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미국 벤처들이 '차고'서 시작한 이유

2016. 2. 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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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뚝딱 만들어 보는 '종합 공방''한국 차고 없어 창업 부진' 말까지'백견이 불여일행' 해봐야 적성 파악청소년에게 유휴 공간 제공해보자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이공계 르네상스’의 문이 열렸다. 주요 대기업 신입사원 10명 중 8명은 이공계 전공자고,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절반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라고 한다. 극심한 취업난 속 이공계 선호 바람은 교육 판도까지 바꿨다. 전통적으로 문과를 선호했던 여학생들마저 이과를 지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공계 열풍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박수칠 일이다. 이공계 출신들은 기업 활동 중 연구개발(R&D), 생산 등을 담당하는 반면, 문과 출신들은 주로 유통·마케팅 등 판매 활동을 담당한다. 판매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품의 본질적인 경쟁력은 R&D 부문에서 나온다. 혁신 제품으로 시장을 선점한 1등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다. 최근 한미약품이 이룬 8조원 규모의 신약 기술 수출은 국내 제약업계의 판도를 뒤흔든 R&D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전공을 사실상 포기하거나 아예 바꾸는 이공계 대학생들이 많다. 막상 전공수업을 들어보면 어렵기만 하고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적성과 전공의 ‘미스매치’ 현상이다. 과학 영재들이 모인 카이스트(KAIST)의 경우도, 이공계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산업공학이나 기술경영학 등 문과 융합 전공으로 바꾸는 학생들이 꽤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 고교생들은 본인의 적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수학·과학 성적이 높아서 이과를 선택하게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수학·과학 성적이 아니라, 이공계 분야에 얼마나 관심과 열정을 갖고 꾸준히 몰두하는지 여부다.

그렇다면 왜 적성과 전공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걸까. 학생들이 자기가 무얼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해본 적이 없는데 무얼 잘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 보닛을 열고 정비해 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자동차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도 어렵다. 자동차를 함부로 개조하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고장난 TV나 컴퓨터를 직접 분해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삼성 이건희 회장의 취미 중 하나가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라고 한다. 91년 당시 이건희 회장이 일제 비디오플레이어를 구해서 뜯어보니, 삼성 제품보다 품질은 우수한데 부품 수는 오히려 30% 적은 것을 발견하고 그 즉시 대응책을 지시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직접 ‘경험’ 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제조업 강국인 미국·독일·일본의 공통점은 개인이 직접 만드는 ‘DIY(Do It Yourself)’ 문화가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한 철물점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규모가 우리나라 대형마트의 몇 배일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독일은 가정에서 웬만한 기계, 전기, 목공, 배관, 정원 가꾸기 등을 스스로 하는 문화다. 일본의 도큐핸즈는 수십만 가지의 DIY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점이다. 구두 코너에 가면 구두를 수선, 복원, 보관하는 온갖 종류의 물품이 완비돼 있다. 이처럼 선진 제조 강국은 직접 ‘해보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아버지의 날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주는 인기 선물 중 하나가 전동 드릴이나 공구 세트일 정도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이 있지만,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이다.

미국의 많은 벤처기업이 ‘차고(garage)’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미국에서 차고는 단순한 자동차 보관장소를 넘어, 모든 물건들을 만들고 수리하는 ‘종합 공방(工房)’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가구나 자전거를 고치거나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아파트 중심의 주거환경에서는 톱질, 망치질을 마음껏 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창업이 잘 안 되는 것이 차고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가.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처럼,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전국 아파트의 빈 공간이나 공공기관, 주민센터 일부 등의 유휴 공간을 청소년들에게 미국식 차고처럼 공방으로 제공해보자. 무엇이든 자유롭게 만들어 볼 수 있게 말이다. 해봐야 적성을 알 수 있다. 그 경험이 이공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키워 나중에 취업과 창업의 토대가 될 것이다. 현장 경험을 중시한 정주영 회장의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이봐, 해봤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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