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근대 부산의 흔적, 적산가옥을 찾아서






![부산 수정동 적산가옥은 도코노마, 석등, 섬세하게 짜인 창호 등 고급 주택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근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사진=문화재청]](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06/24/joongang/20160624100004557zyyw.jpg)


![1925년에 건축돼 일맥문화재단 건물로 사용되는 초량동 일식 가옥. 일식 평기와를 사용했으며 일식 주택의 도코노마, 장지문, 다다미 등 세부 디테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진=일맥문화재단]](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06/24/joongang/20160624100005426gshx.jpg)
by 이혜민·오정은부산 지하철 1호선 초량역 3번 출구로 올라가면 낡고 특이한 건물이 하나 있다. 기와를 올린 집인데 2층 구조에 나무를 덧대어 붙인 벽면이 눈에 띈다. 일본식 가옥이다. 뜻밖에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런 일식 가옥이 남아 있다. 부산역과 초량 주변 뒷골목에선 일식 가옥을 몇 채 발견할 수 있다. 페인트칠을 하거나 보수를 해 본래의 형태와는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2층 기와집에 돌출된 창문, 나무 벽면 등 일본풍을 유지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살던 이런 집을 ‘적산가옥’이라고 부른다. 적산(敵産)은 ‘자기 나라 영토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을 뜻하는 말로,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고 간 건물을 가리킨다. 일본의 침략 발판이 되어 근대 도시로 성장했던 부산에는 특히 일본의 흔적이 많다.
사실 부산은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영도, 초량 등에 행정구역이 한정돼 있었고 1914년에도 부산 인구는 2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일본은 부산항 확장 공사, 중앙동 지역 매립, 경부선 철도 건설, 일본인 거주자를 위한 수도 설치 등 부산항을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개항 이전 해안가 어촌 마을 정도에 불과했던 부산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침탈 관문이라는 아픔을 가진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산을 향해 ‘왜색이 많은 도시’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지만, 부산은 실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맨 앞에서 부딪혀 온 근대도시이며, 침략 당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적산가옥을 포함한 일제 강점기의 잔재들이 ‘보기 싫은 왜색’이 아닌 우리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사료가 되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사료들이 우리가 살펴보지 않는 사이에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로 일제 강점기 수난을 증언하는 근대 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적산가옥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광복 직후 개인에게 팔려나간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산권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적산가옥 등 근대 유산은 지정문화재가 아닌 등록문화재로 운영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면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고, 무엇보다 보존에 강제성이 없어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물론 좋은 사례도 있다. 최근 ‘문화공감 수정’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연 부산 수정동 적산가옥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 초대 철도청장의 관사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 2층 기와지붕 건물로, 해방 이후 ‘정란각’이라는 요정으로 사용됐다. 인근 지역의 아파트 개발로 가옥이 매각될 위기에 처하자 문화재청이 2010년 건물을 매입해 문화유신신탁이 위탁관리,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가옥은 일본 무사 계급의 주거 양식인 '쇼인즈쿠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액자를 걸거나 도자기를 진열하기 위해 만든 2층의 도코노마를 비롯, 내부 공간, 목조 가구, 정원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1층과 2층 사이에 반2층의 공간을 두어 문간방 역할을 하도록 한 것 등 일제 강점기 고급 주택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당을 청소하던 관리 직원은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다. 곧 게스트 하우스와 카페도 곧 운영될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현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고 있다.‘다나카 주택’으로 알려진 초량 일식 가옥도 있다. 부산 일본영사관 뒤편에 위치한 이 주택은 1925년 토목업에 종사했던 일본인 다나카에 의해 목조 일식 가옥으로 건립되었다. 일식 평기와 지붕과 창문, 다다미 등 일식 주거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정원 조성수법과 조경수 수종형태 등이 일본 전통정원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현재 건물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올해 연말까지는 내부를 구경할 수 없지만, 공사가 완료된 후 5인 이상 사전 방문 신청자에 한해 공개할 방침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이나 사설 재단, 혹은 문화단체 등 뜻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에 한해 이런 등록문화재 관리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관리되고 있는 적산가옥의 경우에도 근대 유산으로서의 가치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문화공감 수정(구 정란각)을 찾은 60대 여성은 “어릴 때 살았던 집이 떠올라 향수에 젖는다”라고 말했고, 이곳을 찾았던 여행객 역시 일본 관광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본풍의 주택이 특이했다면서 대체로 재미있는 볼거리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적산가옥의 근대 유산 가치나 역사적 의미를 떠올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문여고 서유경 학생은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는 하지만 문화재에 대한 안내문조차 없다”면서 “이곳에 대해 모르고 찾아왔다면 그냥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생각했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독특한 역사로서 적산가옥을 포함한 근대 유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존·관리하고자 하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사진=이혜민·오정은(부산국제고 2)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BIHS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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