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결혼한다니까.. "너희 로또 맞았니?"
[오마이뉴스 글:이영섭, 편집:김지현]
(* 지난 이야기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제주로 이사 갔어야 했다'에서 이어집니다.)
아내의 마음속에 제주 이주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하니 두 번째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매뉴얼에 맞춰 준비하던 평범한 결혼식 계획을 폐기하고 그 무대를 제주로 옮기는 것이었다.
당장 제주로 이주를 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내 결혼식 사진 배경이 OO웨딩홀 A동 1호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결혼식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거리는 것도 정중히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장소는 제주여야만 했다.
응원과 질투가 섞인 제주 결혼식
▲ 지금에야 연예인들의 작은 결혼식 덕에 제주에서의 결혼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하얏트 채플웨딩홀에서의 결혼식은 꽤나 신선한 도전이었다. |
ⓒ 이영섭 |
함께 청첩장을 제작하고, 결혼식에 초대할 가족들과 소수의 지인들을 위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마침내 모두에게 결혼식 계획을 알리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왔지만 아직도 잊지 못할 말을 남겨주신 분들도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당시 직장 상사 중 한 분인데, 윗선으로부터의 받는 실적 압박 때문에 세상 모든 사물을 "내 실적에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구분하곤 했다. 그분은 내 결혼식 소식에 "일도 바쁜데 결혼식을 굳이 해야 하나? 제주도? 와이프가 제주도 사람이야? 쯧, 휴가 오래 가겠네"라는 강렬한 말씀을 남기셨다.
그다음 주인공은 일가친척 중 한 분이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는데, 결혼식 초대를 하는 아내에게 축하한다는 말 대신 "너희 로또 맞았니? 요즘 돈 많이 쓰네"라는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신 바 있다.
이렇게 어떤 분들의 축하와, 어떤 분들의 시기를 받으며 우리는 그해 12월 조금 늦은 결혼식을 올렸고 한참 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제주에서 집 구할 때... 바다 방향 피해야 하는 이유
▲ 따가운 햇살이 온 몸을 달구는 제주의 여름, 우리는 바닷가가 아닌 돈내코 계곡의 원앙폭포를 찾는다. 한 여름에도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계곡물을 즐길 수 있다. |
ⓒ 이영섭 |
성판악에서 출발해 관음사로 내려오던 날, 크리스마스트리의 원류가 한라산 구상나무(Abies koreana)임을 처음 알게 됐고, 함덕 바다를 바라보는 숙소에서 경험한 겨울바람의 혹독함은 제주 집을 고를 때 바다 방향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기도 했다.
흰 눈과 억새가 어우러진 산굼부리에서의 커피 한 잔은 내 인생에 최고의 향기로 남아있으며, 모든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날, 살갗을 얼리는 차가운 공기에 기겁하며 "제주도 춥긴 하지만 서울 하고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긴 호흡으로 제주 이주를 준비하다
▲ 산굼부리의 진면목은 가을이 아닌 겨울, 그것도 막 초입에 다다른 12월에 볼 수 있다. 흰 눈과 억새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
ⓒ 이영섭 |
먼저 모든 여행에 드는 예산과 시간을 제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제주에 머무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집을 보러 다니는 데 사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에서 집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한 셈이다.
▲ 제주에 집을 보러 갈 때마다 들렀던 구좌읍 어느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제주 구옥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리모델링 솜씨에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
ⓒ 이영섭 |
다행히도 이 두 생활정보지는 온라인 서비스를 지원하며 심지어 '신문 바로보기' 기능까지 지원한다. 서울에서도 제주 현지와 동일한 매물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집 사진과 가격,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번지수는 기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들의 집 찾기 모험은 시작됐다.
2012년 겨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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