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2015 한국영화 여성들, 안녕하십니까



영화계의 성차별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할리우드 흥행작 100편 중 여배우가 단독 주연 혹은 공동 주연급으로 출연한 영화는 21편이었고, 여성 제작진 비율도 15.9%에 불과했다. 흥행작 22편의 영화를 벡델 테스트를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

2 두 여성이 서로 대화를 하는가.
3 대화의 내용이 남성과 관련 없는가.
여기 세 가지 조건이 있다. 한 영화가 양성 평등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따져보는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다. 예컨대 magazine M이 올해의 외화 1위로 꼽았던 ‘매드맥스:분노의 도로’(5월 14일 개봉, 조지 밀러 감독, 이하 ‘매드맥스’)는 여전사들이 다수 등장하는 덕에 세 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했다. 벡델 테스트가 처음 고안된 건 30년 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스 벡델의 작품 ‘경계해야 할 레즈비언(Dykes To Watch Out For)’에서였다. 1985년 신문에 연재되던 이 만화의 캐릭터가 영화를 보러 가면서 친구에게 언급한 테스트가 시초가 됐다. 벡델 테스트는 양성 평등 이슈가 활발해진 2010년대에 이르러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영화·TV·책 등을 논할 때 흔히 쓰는 기준으로 부상했다. 물론 이 테스트가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다. 다만 한 영화가 소재 선택과 캐릭터 재현에 있어 얼마나 남성 위주인지를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편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8편은 ‘암살’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뷰티 인사이드’ ‘오늘의 연애’ ‘더 폰’ ‘차이나타운’ ‘장수상회’ ‘그놈이다’였다. 대체로 여성이 비중 있게 나오는 멜로와 드라마 장르에서 통과율이 높았다. 하지만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그 여성을 제대로, 입체감 있게 그렸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구체적인 캐릭터 분석은 다음 파트에서 짚어 본다.

1. 최소 한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2. 그 여성이 자신이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
3. 그 이야기가 남성 인물의 이야기를 보조하는 데 그치진 않았나.
이 테스트는 여성이 영화에 몇 명이나 등장하는지보다 여성이 중심 인물로서 얼마나 비중 있고, 정형성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따진다. 예컨데 우주 미아가 될 뻔한 여성 우주 비행사의 지구 귀환을 그린 ‘그래비티’(2013, 알폰소 쿠아론 감독)는 여성이 한 명밖에 등장하지 않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나, 마코 모리 테스트는 통과할 수 있다.
영화 22편 중에서 마코 모리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총 10편이었다. ‘암살’ ‘검은 사제들’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극비수사’ ‘뷰티 인사이드’ ‘오늘의 연애’ ‘히말라야’ ‘차이나타운’ ‘장수상회’ ‘그놈이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던 ‘검은 사제들’은 악귀에 씌인 영신(박소담)이 개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물이기에 마코 모리 테스트를 통과했다. ‘극비수사’ 역시 주요 여성 캐릭터인 은주 엄마(이정은), 은주 고모(장영남)의 이름이 없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유괴된 은주를 찾기 위해 극비 수사를 요청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마코 모리 테스트를 통과했다.

여전사 안옥윤, 2015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
수난당하는 여성들을 구하라
올해 우리를 찾아온 한국영화 속 여성들은 여전히 엇비슷하고 빈약하며 이야기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몇몇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주목할 만했고 빛나는 성취를 남겼다. 여전히 한국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지만 말이다. 그 결을 보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 상업영화와 다양성 영화를 아울러 여성 캐릭터들을 유형별로 분석했다. 2015년 한국영화에는 이런 여성들이 살았다.
type 1 전사 혹은 킬러


할리우드의 여전사는?
수퍼 히어로를 비롯해 해가 갈수록 거세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공세 속에 여전사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대작은 전 세계 다양한 관객의 취향을 고려해 주·조연 캐릭터의 성(性)과 인종을 어느 정도 다양하게 안배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type2 소녀

이 영화들은 ‘학대당하는 여성 육체’의 이미지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 사실만 놓고 부정적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육체를 통해 폭로되는 실체 때문이다. ‘경성학교’는 제국과 학교라는 거대한 체제의 거짓말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소녀들을 보여준다. ‘인 허 플레이스’에서 ‘씨받이’와 같은 존재가 된 소녀는 가혹한 육체적·심리적 공포를 경험한다. ‘들꽃’(11월 5일 개봉, 박석영 감독)에서 거리에 내던져진 세 소녀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다.
그런 면에서 ‘검은 사제들’은 좀 더 다른 지평으로 나아간다. 극 중 소녀 영신은 단순한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구원의 주체가 된다. 영화 속 가장 연약한 존재로 등장하는 소녀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권력과 폭력의 실체를 환기시킨다.
type3 요부


