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박정희·3김시대 관통한 최후의 증언

![1961년 12월 서울 장충동 최고회의 의장 공관에서 열린 송년파티에서 박정희(앞줄 왼쪽)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재건복을 입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03/05/joongang/20160305003002795gijg.jpg)
김종필 증언록
김종필 지음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엮음
와이즈베리
1 권 530쪽, 2권 436쪽
각 권 2만5000원
2015년 3월부터 10개월간 중앙일보에 연재된 『김종필 증언록-소이부답』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총 962쪽. 두 권의 아름다운 장정이다.
1961년 5·16에서 2004년 4·15총선까지 43년간 김종필(JP·90) 전 국무총리는 한국 역사의 무대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약한 주인공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면서 권력과 세상의 원리를 관찰해왔다. 박정희와 3김시대를 관통하는 최후의 증언이다.
미국의 존 F.케네디는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라고 했다. 진실은 거짓 보다 신화에 무너지기 쉽다는 얘기일 것이다. 김종필의 증언록은 부정확한 오류와 의도적 왜곡, 과장된 비난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잿빛으로 색칠한 어둠의 신화와 대결했다.
그는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전개를 믿었다. 인간성의 명암을 골고루 드러내되 밝음은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배우고 어둠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는 따뜻한 역사관이 증언록을 흐른다.
1965년 타결된 한일협정은 5·16 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나라를 일으키려면 근대화 밑천이 필요하다. 밑천이 나올 수 있는 곳은 대일 청구권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케다(池田) 일본 총리와 비밀 회동을 하면서 실마리를 풀었다.
JP는 “한일회담은 내겐 제2의 혁명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 그 일을 수행하는 게 혁명의 기획자였던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한다. 굴욕외교론이 온 나라를 뒤덮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하야 압력까지 나오자 그는 실권자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했다.
JP는 그 때 한국의 현실을 “민주주의는 피를 먹기 보다 빵을 먹고 자란다. 민주화는 배고픈 사회에선 성립하지 않는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빈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JP는 5·16 거사 뒤 박 대통령과 숱한 대화 속에서 한국의 발전 모델이 조국 근대화→민주화→복지화로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나눴다. 이런 ‘선(先)산업화 후(後)민주화’ 발전 전략이 한국을 전후 신흥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 문턱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었다.
그의 증언에는 통념과 속설을 깨는 파격들이 널려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삶과 진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혁명의 대의(大義)엔 인간의 아픔이 녹아있고, 철권통치자에게도 권력을 멀리하려는 속성이 있다.
JP는 ‘5·16 혁명공약’ 5개항을 자신이 직접 작성했음을 증언록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그 1항에서 JP는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썼는데 이는 박정희의 좌익전력 콤플렉스를 지우고 싶어서였다고 고백했다.
박정희가 JP가 작성한 혁명공약에 제6항을 추가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제6항은 ‘군부는 과업이 성취되면 원대복귀한다’는 내용인데 이처럼 박 대통령은 60년대 중후반까지 집권의지가 약했고 권력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황태성은 밀사가 아니라 간첩’‘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증발’‘박정희의 이승만 환국추진’‘차지철 경호실장 임명은 육영수의 유작’등 역사를 고쳐 써야할 증언들이 수두룩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급작스런 죽음으로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다. JP는 박정희가 못 쓴 그 시대의 민감한 기록을 『김종필 증언록』에 남김으로써 1960~70년대 한국사의 비어있는 중심을 메웠다.
민주화 시대에 들어서 JP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집권에 이르도록 도와 준 과정은 역사의 순환과 해원(解寃)을 생각케 한다. 한국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일어난 1997년 DJP후보단일화 때 JP는 김대중 후보에게 “당신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박해를 내가 보상해주겠다”며 양보했다. JP는 대신 DJ로부터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보답으로 받아 역사에서 두 적대 세력의 화해를 추구했다.
『김종필 증언록』은 회고록 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회고록은 공식적 기록들을 위주로 작성됐고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에 초점을 맞춰 구성됐다. 국가 지도자 내면의 고뇌와 역사 주역들의 가감없는 인간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JP의 현대사 증언은 과거 회고록들의 미흡함을 뛰어 넘는다. 깊고 풍부하고 솔직하고 발랄하다. JP의 성격이 반영됐다.
[S BOX] 14개월간 JP 인터뷰…문서·자료만 1t 트럭 3대 분량
2014년 10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4개월 간 중앙일보의 ‘김종필증언록팀’은 JP의 현대사 기억을 채취했다. 매주 토요일 서울 신당동 JP의 자택에서 2시간 가량 정기적인 인터뷰 외에 주중에도 수시로 증언을 채록했다.
그 결과 100여 시간 분량의 인터뷰 동영상과 A4 용지 2000쪽 가량의 녹취록이 축적됐다. 구순(九旬) JP의 기억은 생생했고 목소리는 정정했다. JP의 구술 내용은 2015년 3월부터 중앙일보를 통해 매주 월·수·금 2개면에 걸쳐 세상에 공개됐다. 연재 회수 총 114회.
JP는 인터뷰에 응할 때 미리 전달받은 그날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당시 상황을 거침없이 회상했다. 신당동 자택의 서재와 창고 등에 쌓인 1톤 트럭 3대 분량의 각종 문서와 자료들이 동원됐다.
수십년간 JP를 보좌해 온 김상윤·이덕주 특보도 처음 듣는 내용들이 쏟아졌다. 중앙일보 증언록팀은 박보균 대기자와 전영기 논설위원, 최준호·한애란 기자로 구성됐다. 이들은 JP의 증언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대적 기록들과 생존한 주요 관계자들의 증언도 청취했다.
JP는 오랫동안 “회고록이 역사 속에서 개인을 미화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다”며 집필을 거절했으나 “후세를 위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중앙일보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대신 연재와 출간이 회고록 보다 증언록 성격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래서 나온 중앙일보 연재물 제목이 “김종필증언록-소이부답(笑而不答)”이었고 출간된 책 제목도 『김종필 증언록』이 되었다.
한기홍 기자 glutto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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