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 극한알바 "부모님한테 손벌리지 않겠다"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 밤이 내린다. 설원을 대낮같이 밝히던 조명이 하나 둘 꺼진다. 눈밭을 질주하던 스키어들이 따듯한 아랫목을 찾아 발길을 돌린다. 이때부터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제설(製雪)' 작업을 하는 슬로프 관리직원들이다.
밤 11시. 스키장에서 눈을 만드는 '계절직 알바' 장서원(19)씨가 동료와 함께 출동채비를 서두른다. 태기산의 칼바람이 순식간에 체감 온도를 영하 20-30도로 떨어뜨린다. 두툼한 방한복에 우비까지 걸쳤지만 코가 쩍쩍 달라붙는 혹한이 몸을 파고 든다.장씨의 업무는 눈을 만드는 일이다. 스키장의 제설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높이가 3미터가 넘는 자동 제설기 '팬(fan)타입'과, 호스를 연결해 눈을 쏘아 대는 '건(gun)타입'이다. 제설기에서 하늘을 향해 흩뿌려진 물은 떨어지는 중에 눈발이 된다. 고압의 물을 뿜어내는 '건타입' 제설기는 호스를 잘못 연결하면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혹한에 얼어 붙은 쇠붙이도 위험하다. 장갑이 찢어질 정도로 쩍쩍 달라붙는다. 맨손으로 만지면 동상을 입기 십상이다. 제설기의 굉음과 함께 눈발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눈을 맞아봐야 한다. 스키에 적합한 눈을 만들기 위해 눈 상태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설원을 오르락 거리며 제설기 수십대를 가동하고, 눈맞기를 되풀이한다. 가장 힘든 작업은 제설기 주변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다. 자칫 방심하면 제설기가 눈에 묻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고된 삽질이 시작된다. 작업이 끝나는 아침 7시 쯤이면 옷과 모자에 눈과 땀이 엉기고 얼어붙어 고드름이 열린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오지 않아 밤새워 제설작업을 한다.
"아침 8시가 넘어야 기숙사로 들어갑니다. 파김치가 됩니다. 씻는 둥 마는 둥, 바로 골아 떨어집니다. "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씨는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안 좋은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군대나 가라"는 아버지의 핀잔에 입대 신청을 했으나, 그마저도 떨어졌다. 한동안 방황하던 장씨는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면 그 길밖에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장씨의 눈에 띈 게 '스키장 제설 알바' 공고였다. 그렇게 작년 11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글·사진 주기중·전민규 기자 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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