이 영화는 남자들의 약육 강식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범죄 누아르에 여성 캐릭터를 대입시킴으로써 변주를 시도한다. 우희에게 부여된 ‘엄마’는, ‘보스’나 ‘형님’이나 ‘대부’ 같은 호칭과 다를 바 없다. 그에겐 모성애가 없으며 적자생존의 법칙 속에 일영에게 죽임을 당한다. ‘차이나타운’은 장르의 공식을 통해 ‘어머니’라는 이름이 지닌 모성의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으며, 김혜수의 연기는 캐릭터를 매우 적절하고 영리하게 구현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 수반돼야 할 ‘여성성’에 대한 좀 더 깊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두 영화가 ‘을-여성’의 가차 없는 복수라면, ‘마돈나’(7월 2일 개봉, 신수원 감독)의 미나(권소현)나 ‘거짓말’(10월 29일 개봉, 김동명 감독)의 아영(김꽃비)은 참혹한 현실을 드러낸다. 그들은 가족의 가난을 떠안고 살아간다. 미나는 직장을 전전하다 강간당하고 결국 몸을 파는 신세가 된다. 아영은 ‘리플리 증후군’ 속에서 현실을 부정한다. 살인자·성매매 여성·정신병자…. 우리 사회의 뒤틀린 현실은 종종 이런 극단적인 설정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카트’(2014, 부지영 감독)의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이 사라진 건 아쉽다. 그리고 여기,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위로공단’(8월 13일 개봉, 임흥순 감독)은 1970년대 ‘공순이’부터 21세기의 ‘콜순이’까지 여성 노동사를 강한 울림의 이미지에 담아낸다.

‘뷰티 인사이드’의 이수가 매일 다른 모습의 연인을 사랑함으로써 이른바 만인의 연인 판타지를 실현한다면, ‘오늘의 연애’의 현우(문채원)와 ‘쎄시봉’의 자영(한효주)은 ‘나쁜 여자’ 판타지를 대표한다.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그것도 첫사랑의) 대상이자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자들이다. 두 영화는 결국 그 여자들이 남자 주인공의 마음, 그 순애보를 알아주는 것으로 끝난다.


