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NIE] 예술의 기준은 무엇일까..기술인가, 상상력인가



조영남 대작 논란으로 본 현대미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린 그림은 나의 작품일까, 아닐까. 지난달 16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의 서울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활동하는 화가 송기창씨가 8년간 조씨의 대표작인 ‘화투 그림’ 등 300여 점을 대신 그려왔다는 제보를 입수하고서다. 이에 대해 조씨는 조수가 대신 그림을 그리는 게 미술계 관행이라고 반박했지만 사건의 파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술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대작 사건의 당사자인 조영남은 “전시회와 미술작품에 송씨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내가 그리기 어려운 것을 조수에게 숙제 내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작품에 조수의 창의력이 부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창작한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송씨의 대작 그림을 산 구매자들이 100% 조영남이 그린 그림으로 알고 구매해 피해를 봤다면 사기죄와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팝아트 방식 … 문제없다”
조영남 대작 의혹 사건의 파장은 현대미술 제작 공정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다. 미술계에서 ‘공장 돌린다’는 은어로 통하는 작가와 조수 간의 협업 작업이 대중 앞에 실체를 드러냈다.
조명식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는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나머지 과정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팝아트에서는 많이 활용되는 방법이라고 했다. 조영남 작품에는 극동의 아픈 역사를 화투로 그리는 고유성과 역사성 및 해학과 대중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판화처럼 찍어내 여러 사람과 나누는 방식’이라는 조영남의 설명에 대해서는 앤디 워홀이 판화로 찍은 뒤 각 에디션에 번호를 붙였던 점을 들어 “기존의 틀을 무너뜨린 새로운 생산 보급 방식으로, 대중에게 어필할 감상 통로 자체를 확장시킨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일간스포츠 2016년 5월 17일자 조영남 ‘대작 의혹’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 “작품의 콘셉트를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문제 없는 것이고, 그 콘셉트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대작”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작품 하나에 공임이 10만원, 너무 짜다”고 썼다. 조씨는 송씨에게 그림 한 장당 10만~2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일부 작품은 그동안 수백만~수천만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실제로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같은 해외 유명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고 부르며 자신은 콘셉트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조수가 제작한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일부에서는 조씨가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허용 범주 넘어섰다 … 예술가 모독”
반대 의견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대작이란 미술계에 없는 용어”라고 말했다. 정씨는 “현대미술 사조인 미니멀리즘이나 팝아트에서 작가의 콘셉트대로 조수가 제작하는 게 관행이라지만 조영남의 그림이 그에 속하느냐 안 속하느냐를 우선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원격으로 그림이 오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조씨의 경우는 조수가 원작자의 통제나 감독 없이 그림을 그렸기에 후에 마무리 손질을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해도 도가 지나쳤다는 분석이다. 관례라 해도 허용 범주를 넘었다는 것이다.(중앙일보 2016년 5월 18일자 미술계 ‘공장 돌리기’ 확인 … “조영남, 밝히지 않은 게 문제”)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평생 굶고 살아도 자기 작품에 목숨을 거는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했다. 현대판화가협회에서는 성명서를 통해 “조영남씨가 대작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은 내가 그리고 (대작은) 그걸 찍어 보내주면 똑같이 그려서 다시 보내준다. 내가 손을 다시 봐서 사인하면 내 상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판화 개념도 있고 좋은 것을 여러 사람과 나눈다는 개념도 있다’고 말해 판화가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장인과 예술가의 차이
예술가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고 ‘예술이다!’라고 감탄을 하곤 합니다. 뭔가 섬세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예술하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릴 때도 있지요. 이럴 때의 예술은 어떤 사람의 재주가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예술가라는 말의 뜻은 사실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혹은 빵을 맛있게 굽는다고 예술가라고 인정하지는 않지요. 대신 이처럼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을 우리는 장인이라는 용어로 존중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는 예술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은 ‘진짜’와 관련됩니다. 미술가는 대상을 진짜처럼 그리는 사람이고요, 음악가는 사람이 느끼는 진짜 감정을 건드릴 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우는 벌어졌거나 벌어질 수도 있는 일들을 진짜처럼 행동으로 묘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요.
작가가 사인만 한 뒤샹의 ‘샘’
여전히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네요. 이제까지의 이야기대로라면 예술은 어떤 것을 진짜처럼 구현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요. 예술은 그와 같은 행위를 하거나 혹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것 등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네요. 도대체 무엇이 ‘진짜’일까요? 정물화나 고전파나 낭만파의 심포니, 서사적 드라마 등은 이 물음에 답하기가 좀 쉽지요.
하지만 뒤샹이라는 화가가 그린 ‘샘’, 이나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 33초’, 사무엘 베케트가 써내려간 ‘고도를 기다리며’ 등과 같은 작품들을 이야기하면 상황은 다소 당황스럽습니다. 표현하려는 내용이 불분명한 것은 고사하고, 도대체 그 표현 방법도 전통을 따르지 않죠. ‘샘’은 작가가 손대서 만든 것은 하나도 없고, ‘4분 33초’는 피아노 소리는 단 1초도 나지 않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배우는 관객을 연극 속에 빠져들게 하기는커녕 무료함의 극치를 보여주곤 합니다.
‘진짜인 것’과 ‘진짜가 되어가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그것들은 ‘진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진짜’냐고요? 이 작품들은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통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되던 대상들에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이게 왜?’라고 물음을 던지게 만들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진짜 의도를 직접 체험하도록 해주었답니다.
이제 그 ‘진짜’는 개인적인 관점이나 생각과 무관한 사물이나 현상 자체, 그러니까 원래부터 있던 ‘진짜’가 아니라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식이며, 또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감상자들의 인식입니다. 그리고 감상자들의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불어 작가의 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은 더욱 더 분명한 ‘진짜’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현대예술에서의 작품과 공장
작가의 의식 속에 있는 것, 더불어 그 의식에 공감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 ‘진짜’라면 현대예술에서의 훌륭한 작품이란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였으나 작가만이 파악한 것을 드러내 주고 더불어 그에 대한 대중적 인정이 함께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쯤 되면 그것을 누가 그렸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설령 손재주가 좋은 장인의 손을 빌려 그것을 표현했다고 한들 정작 예술의 평가는 그러한 테크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할지 결정하고, 이를 드러내기 적합한 구도나 표현 방법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희소성에 의한 가치 역시 큰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해서 상품으로 내다 팔기도 합니다. 마치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 말이지요. 앤디 워홀이 스스로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부른 것은 이런 뜻이랍니다.
가수 조영남이 항변하는 것은 이와 같은 현대예술계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린 것이 정말로 많은 사람이 인정한 ‘진짜’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 팔렸다는 것,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 곧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지요.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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