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 start of summer: 5월6·7일)
입하(立夏, start of summer: 5월6·7일)
봄바람 잦아들고 날씨가 안정되니
시절은 입하절기 여름이 가깝구나
봄날이 다 가기 전에 호시절을 누려라
대지는 여린 풀로 나무는 새잎들로
싱그런 새 세상이 경이롭게 펼쳐지니
개화에 연이은 기적, 봄이 베푼 조화여
묵은 곡식 떨어지고 새 곡식 나지 않아
어려운 보릿고개 무사히 넘기라고
어느 덧 갖가지 나물들 산과 들에 넘치네
여름의 절기는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뜻하는 입하로 시작된다. 이때 황도 상에서 태양의 위치는 춘분과 하지의 한가운데 지점이다. 절기력에서는 입하일부터 입추 전날까지가 여름이다. 입하는 달력상으로는 늦봄이지만 절기상으로는 여름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입하가 지나면 여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은 입하 절기가 지나야 본격적인 여름 날씨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입하에 이르면, 그간 일교차가 크고 변화가 많은 봄의 특징적인 변덕스런 날씨가 안정되고, 천지만물이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잘 자라지만 해충도 번성하고 또 잡초까지 자라서 농가는 병충해 방제는 물론 각종 잡초 제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 이 무렵은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나 밀과 같은 햇곡식은 패기는 했지만 아직 여물지는 않아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먹을 곡식이 없는, 그래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힘겹게 연명하던, 이른바 ‘보릿고개’ 또는 춘궁기(春窮期)라는 눈물겨운 시기였다. 오죽했으면 “사월(양력 5월) 없는 곳에 가서 살면 좋겠다”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그리움은 보릿고개만큼이나 / 견디기 어려웠어도 / 느티나무 숲 속에선 / 이따금 풀꾹새가 울었고 / 밤이면 은빛 물안개가 / 허리까지 차오르곤 하였다”[양승준, <입하(立夏)>].
다행히도 이 무렵 산야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으로 돋아나 있다. 향긋하면서도 쌉쌀한 봄나물은 과거 춘궁기에는 허기진 배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귀중한 먹을거리였다. 오늘날에도 나물들은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과 무기질을 함유해 겨우내 위축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춘곤증을 달래고 미각을 돋우어 주는 훌륭한 건강식품이다. 봄에 돋아나는 새순들은 거의 식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독성이 좀 있거나 지나치게 쓴 것은 우리거나 삶아서 독성을 제거하고 먹는 것이 좋다.
이 무렵부터 산에서는 뻐꾸기가 운다. 그리고 낮은 곳에서부터 초목들 특히 나무들은 연초록의 신록으로 단장하여 나무가 있는 곳은 어디서나 연중 가장 신선하고 싱그러운 시기가 된다. “끝내 간간히 흔들리며 / 산당화 붉은 속잎 떨구고 / 그 작은 어깨 너머로 / 산으로 올라가는 / 초록의 시간들이 보였다.”[송영희, <입하(立夏)> 중에서]. 이러한 입하 절기야말로 안정되고 포근한 날씨에 푸르러지는 하늘과 초목의 싱싱한 새싹으로 푸름이 충만하게 된다. 이 시기는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는 동요의 가사에 가장 잘 맞는 철이다. 이때가 연중 날씨는 가장 온화하고 초목은 가장 싱그러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야말로 단연코 ‘계절의 여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성화(無性花) 또는 장식꽃이 여럿이 둥근 공처럼 뭉쳐 피고 그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음력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기르는 불두화(佛頭花: 백당나무의 일종)도 이 시기에 꽃이 핀다. 또 이팝나무, 귀룽나무, 층층나무, 산사나무 등의 하얀 꽃이 핀다. 장미과의 황매화, 덩굴장미, 찔레꽃, 해당화, 모과나무 등의 꽃도 입하 절기 중에 핀다. 콩과의 밀원식물(蜜源植物)인 등나무도 입하 어간에 총상(總狀)꽃차례로 연한 자줏빛의 꽃을 피운다. 아카시아로 잘못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밀원식물로서 짙은 향기와 많은 양의 꿀로 유명한 아까시나무의 개화도 입하 무렵 먼저 남쪽에서 시작되어 차츰 북상하는데 총상꽃차례로 핀 하얀 꽃의 수가 잎의 수보다도 더 많다. 꽃이 많기로는 이팝나무도 아카시나무 못지않다. 입하 어간에 그 꽃이 핀다고 해서 본래 입하목(立夏木)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 꽃이 피면 흰색의 꽃잎이 네 개로 길게 갈라져 꽃이 나무를 뒤덮어 위에서 보면 잎은 보이지 않고 하얀 꽃만 보인다.
이 무렵에 피는 풀꽃들도 적지 않다. 산기슭이나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띠도 이 무렵부터 6월까지 가느다란 기둥 모양의 원추꽃차례로 꽃을 피우는데 ‘삘기’라고 불리는 어린 꽃 이삭은 단맛이 있어 아이들이 먹기도 한다. 줄기로 방석이나 돗자리를 만들기도 하는 골풀도 이 무렵부터 7월까지 꽃이 피는데 줄기 끝에서 나온 총상꽃차례에 작은 녹갈색 꽃이삭이 모여 달린다. 붓꽃, 금낭화, 꿀풀 등의 붉은 꽃들, 애기똥풀, 돌나물, 씀바귀, 고들빼기 등의 노란 꽃들, 초롱꽃, 돌단풍, 은방울꽃 등의 흰 꽃들, 천남성, 등글레 등의 녹색 꽃들도 이무렵부터 6월이나 7월까지 핀다.
이 무렵 건조한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의 잎을 바짝 마르게 하는 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리고 산간지방에서는 더러 우박이 내려 담배, 깻잎, 고추 등 어린 모종이 해를 입기도 한다. 입하 어간에 채취한 차나무의 고운 잎순과 펴진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세작(細雀) 또는 입하차라 부르는데 우전차에 버금가는 것으로 친다.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艸衣禪師)는 우전보다는 입하차를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입하차는 섭씨 70도 정도의 물에 우려 마신다. 한국 최대 녹차 생산지인 보성의 다향제는 대체로 입하 직전이나 어간에, 그리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차나무를 재배한 하동의 야생차문화축제는 입하 어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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