일본영화 ‘종이 달’(7월 23일 개봉,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주인공 리카(미야자와 리에)는 정반대 지점에서 충격을 안겼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 그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말단 노동자다. 그는 자신의 경제력이 허락하는 범위 너머의 욕망을 품은 채 끝까지 질주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피스’가 결말에 다다를수록 판타지로 빠지며 일하는 여성의 현실을 한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도발적인 결말이었다.
도전하는 여배우와 투자사가 있어야 만들죠
한국 여성 제작자와 프로듀서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영화가 내용면에서 양성 평등을 이루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올해 관객 1000만 명을 동원한 한국영화 두 편 ‘암살’과 ‘베테랑’의 제작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영화를 직접 기획·제작하는 여성 제작자와 프로듀서는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와 제작 환경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베테랑’을 제작한 외유내강의 강혜정(45) 대표, ‘암살’을 제작한 케이퍼필름의 안수현(44) 대표를 비롯해 ‘검은 사제들’의 흥행을 이끌어낸 영화사 집의 이유진(47) 대표, 여성 누아르 ‘차이나타운’을 만든 폴룩스픽쳐스의 안은미(41) 대표, 연말 극장가를 노린 대작 ‘대호’(12월 16일 개봉, 박훈정 감독)의 박민정(38) 프로듀서 5인의 목소리를 전한다. 몇몇 민감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익명으로 표기했다.
Q : 최근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고 보십니까?
A : 안수현(이하 안) 과거보다 더 능동적이고 강한 여성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차이나타운’의 우희와 일영은 과거엔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안은미(이하 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캐릭터가 훨씬 다양해졌다. 멜로가 대세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에 사랑에 빠진 여성 캐릭터가 주를 이룬 것과는 다르다.
강혜정(이하 강) 특히 냉혹한 직업 세계에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특종:량첸살인기’의 언론사 데스크 백 국장(이미숙), ‘암살’의 독립투사 안옥윤, ‘감시자들’(2013, 조의석·김병서 감독)의 감시반 이 실장(진경)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의 중심에 있는 여성 주인공은 여전히 적다.
Q : 올해 흥행한 한국영화 중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한국영화가 적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 안 가장 큰 이유는 장르의 유행이 변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허진호 감독) ‘엽기적인 그녀’(2001, 곽재용 감독) 등 멜로가 인기라 심은하·전지현·손예진 등 좋은 여배우들이 작품과 함께 성장했다. 지금은 감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액션·스릴러·블록버스터가 대세다. 여기엔 영화를 보는 환경이 변화한 이유도 있다. 이젠 영화를 TV에서 쉽게 볼 수 있어 관객은 이른바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를 고르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장르적 관습에 따라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많아졌다고 본다. 자연스레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유진(이하 이) 장르의 쏠림 현상은 확실히 있다. 할리우드는 해외 판권 시장 등 시장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지만, 한국영화는 대개 국내 시장 위주로 공략하기 때문에 제작비 대비 흥행을 보장하기 어려운 장르는 피하게 된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주연한 ‘와일드’(1월 22일 개봉, 장 마크 발레 감독) 같은 영화는 한국에선 나오기 쉽지 않다.
박민정(이하 박) 멜로가 쇠퇴하면서 멜로 외의 여성 장르 영화를 개발하겠다는 의욕도 동시에 사라진 듯 보인다. 호러와 드라마를 뒤섞은 여성 주인공 영화인 ‘여고괴담’ 시리즈(1998~2009) ‘장화, 홍련’(2003, 김지운 감독) 같은 영화가 이젠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Q :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때 흥행에 부담이 된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A : A 주인공의 성별 자체가 흥행을 좌지우지하진 않는다. 매력적 이야기가 더 관건이다.
B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꼭 부담되는 것은 아니다. 70대 할머니가 20대 소녀가 된다는 판타지 설정을 내세운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도 흥행하지 않았나.
C 흥행 부담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는 연출 자체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여성이 지닌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의 결을 그려내려면 남다른 통찰력도 꼭 필요하고, 연출도 더 섬세해져야 한다. 거칠게 말해 남성 인물을 그릴 땐 의리와 야망 등 보편적인 정서로 관객을 이해시켜도 큰 문제가 없는데, 여성 인물은 그렇지 않다.

Q : 여성 주인공을 내세웠을 때 투자사 등에서 외압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A : A 투자사 측으로부터 “그럼 어떤 여배우를 캐스팅할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많다. 이 질문엔 여배우만으론 관객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연기력이 탁월하고 인지도 높은 중견 배우를 거론해도 “젊은 세대는 그를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B 대놓고 주인공을 남자로 바꿔 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C 몇 년 전 두 여성이 주인공인 심리 스릴러를 만들려 했는데, 투자사로부터 이런 설정이면 시나리오를 더 자극적으로 바꿔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제작에 난항을 겪자 남성 제작자 선배가 “힘든 길 가지 마라”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하더라.
D 현재 여성 주인공 영화는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Q : 여배우 수도 적고 그들을 위한 시나리오도 없다는 이야기가 영화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 A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무엇이 더 문제라고 꼬집을 수 없다.
B 각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지만, 세대별로 따져봤을 때 한 영화를 진득하게 끌고 갈 여자 배우가 남자 배우보다 부족한 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유아인의 티켓 파워를 가진 또래 여배우는 찾기 어렵다. 젊은 여배우로는 전지현이 유일하다. 나만 해도 캐스팅할 여배우가 없어 주인공을 남자로 바꿀까 생각한 적도 있다.
C 제작자로서 한창 연기에 매진해야 할 여배우들이 몸을 사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광고 계약, 매니지먼트의 과보호로 이미지 변신을 두려워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배우가 감독과 작가에게 캐릭터에 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면, 그 모습 자체가 영화의 영감이 될 텐데. 저예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한 배우 이정현은 신인 감독과 작업하며 상당한 시너지를 냈고 좋은 선례를 남겼다.
Q : 여성 제작자·프로듀서로서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십니까?
A : (인터뷰이 모두 대답에 앞서 캐릭터의 성별보다 그 인물을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 형사의 아내 주연을 응원하고 싶은, 소신 있는 여자로 그리려 했다. 형사의 아내는 대개 바가지 긁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그보다는 삶의 가치관이 뚜렷한 강인한 여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 ‘암살’의 옥윤은 기존 독립 투사의 전형적 모습이 아니라 땅에 발을 붙인 현실적 인물로 그리려 했다. 옥윤은 총을 다루는 군인이라는 확고한 직업적 정체성과 독립 운동에 관한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동시에 긴 머리를 고수하고 긴 치마와 코트를 즐겨 입고 “커피도 마시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은” 여성이기도 하다. 옥윤을 입체적으로 그려야 관객이 그에게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검은 사제들’의 영신을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하는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게 그렸다. 그가 안간힘을 다해 사령을 자기 몸에 붙잡고 있다고 설정한 이유다.
Q : 제작자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여성 묘사는 어떤 것입니까?
A : 강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거나 성폭행하는 묘사·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불필요한 자극적 묘사가 많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이걸 왜 내게 가져왔냐’고 할 거다.
이 여성을 일명 ‘민폐 캐릭터’로 그리는 건 질색이다. 위험에 빠진 여성이 이해할 수 없는 실수로 더 큰 위기를 만든다는 극적 상황은 피하려 한다.
은 남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여성 캐릭터는 되도록 그리지 않으려 한다.
박 여성이든 남성이든 주인공의 고난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인물을 도구적으로 쓰는 건 피하려 한다.
Q : 30세 직장 여성의 삶을 다룬 ‘인턴’, 매력적인 여전사 퓨리오사가 나온 ‘매드맥스’ 등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외화의 성공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A 나도 ‘인턴’ 같은 영화를 제작하고 싶지만 만들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앤 해서웨이만큼 존재감 있는 배우를 찾지 못해 캐스팅에 실패하고 투자도 못 받고 그렇게 3년 동안 허송세월하지 않을까(웃음).

