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챌린저 & 체인저] 에스티로더가 반했네요 .. 이 AA급 BB크림
![건축학도 출신으로 피부과 화장품 ‘닥터 자르트’를 만든 이진욱 해브앤비 대표가 직접 화장품을 발라보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소비자들이 바라는 건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며 “품질 만큼은 글로벌 기준으로 어느 나라에서든 자신있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511/16/joongang/20151116001105673ohlr.jpg)

지난달 26일 화장품 업계에선 미국 에스티로더그룹의 ‘한국 기업 첫 투자’가 단연 화제였다.
에스티로더는 에스티로더·바비브라운·크리니크·맥·오리진스·아베다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이다. ‘K-뷰티’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투자를 받은 주인공은 중소 화장품 업체인 해브앤비(HAVE&BE)다. 이 회사 브랜드인 닥터자르트 ‘실버 BB크림’은 2005년 출시 이후 국내에서만 10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매출도 2011년 380억원에서 올해는 85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서를 떠올리게 하는 해브앤비는 건축사로 일하던 이진욱(39)대표가 2004년 창업한 회사다. 에스티로더의 투자 발표 직후 서울 역삼동 해브앤비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세상을 알고 싶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보려고 창업했다”면서 “글로벌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가 됐으니 어느 정도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 대표는 피부과에 갔다가 여성들이 너도나도 병원에서 판매하는 수입산 블레미쉬 밤(Blemish Balm), 일명 ‘BB크림’을 사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BB크림은 원래 시술을 받은 뒤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피부 재생을 돕기 위한 의료용 제품이다. 그런데 정작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잡티를 가리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그는 ‘피부과 화장품을 일반인도 바를 수 있게 하자!’며 무릎을 쳤다.
처음엔 1인 벤처였다. 지인에게 피부과 의사와 전문가들을 소개받아 어떤 원료들을 써야하는지 설명을 구한 뒤 무작정 제조사를 돌았다. A공장에 가서 ‘이런 화장품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은 뒤 거절당하면 B공장을 가고 다시 C공장을 찾아갔다. “제조사나 유통사나 문전박대였죠. 미팅하자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연락주겠다’고 해놓고 답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어요. 브랜드도 없는 회사인데 당연한 일이다, 기회를 노리자고 다짐했죠.”
그는 최고의 무기는 품질이라고 믿었다. 광고를 포기하고 모든 돈을 제품 개발·제조에 쏟아부었다.
“비타민이든 천연성분이든 가장 좋은 원료, 최고로 좋다는 걸 썼어요. 직원들은 우리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아니까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큽니다.”
그렇게 내놓은 수분크림과 BB크림은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맨얼굴처럼 보이는 ‘쌩얼’이 유행하면서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미국을 노렸다. ‘글로벌 브랜드가 되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가장 유명한 유통채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세계적인 화장품 유통 체인인 ‘세포라(Sephora)’의 미국 매장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다. 4년 가까이 준비하고 2009년 세포라의 문을 두드렸다. 문턱은 높았다. ‘한국은 알겠는데 어디 있는 나라지?’라는 식이었다. 3년을 꼬박 공을 들인 후에야 닥터자르트는 2012년 세포라에 입점할 수 있었다.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비슷한 시기였다. 이 대표는 “미국 시장부터 공략한 우리가 진짜 K-뷰티의 선두주자”라고 말했다.
진출 첫 해부터 뉴욕패션위크 패션쇼에 무료로 제품을 후원한 게 주효했다. 화장품을 써 본 모델과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 ‘입소문 마케팅’이 매출을 끌어올린 것이다.
닥터자르트는 2012년부터 미국에서 매년 50% 이상 성장해 현재 세포라 전 매장(약 740개)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미국 플래그십스토어에서 ‘K-뷰티 이노베이션’이란 키워드로 한국 문화 전반을 알리고 있다. 정보기술(IT)·대중문화·음식 등을 함께 소개하며 브랜드가 주는 느낌 자체를 접하도록 한 게 특징이다.
이 대표는 화장품을 단순히 미용과 관련된 제품이 아니라 문화 상품으로 정의한다.
“화장품이라고 화장품만 생각하면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없어요. 애플의 심플한 디자인, 구글의 놀이터같은 문화를 제품에 녹여야죠. 직원들끼리 유행하는 취미, 잘 나가는 클럽, 맛집 등을 자유롭게 얘기해야 진짜 괜찮은 발상이 나온다고 봐요.”
대표 브랜드인 닥터자르트의 이름도 피부과 화장품을 의미하는 ‘닥터’와 시대 트렌드를 반영하는 ‘아트’를 ‘결합한다(join)’는 의미로 지었다.
일례로 해브앤비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 ‘DTRT’에는 ‘남성들이여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는 문화코드가 담겨있다. 이 대표는 “남자들도 술이나 마시고 여자 눈치 보며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라며 “피규어·서핑·캠핑·마라톤 등 취미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진출국은 어느덧 11개국으로 늘었다. 2013년에 중국, 올해는 호주로 시장을 넓혔다. 내년엔 스페인으로 나간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K-뷰티’의 정의는 뭘까.
그는 “유니크(Unique)함”이라고 답했다. 그는 “K-뷰티엔 정말 뭔가가 있다. 장인정신이 있으며서도 합리적이고, 세련되면서도 엣지있고, 우리만 생각해낼 수 있는 기발한 유머코드도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에스티로더의 투자가 “K-뷰티의 글로벌 진출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안에 에스티로더가 해브앤비의 2대 주주를 맡아 연구개발과 해외 마케팅에서 협력할 계획이다. 그는 “2년 전부터 에스티로더와 꾸준히 협의를 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라며 “회사 경영과 브랜드 독립성을 보장한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구체적인 투자 금액은 계약조건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르면 내년부터 성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 대표는 “지금은 매출 70%가 한국이고 해외가 30%지만 앞으로는 반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벤츠와 애플 등은 글로벌 브랜드 그 자체로 국가 이미지를 높인다”며 “우리의 애국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글=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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