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카타르 개척자 이정수 "내 딸 이름은 이도하"

최용재 2016. 1.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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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최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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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죠. 올림픽 대표팀에게도 기회의 땅이 될 겁니다."

카타르리그에 한국인 최초로 진출한 '개척자' 이정수(36·알 사드).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뒤 '미지의 땅'이었던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케이스다.

카타르 현지시간으로 지난 17일 저녁, 입이 귀에 걸린 이정수를, 그가 자주 이용한다는 도하 시내의 한 양고기 음식점에서 만났다. 전날 올림픽 대표팀 후배들이 예멘을 5-0으로 꺾고 대승을 거둔 뒤라 선배 이정수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어제 후배들이 참 잘 하더군요.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 그 덕분에 저도 우쭐해진 기분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일간스포츠와 단독 인터뷰를 다 하게 됐잖아요. 솔직히 좀 떨리네요."

기자보다 키가 15cm는 더 큰 이정수(185cm)가 엄살을 부렸다. 그는 먼저 카타르 생활에 대해 "만족한다.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이제 곧 사랑하는 딸도 태어납니다."

사실 이정수는 지난 5년 동안 알 사드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부와 명예를 모두 누렸다.

카타르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것이다.

이런 그의 행보는 한국 축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의 이정수'를 꿈꾸는 많은 한국 축구 선수들이 카타르 땅을 밟기도 했다. 이제는 '이정수=카타르축구 전도사'라는 등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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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는 저녁 식사를 하며 카타르 생활 적응기와 카타르의 매력, 그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놨다. 아내 한태윤(탤런트)씨와 딸을 향한 고마움도 전했다. 결혼 4년만에 오는 6월 출산하는 딸은 카타르에서 만난 최고의 보물이다. 그는 "곧 태어날 내 사랑하는 딸 이름이 '도하'(카타르 수도명)입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그의 카타르 사랑은 남달랐다.

◇이정수의 카타르 생활記

이정수는 말끔한 상태로 등장했다.

지난 해까지 콧수염을 길러 카타르 현지인과 헷갈릴 정도였지만 말쑥해졌다. 그는 "올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해보자는 의미로 면도를 했다"고 웃었다. 음식점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자 "콧수염이 있을 때는 많이 알아보세요. 그런데 면도를 하니 못 알아보는 것 같네요"라며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카타르로 간 이유는.

"솔직히 말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좋은 대우였다. 그리고 중동을 한 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사드가 상위권 팀이어서 선택을 했고 아마 하위권이었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소속팀 가시마 앤틀러스 감독님이 카타르에서 12년 계신 분이라 카타르에 대해 많이 알려줬다."

-이렇게 오래 머물지 예상 했나.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갑갑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1년이 지났을 때 너무 힘들어 다른 동아시아팀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딱 2년이 지나니 적응이 됐고 좋은 곳이라 느꼈다. 취미 생활로 낚시를 즐기고 맛집도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생활했다. 중간에 중국에서 한 번 강하에 오퍼가 왔는데 카타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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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클럽 생활의 장단점은.

"가장 큰 장점은 원정 피로도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경기장이 도하 근처에 있어 원정 경기를 20분이면 다 갈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관중이 많이 없다. 흥이 떨어지고 긴장감도 덜하다. 인구도 적고 날씨가 더워 야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관중이 꽉 차는 일은 거의 없다."

-카타르 리그 수준은.

"현지 선수들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감독님과 동료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운다. 외국인 공격수들은 수준이 뛰어나다. 많은 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들이라 수비할 때 부담스럽다. 현지 선수들은 한국과 일본보다 떨어지지만 공격수 수준은 높다."

-많은 후배들이 카타르에 진출했다.

"2014년에 한국 선수 10명이 있었다. 정말 좋았다. 선수들끼리 식사도 하고 가족들끼리 모여 여행도 갔다. 후배들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줬다. 내가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힘들었던 것이 생각나 힘이 돼줬다. 개인적으로 뿌듯한 일이다."

-2022년 월드컵 개최에 대한 생각은.

"축구협회와 구단들이 많이 투자하고 있다. 매년 건물 올라가는 속도를 보면 너무 빠르다. 2022년 정도 되면 두바이 못지않게 발전돼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겨울에 개최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인프라적으로는 완벽할 것이다. 문제는 관중이다."