Q : 영화 산업에 대해 묻겠습니다. 여성 프로듀서는 여럿 등장하고 있는데 왜 여전히 여성 감독의 수는 적을까요?
A : A 시나리오 작업 등 창의력 측면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탁월하다고 본다. 내 편견일 수 있지만 여성 감독·작가가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며 감각적이다. 문제는 여성 감독 지망생들이 고된 현장 일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거친 영화 현장을 몸으로 부딪쳐 이겨내는 훈련은 감독이 되는 데 꼭 필요하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단편 영화제에서 대상 받는다고 감독으로 캐스팅되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B 장르의 문제도 있다. 여성 감독 지망생들은 드라마나 멜로를 많이 쓰는데, 그러한 장르는 요즘 영화 시장에서 채택되기 어렵다. 현장에서 남성 감독보다 추진력이나 통솔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통념일 뿐이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써 오는 사람이 감독이 된다.
Q : 현장에서 양성 평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A : 은 지금 영화계엔 성차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97년 영화계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선배들이 우스갯소리로 “현장에는 남자, 여배우, 장비만 있다”며, 여자 스태프에게 “남자 할래, 장비 할래?”라고 물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각자의 영역과 장점을 인정해 주고 있다.
안 현장에 성차별이 있다면 무거운 촬영 장비를 날라야 하는 촬영부엔 남자가 많고,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미술부에 여자가 많은 정도다.
강 할리우드에서 여배우의 출연료가 남자 배우보다 적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는데, 한국 영화계에 임금이나 출연료 차별은 없다. 하지만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 각 부를 이끄는 주요 스태프는 남자가 더 많다.
Q : 한국 영화계의 양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A : 강 여성 영화인의 수가 더 늘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생존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성 감독은 당대를 관통하는 고민을 담아 극을 쓰고, 여배우는 배우답게 온몸으로 부딪쳐 연기해야 하고, 여성 제작자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신선한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
은 여성을 묘사할 때 캐릭터를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 시스템이 만든 통념의 시선으로 여성을 그리진 않았는지, 그 인물이 여성이자 한 인간으로서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러기 위해선 여성에 관한 철학적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안 현재 여배우가 적다는 우려가 많지만 김민희·공효진 등 놀라운 속도로 연기 영역을 확장하는 배우도 눈에 띈다. 40세가 넘어도 건재한 전도연·김혜수 같은 배우도 많다. 이들을 맞춤하게 활용하는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게 근본적 대안이다.
특별취재팀 장성란·김효은·김나현 기자 hairpin@joongang.co.kr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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