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강남역 10번 출구의 또 다른 상흔

2016. 5. 3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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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해 차별하진 않는가치료와 사회 복귀보다 격리부터 거론한다면 잔인한 편견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젊은이들의 활기찬 발걸음과 웃음이 가장 잘 어울리던 장소 강남역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이 강남역의 풍경을 바꾸어 옛 모습을 찾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풍경은 기억과 뗄 수 없을진대, 겉모습을 넘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트라우마를 겪을 때 사람들은 상황 부인의 상태 그리고 분노를 거쳐 슬픔에 도달한다고 한다. 피해자 가족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많은 사람이 스티커로 분노와 슬픔에 동참했다. 가해자가 남성들을 지나 보낸 후 여성을 노려 범행했다는 사실은 여성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강남역 10번 출구는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의 스티커로 물결을 이루며 분노가 계층화되었다. 추모 물결은 여성 혐오, 여성 차별을 극복하는 공동체 구성을 요청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가끔 들리는 ‘추모는 조용한 추념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은 옹색하다. 양성평등으로 향하는 시대적 조류에 불안을 느끼는 옹졸한 가부장의 악취가 난다. 범행의 동기가 여성 혐오인가 피해망상인가는 가려져야 하겠지만, 그 결과가 성차별이라는 사안의 무게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운동은 우연한 요인으로 촉발되며, 시대의 요청과 들어맞을 때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성들의 목소리에 남성들이 화음을 이뤄 우리 사회가 차이를 넘어 공명하는 성숙한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면 좋겠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통합의 정도에 비례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물론, 아동·장애인·이주노동자·타 종교인·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처우도 마찬가지다. 모두 존엄한 개인으로 대우받을 권리라는 큰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며, 결국 불리한 또는 부당한 처지에 놓인 계층을 얼마만큼 배려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번 일이 또 다른 취약 집단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미 편견 속에 살고 있는 정신질환자의 경우다. 정신질환은 하나의 병인데도, 정신질환자는 원치 않은 병마와 싸우는 고통에 더해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라는 부가적 고통을 견뎌야 한다. 가족들 역시 장기 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사회적 주홍글씨에 힘겹다. 적지 않은 정신질환자들이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아 중증으로 발전하고, 중증 상태로 방치된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자를 접한 경험이 노숙자였던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강남역 사건으로 정신질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간주되면서 더욱 어두운 음지로 내몰리고 있다. 소위 ‘묻지마 범죄’ 중에 조현병 환자의 범죄 비율이 30%라는 것을 여러 언론이 앞다퉈 발표하고 있고, 이는 과도한 공포를 조장해 SNS에는 조현병 환자를 가둬 두어야 한다는 등의 댓글이 넘친다. 묻지마 범죄는 성격상 건강하지 않은 정신 상태와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큰데 이런 통계만 소개하고, 전체적으론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다는 것은 이번 사건의 극적인 측면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소홀히 소개되고 있다.

공공 영역의 대응도 유사하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응급입원’ ‘강제입원’ 제도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으며, 조현병 환자를 전수조사해 특별관리 대상으로 삼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더라도, 더 많은 정신질환자가 더욱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 건강한 성원으로 사회에 복귀하도록 사회적 장치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었어야 했다. 이런 이야기 없이 정신질환자를 성범죄자 수준의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격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편견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잔인하기까지 하다.

설상가상으로 정신질환자들은 차별에 대응해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고, 정신질환의 고통을 숨기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족조차 이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음지에서 차별로 고통받으며 호소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 헤아리고 보살피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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