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훌륭하다"가 반공법 위반이던 시절

김도균 2015. 10. 3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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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전 신문기사 SNS에서 회자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

▲ 피카소 찬양하면 반공법 위반 1969년 6월 9일자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한 장의 옛 신문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사용자 김호경씨는 지난 29일 사진 한 장과 함께 "페친 한 분이 이 사진을 올리셨길래 기가 막혀서 검색해보니 1969년 6월 9일 경향신문 기사다"라고 시작되는 글을 올렸습니다.

김씨가 올린 글과 사진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확인해 봤습니다. 문제의 기사는 1969년 6월 9일 월요일 <경향신문> 7면에 '피카소 찬양하면 반공법 위반'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2단짜리 기사였습니다.

피카소를 찬양했다고 범법자가 됐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먼저 당시 기사 전문을 옮겨보겠습니다.

서울지검공안부(최대현 부장검사 김종건 검사)는 9일 상오 불란서 화가 「피카소」를 찬양하거나 그의 이름을 광고 등에 이용하는 행위는 반공법4조1항(국외공산계열의 동조찬양, 고무)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차로 크레온 제조업자인 삼중화학 대표 박진원씨(45)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또한 동사제품「피카소·크레파스」등의 광고를 금지시키고 판매중인 상품의「피카소」이름을 지우도록 지시했다. 검찰에 의하면 삼중화학은 68년 10월부터 크레파스, 포스터 칼러 등을 제조,「피카소」라는 상표를 붙여 팔아왔다.

검찰에 의하면「피카소」는 좌익화가로서 1944년 국제공산당에 입당, 소련에서「레닌」평화상을 받았으며 한국동란때는「조선의 학살 」「전쟁과 평화」 등 공산당을 선전하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 검찰은 이밖에도 코메디언 곽규석씨가 사회를 본 모민간TV쇼 프로에서 「피카소」라는 별명의 이름을 등장시킨 제작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곽씨가 좋은 그림을 보고「피카소」그림같이 훌륭하다고 말한 이면도 캐고 있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가 크레용 제조업체 삼중화학공업 사장 박진원씨를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한 이유는 이 회사가 8개월 전 내놓은 크레파스와 그림물감 등의 상표로 프랑스 화가 피카소의 이름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검찰은 피카소가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있고,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렸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상표로 쓴 것을 문제 삼았군요. 이 일이 반공법상 '국외공산 계열에 동조하고, 찬양고무하는 일'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심지어 검찰은 드라마에서 피카소란 별명의 이름을 등장시킨 동양TV 제작자를 소환하고, TV쇼 프로그램 사회자 곽규석(1928~1999)씨가 좋은 그림을 보고 '피카소 그림 같이 훌륭하다'고 말한 의도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고은 시인은 이 일을 두고 훗날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코미디언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그의 TV쇼 생방송에서 함부로 갈겨댄 것을 보며 "이거 피카소 그림같소"라고 말했다가 정보기관에 불려가야 했다.
"당신, 피카소가 누군지 알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이 양반아 그 피카소가 바로 공산당인줄 몰라?"
"모릅니다"
"이따위 한심한 사람 같으니라구···앞으로 피카소의 '피'자만 나와 봐라. 그때는 단단히 혼날 줄 알라구" (고은 자전소설 나의 산하 나의 삶 중에서)

곽규석씨는 조사를 받고 훈방되었지만, 삼중화학은 자사의 크레파스 이름을 '피카소'에서 '피닉스'로 바꿔야 했습니다. 

이런 만화같은 일을 벌였던 검찰도 낯 뜨거웠던지 '피카소의 예술을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논하는 것은 괜찮으나, 피카소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찬양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고의가 인정될 때는 반공법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는 군요.

피카소를 좋아하면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던 시절, 그때의 기사가 지금 누리꾼들 사이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수준이 46년 전 그 시절의 기억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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