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규의 친뮤직] 대투수 구와타는 왜 일본의 '야구도'를 비판했나
“일본 야구는 달라져야 한다. 과학에 바탕을 둔 질적인 훈련을 해야 하며, 근성보다는 마음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지도자에 대한 절대복종에 앞서 존중이 중요하다”.
일본 야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비판자의 이름은 흥미롭다. 구와타 마스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20년 동안 뛰며 173승을 거둔 에이스다. 오사카 PL학원고 시절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KK콤비’로 명성을 날렸다. 아다치 미츠루는 명작 만화 H2에서 구와타와 기요하라를 주인공의 모델로 삼았다. 2007년 39세 나이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19경기에 뛰며 20대에 미뤘던 메이저리거의 꿈도 이뤘다.
PL고 3학년 때 구와타는 와세다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프로 입단으로 선회했다. 은퇴 뒤 한국에서 구와타를 만났을 때 그는 “와세다와는 인연을 잇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했다. 그는 2009년 와세다 대학원 1년제 석사 과정에 입학한다. 그리고 2010년 3월 수석으로 수료했다. 석사 논문의 제목은 ‘야구도(野球道) 재정의에 따른 일본야구계의 발전정책에 대한 연구’다.
‘야구도’란 ‘일본 학생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도비타 스이슈(1886~1965)가 제창한 개념이다. 스포츠가 아닌 ‘도(道)’로 야구를 본다. 무사도의 ‘도’다.
미국에서 태어난 야구는 1870년대 일본에 전래됐고, 이내 관중 수 만 명이 몰리는 인기를 누렸다. 그러자 ‘외래 스포츠’에 대한 반감이 생겨났다.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05) 승리 이후 일본에 국수주의가 고양되자 반감은 더욱 심해졌다. 1911년에는 아사히신문을 중심으로 ‘야구폐해론’에 대한 대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육군 대장이었던 노기 마레스케 같은 인물은 “야구는 일본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 유도나 검도 같은 순수 일본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야구에는 뭔가 ‘일본적인’ 정신이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해졌다.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 교수는 “메이지유신 직후 서구문물 수입에 급급했다면, 1890년대 이후엔 ‘일본적 수용’이 강조됐다. 야구도 전통 무술과 사무라이 정신을 길러내는 교육이기를 요구받았다”고 지적한다.
구와타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성립한 야구도를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짓는다. 야구는 ‘적성국’인 미국의 스포츠였다. 그는 문헌조사를 통해 “야구도는 정부와 군부의 압력으로부터 야구를 지키자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결론짓는다. 일본 정부와 군부는 1932년 ‘야구통제령’ 시행 이후 야구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1940년대에는 고시엔 대회를 비롯한 아마추어야구 대회와 프로야구가 중단된다.
구와타는 야구도의 기본 정신을 ‘연습량의 중시’, 정신의 단련‘, ’절대복종‘ 등 세 가지로 집약한다. ’절대복종‘을 가장 좋아하는 집단은 예나지금이나 군대다. 정신, 혹은 근성 역시 구 일본군이 사랑했던 단어였다. 프로야구 선수로만 23년을 뛰었던 구와타는 이런 특수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야구도가 아직까지 일본 야구의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개탄했다.
“비효율적, 비합리적인 연습과 체벌이 너무 많다. 부상 방지에 대한 의식이 낮고, 부상 선수에게 플레이를 강요한다. 승리지상주의가 추구되며, 선수를 육성한다는 개념은 결여돼 있다”.
구와타는 야구도의 이념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연습량의 중시’는 ‘연습질의 중시(Science)’, ‘정신의 단련’은 ‘마음의 조화(Balance)’, ‘절대복종’은 ‘자신과 타인의 존중(Respect)’로 재정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제안에서 ‘야구도’는 ‘무사도 정신’이 아닌 ‘스포츠맨십’을 뿌리로 해야 한다.
구와타의 비판은 한국 스포츠에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군사정권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의 학생 엘리트 선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훈련을 하며, 극기와 복종을 미덕으로 배운다. 그렇게 스포츠를 배운 선수가 경쟁에서 탈락해 사회에 나오면 부적응을 겪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프로 스포츠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논문에서 야구도의 이념을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일류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사회에 유용한 인재가 되어 길게 야구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고 야구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민규 기자
▶ [현장에서] '부진·약한 동기부여' 넘어설 슈틸리케의 '한 수'
▶ '5명 두 자릿수 득점' 오리온, KCC 잡고 승부 원점
▶ 中 완다그룹과 손 잡은 FIFA, 새 출발? 부패의 시작?
▶ strong>[아드리아노 심층인터뷰] '中으로 거액 이적? 내 심장은 서울에 있다'
▶ STL 오승환, 시범경기 첫 사흘 휴식...팀은 5연패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