걸까. 입구에서 먼 곳은 텅텅 비어 있는데 말이다. 입구에 가까운 빈 자리를 찾기 위해 돌고 도는 시간이면 조금 먼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입장하고도 남을 텐데, 정말 걷는 것이 그렇게 귀찮은 일인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대형마트 같은 경우야 입구에 가까운 곳을 찾기 위해 경쟁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일이 없으니 탓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몸에 배인 버릇들이 제주 같은 관광지에서 발현되면 그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니…, 지난 주 제주에 이주한 후 처음으로 서쪽 해안도로를 찾으면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여행자 때와 달리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져 집에서 10Km 이상 떨어진 곳에 가려면 정말 큰 맘을 먹어야 가능하다).
예전 제주로 여행을 다니던 시절에도 애월에서 협재로 이어지는 서부 해안도로 라인에는 워낙 핫플레이스들이 많다 보니 주차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은 그 곳에서는 가히 주차 전쟁이라 할 정도의 혼잡이 벌어지고 있었다.
TV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된 음식점으로 통하는 골목길들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관광객들 차로 꽉 막혀 주민들 생계가 걸려 있는 경운기와 트럭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고, 주차를 둘러싼 주민들과 관광객, 음식점 주인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제주 이주 후 텃세에 대해 어려움을 토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이주를 망설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래서야 텃세를 탓하기에 앞서 이주민들이 기존 주민들에게 주고 있는 피해부터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이주민들이 개업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음식점, 카페 대부분이 기존 주거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업에 앞서 주차와 소음 등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TV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의 칭찬 하나 믿고 가게 앞에 줄 서있는 손님들에게 번호표 하나 나눠주고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하는지부터 알려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관광객들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주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도심지 대형마트에서나 봄직한 현상이 이곳 제주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 차로 뒤덮인 골목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제주도에서 마련한 무료 주차장들이 여기저기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 지도 앱만 켜도 이 주차장들 위치가 모두 표시된다.
도심지의 복잡함을 벗어나 힐링을 위해 찾은 제주에서까지 조금 걷는 것이 귀찮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일이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주차금지' 표지판이 여기저기 붙은 돌담길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가장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기에 더더욱 꼼꼼히 살펴야
▲ 제주에 온 후 알게 되었다. 해수욕장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곳이 최고다. 수건 한 장만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삼양 해수욕장 |
ⓒ 이영섭 |
[지난 기사]
경쟁률 218:1 , 제주 아파트가 인기있는 이유
마당 있는 집, 제주에선 꿈도 꾸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오일장이나 교차로 신문을 펼치면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는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원룸, 오피스텔에 대한 이야기다.
5. 단지형 빌라를 매입하는 경우
먼저 제주에서의 단지형 빌라에 대한 개념부터 잡고 가는 것이 좋겠다. 제주에서는 500세대 이상 규모의 초대형 빌라 단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서귀포 대정읍 영어교육도시같이 4층 규모 빌라들로만 1500세대가 모여있는, 가히 빌라촌이라 불릴 만한 곳도 있다(영어교육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하도록 하자).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제주만의 풍경이다.
일단 여기서 단지형 빌라는 말 그대로 일정 이상 규모를 갖춰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이 갖춰진 빌라로 한정하겠다. 대략 80세대 내외가 기준이 된다.
이런 단지형 빌라들의 경우는 대부분 기존 자연녹지에 지어진다. 때문에 높이는 4층 이하로 한정되며, 주차장과 세대별 무상 텃밭 등 제공되는 공간적 인프라에 여유가 있는 대신 상가가 밀집한 기존 주택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는 단점이 있다. 택지 매입비용이 저렴한 만큼 각 세대별 대지지분이 크게 책정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제주 이주초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주거형태다. 일단 도심지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무상으로 텃밭도 제공되기 때문에 '내가 도시를 떠나 제주에 왔구나' 하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관리사무소 등의 관리주체가 있기 때문에 하자보수와 관리, 택배보관 등의 편리함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
보통 이런 단지형 빌라의 경우 한 건설사에서 여러 지역에 1차, 2차, 3차 등 순차적으로 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에 지어진 집을 참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즉, 그 건설사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나름의 프리미엄이 붙어 분양가가 올라간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제주 이주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이런 빌라들에 대한 분양정보와 거주자 커뮤니티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온다. 계약에 앞서 이런 정보를 종합해보면 쉽게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
▲ 영어교육도시 내에서 분양된 700세대 규모의 빌라. 도시의 아파트 숲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이렇게 빌라로 이루어진 빌라 숲이 낯설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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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둘은 떨어뜨려 놓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같은 소규모라도 나홀로 아파트에는 관리실과 경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자보수와 관리, 생활 편의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둘을 묶어놓은 것은 나홀로 아파트와 소형 빌라 모두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다는 더 큰 의미의 공통점 때문이다.