-사비 에르난데스(36)와 동료다.

"사비가 처음 온다고 했을 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이전에 라울 곤잘레스(39)가 온 적이 있어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옆에서 보니 볼 키핑 능력이나 패싱력은 아직도 세계 최정상급이다."

-사비는 어떤 선수인가.
"동갑 친구다. 많이 친해졌다. 특히 인간성이 좋다. 사실 라울은 스타의식이 강했다. 그런데 사비는 그렇지 않다. 선수들과 어울리려 먼저 다가서고 노력한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이다.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다. 선수들 다 좋아한다. 그래서 구단에서 오자마자 바로 캡틴을 시켰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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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의 크로스를 골로 성공시킨 첫 한국 선수다.(2015년 9월 13일 정규리그에서 사비의 프리킥을 이정수가 헤딩으로 득점)

"사비가 크로스를 올려 내가 골을 넣었다고 한국에서 기사가 많이 났더라. 한국에서는 라울보다 사비가 더 유명한 선수라고 그때 느꼈다. 라울이 어시스트를 해서 내가 골을 넣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기사가 하나도 안 났다. 사비의 크로스 특별한 건 없었다. 사비는 그냥 올렸는데 내가 헤딩을 잘한 것이다.(웃음)"

-홈구장에 에어컨이 나온다고.

"어떨 때 춥기까지 하다. 그 정도로 빵빵하게 틀어준다. 이곳에서 우리만 에어컨이 있다. 다른 팀 선수들이 너무 좋아한다. 시원하다보니 다른 경기장과 비교해 뛰는양이 다르다."

-카타르에 언제까지 있을 계획인가.

"알 사드와 6개월 계약이 남았다. 이제 나이가 드니 1년마다 재계약을 하고 있다. 이번에 계약을 해준다면 더 있고 싶다. 알 사드에서 코치 제안도 했지만 지금은 현역에서 더 하고 싶다."

-현역 생활은 언제까지.

"(이)동국이 보다 오래해야지. 동국이가 전북과 2년 재계약했다는 소식이 나에게는 큰 자극이었다. 내가 빠른 80(이정수는 1980년 1월생, 이동국은 1979년 4월생)이라 동국이와 친구지만 한 살 어리다. 그러니 동국이보다 더 오래할 것이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이)영표형이 정말 오래 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김)남일이 형이 오래하더라. 남일이 형보다도 내가 오래해야지."

-K리그에 대한 그리움이 있나.

"물론 있다. 특히 나의 K리그 마지막 팀 수원이 그립다. 수원 시절 (곽)희주와 마토가 다 해 내가 할 일은 없었다. 현역 마무리를 수원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터뷰가 무르익자 이정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지금이야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충격이 컸던 일들이다. 첫 번째 사건은 역시나 수원 삼성과 알 사드의 폭력전이었다. 2011년 10월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일대 사건이 터졌다.

이정수는 알 사드의 일원으로 친정팀 수원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을 펼쳤는데 집단 난투극이 발어졌다. 경기 중 수원에 부상자가 생기자 수원은 공을 밖으로 내보냈다.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당연히 알 사드가 공을 수원에 돌려줬어야 했는데 그들은 비신사적으로 바로 공격을 시도해 골까지 성공시켰다. 흥분한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엉겨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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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는 알 사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팀 동료들의 행동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매너없는 플레이라며 수원에 1골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자진 퇴장했다. 이후 알 사드에서 이정수의 입지가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수원전 이후 상황이 어땠나.

"알 사드로 돌아와서 그 문제로 감독과 미팅을 한 번 했다. 하지만 알 사드에서 불이익을 당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알 사드에서 잘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팀 동료들이 큰 도움을 줬다고.

"동료들이 나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줬다. 도하에서 카타르 현지 기자들이 팀과 반대편에 선 나를 인터뷰하려고 많이 시도했다. 그럴 때 마다 선수들이 다 막아줬다. 인터뷰 하지 말라고 기자들과 싸워줬다. 동료들에게 많이 고마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료들과 더욱 친해졌고 아이러니하게도 알 사드 반대편에 선 것 때문에 알 사드에 더 녹아들 수 있었다."

-고마운 동료들에 보답도 했다고.

