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시시각각] 세상이 우습게 보였나

이명박 정부 막바지 때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이 한 검사의 인사를 놓고 마찰을 빚었다. 진경준 검사 때문이었다. 당시 그가 바랐던 것은 대검의 범죄정보기획관. 일부 간부가 진 검사를 고집하면서 인사 구도가 흐트러졌고 시기도 미뤄졌다.
진경준이 왜 이 자리에 집착했는지는 사건이 터지고 나니 어림짐작이 간다. 대검의 범죄정보기획관은 전국 검찰에서 올라온 각종 범죄 정보와 시중의 여론을 취합하고 분석하는 핵심 보직이다. 검찰총장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 행사도 가능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법무부의 반대로 진경준은 지방검찰청 차장으로 밀렸다.
그는 왜 비토를 당했을까. “MB정부 출범 때 인수위에 파견됐던 진경준이 대통령 가족과의 친분을 떠벌리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면서 청와대 민정과 법무부가 조사를 했다. 미국 유학 때 MB 가족과 친분을 맺은 것은 사실이었다. 진경준이 범죄정보기획관에 임명될 경우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전직 검찰 간부의 얘기다.
하지만 진경준은 박근혜 정부 3년차인 2015년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기사회생했다. 그를 부정적으로 봤던 검찰 내 선배들이 퇴진한 데다 청와대의 측면 지원도 있었던 것이다.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시점도 이미 지나 1년이라는 완충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120억원대 주식 대박이 부패 사건으로 번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비즈니스’를 한 것도 모자라 기를 쓰고 검사장으로 승진했던 그는 무슨 심산이었을까. 얕은꾀로 돈과 명예, 권력을 다 쥘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동료 검사의 말처럼 사시와 행시를 모두 패스한 그에게 세상은 우습고 만만하게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복기해 보자.
3월 25일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때 그는 한 언론사 고위층에게 전화를 했다. “저 재산 때문에 기자가 취재를 하는데 별문제가 없습니다. 넥슨의 김정주는 제 친구이며, 친구 회사에 투자한 것이 대박 난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틀 뒤 언론보도에 그는 “내 돈으로 투자해 돈을 벌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박했다.
청와대와 법무부 간부들도 거들었다.
청와대에선 “자기 돈으로 투자한 것까지 문제 삼는 언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간부들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심사를 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는 “배 아픈 것과 비리는 별개”라며 언론의 의혹 제기에 냉소를 보냈다.
진경준의 거짓말은 이어졌다. 최초 투자금인 4억2500만원의 출처를 ‘내 돈’에서 ‘처갓집 돈’ ‘넥슨에서 빌린 돈’으로 바꾸면서도 범법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소환 전날 검찰에 자수서를 내면서도 ‘기교(技巧)’를 부렸다. 자수라는 형식을 빌려 선처를 바라면서도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했다.
진경준에 대한 특임검사가 임명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밝혀질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은 3개월 이상 온갖 법률 지식과 용어를 동원하며 본질을 흐리려 한 것이다. 청와대는 부실한 인사시스템이 지적될 것을 우려하며, 법무부와 검찰은 조직의 치부가 드러나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것을 겁내며 국민들을 조롱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업체와 처음 수사를 맡은 부서가 사건이 흐지부지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 끌기를 한 것도 마찬가지다.
진경준이 20여 년간 몰래 쌓아 올린 탐욕은 이제 연기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진경준 개인에 대한 처벌로 이번 사건을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법무부 장관과 인사 검증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어떤 액션을 취할지도 관심거리다. 세상이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엄정함이 좀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꼼수로 99%를 속이고 1%의 향유를 누리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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