일단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하기에 상가 등이 인접하여 생활과 교통이 편리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가끔은 내가 도시에 있는지 시골에 있는지 헛갈릴 수도 있다.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실 전원생활이란 것이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살아보기 전에는 모른다. 도시의 복잡함에 질려 제주로 이주를 했다 해도 나도 모르게 편리함과 간결함에 익숙해진 도시인의 DNA가 이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제주 이주 후 만난 작가 A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복잡한 서울에 질려 제주로 이주를 했다. 직업 특성상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누굴 만날 일도 거의 없기에 제주 이주에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거형태를 잘못 선택했다. 처음 제주에 내려와 1년간 연세 계약을 한 집은 서귀포 자연녹지에 새로 지어진 단지형 빌라였다. 여름에 이사와 몇 달 간은 큰 불편함 없이 지냈다. 문제는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내에 있는 상가라고는 편의점과 셀프 세탁방, 부동산 사무소가 전부였다.
필요한 생필품이나 병원 등을 가기 위해서는 차를 몰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시내까지 가야 했다. 와이프는 운전을 하지 못했다. 결국 시내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A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했다. 대로변에서 단지로 이어지는 길도 문제였다. 이주 전에는 제주 도로에 눈이 쌓여 결빙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불편함에 익숙해지기 힘들었던 A씨 가족은 결국 1년 계약이 끝난 후 서귀포 시내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개개인에 따라 한적함이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제주로 이주를 하고 싶지만 불편함과 지나친 한적함을 이겨내기 힘들 것 같다면 신규 택지지구에 위치한 나홀로 아파트나 소규모 빌라를 추천한다. 아라 택지지구나 이도 택지지구같이 한발 다가서면 도시요, 한발 물러서면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곳이라면 초보 이주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주거지가 되어줄 것이다. 거기서 조금만 더 자연 쪽으로 저울추를 기울이고 싶다면 제주시 좌측으로는 한림읍, 우측으로는 조천읍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추가로 고려할 요소로는 초등학교와의 거리를 들 수 있다. 육지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제주에서는 초등학교와 얼마나 가까운지, 길을 건너지 않고 등하교가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집값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 이렇게 초등학교 운동장과 인접하여 빌라가 지어지는 경우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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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육지에서와는 조금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육지에서는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등 구성원의 수가 적은 경우 오피스텔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주에서는 주거지로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매입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이런 거주지의 가장 큰 장점인 '역세권 5분' 등의 장점이 아직 제주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데다가, 앞서 언급한 대로 핵가족을 위한 20평 내외 다양한 규모의 빌라와 아파트들이 많이 지어지고 있기에 굳이 전용면적에서 손해를 보는 오피스텔이나 원룸이 필요치 않은 듯하다.
때문에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주로 연세 수입을 얻기 위한 투자용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특히 노형동이나 연동 같이 세입자가 많은 도심지의 경우 평당 분양가가 10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분양 붐이 일고 있다.
▲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주로 임대 목적으로 분양되는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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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노형, 연동, 아라, 이도 같은 특정지역과 일부 대단지 아파트를 제외한 일반적인 공동주택의 평균 분양가는 900만~ 100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4인 가족에게 적합한 30평 정도의 빌라나 아파트의 분양가(매매가)가 2억 원 후반대에서 3억 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다.
과연 이것이 서울 강북의 집값과 비슷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 강북의 경우도 워낙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보니 딱히 기준점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1~2년 전만 해도 2억 원 내외에 구할 수 있었던 30평대 공동주택의 가격이 이렇게까지 치솟은 이상, 예전처럼 꿈과 이상만 가지고 제주 이주를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 새별오름을 오르며 생각한다. 어차피 힘들게 올라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가끔씩이라도 웃으면서 오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제주라면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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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은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평가한 것 아닐까 싶다. 제주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삶의 무게는 어쩌면 육지에서보다 무거워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것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서라도 도시에서 잃어버린 일상의 웃음을 되찾기 위함이 아닐까.
공평한 분배와 기회, 인간에 대한 존중의 시스템이 철저히 망가져버린 도시가 다시 제 기능을 회복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제주 이주를 향한 도시인들의 열망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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