"축구 선수들이라 축구화를 좋아한다. 돈을 많이 버는 친구들이지만 카타르에서 사기 힘든 축구화도 있어서 그런 브랜드를 구해서 선물했다. 너무나 좋아하더라. 그 다음부터 더 돈독해졌다."

2013년 2월 6일 런던에서 열린 한국대표팀과 크로아티아의 평가전이 이정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뛴 마지막 A매치였다. 그 이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속내도 들었다.

-대표팀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전혀 없다. 요즘 젊은 선수들이 너무 잘 하고 있다. 내가 낄 자리가 없다. 그리고 내 나이면 대표팀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예전에 대표팀에 갔다올 때면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 시차적응이었다. 카타르에서 한국을 갔다 오면 역시차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데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으니 불면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컨디션도 올라왔다. 지금 내 상황에서 대표팀에 가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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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문화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이정수는 카타르 진출 초기 크게 당황했던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중동에서 큰 일날 뻔 한 적이 있다고.

"알 사드에 처음 왔을 때다. 이탈리아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훈련 뒤 샤워장에서 자연스럽게 샤워를 했다. 그런데 팀 동료들의 눈이 커지고 당황해 하더라.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난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샤워를 끝냈다. 그런데 감독님이 급하게 나를 불렀다. 감독님은 '앞으로 샤워를 할 때 타이즈를 입고 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중동에서는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하지 않는다더라. 종교적인 이유로 중요 부위를 상대에게 절대 노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말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제서야 동료들 눈빛의 의미를 알았다. 하하."

◇나의 딸 이름은 이도하

이정수는 2009년 지인의 소개로 아내 한태윤(33)씨를 만났다.

한씨는 탤런트 출신으로 수려한 미모를 지녔다. 이정수는 2010년 10월 한태윤과 열애 사실을 공개했고, 2011년 6월 9일 웨딩마치를 올렸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미모의 탤런트의 결혼으로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혼 부부는 신접살림을 카타르에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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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 뒤 연기자를 포기했다고.

"탤런트를 계속 했어도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웃음) 농담이다. 카타르에 혼자 있으면 내가 우울증에 걸릴 수 있으니 같이 있자고 했다. 아내가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지금도 연기 생활에 대한 미련이 조금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고맙고 또 고마운 사람이다."

-요리 실력이 그렇게 좋다고 들었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는 떡볶이도 못했다. 요리학원도 다니면서 요리를 배우더라. 지금은 조미료를 쓰지 않고도 엄청나게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 남편 건강을 위해 조미료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카타르에 온 한국 선수들에게도 가끔식 대접을 하는데 후배들이 극찬을 한다."

-내조의 여왕이라고.

"와이프는 나에게 축구 말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성격도 꼼꼼해서 모든 것을 다 챙겨준다. 원정을 갈 때도 짐을 다 챙겨준다. 여행을 가기 전 스케줄은 아내가 다 짠다. 월급 관리도 아내가 한다. 축구 외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아내가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아내 덕분에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주변에서는 장가를 잘 갔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결혼 4년 만에 2세를 가졌다.
"아이를 일부러 늦게 가지려 한 것은 아니었다. 노력을 했는데 쉽게 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2010년 카타르로 와서 우리 부부가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병원을 가보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카타르에 적응하고 편해지니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겼다. 오는 6월 출산 예정인데 딸이다. 아내는 아들을 원했지만 나는 딸이 좋다. 요즘은 딸이 귀하지 않나."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가.

"(이)도하."

-농담 아닌가. 정말 '도하'인가.

"정말이다. 아기 성별이 정해지기도 전에 '이도하'라고 지어놨다. 중성적 이름이라 아들, 딸 다 가능한 이름이었다. 도하에서 소중한 2세를 가졌으니 도하로 짓기로 했다. 한자로는 길 도(道), 열릴 하(
?)를 쓴다. 길이 크게 열린다는 좋은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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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로도 '도하'는 특별한 뜻이라고.

"아랍어로 큰 나무라는 뜻이다. 사막에서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매우 좋지 않나. 곧 태어날 도하를 위해 유니폼도 맞춰 놨다. 도하가 태어나면 동생 2명 정도를 더 계획하고 있다.(웃음)"

도하(카타르)=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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