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토크①] '아듀 대구구장', 승엽-준혁 부친의 추억

이형석 2015. 10.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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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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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구장 홈 플레이트 뒤편 중앙지정석 꼭대기. 20~30대 연인 혹은 40~50대 중반의 관중이 대부분인 야구장에 60~70대 어르신들이 무리지어 화기애애하게 관람한다. 대구 홈 경기 때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 가운데서도 B구역-8열-17, B구역-8열-19 좌석에 앉은 두 연간 회원은 자주 팬들의 사진 요청을 받는다. 바로 '양신' 양준혁의 아버지 양철식(78·실제 1935년생)씨와 '국민타자'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72)씨가 두 좌석의 터줏대감이다.

양철식씨와 이춘광씨는 양준혁과 이승엽이 삼성에서 함께 활약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하게 대구구장을 방문하고 있다. 그 동안 대구구장 관중석에서 수 많은 기록을 남긴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까이서 응원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1948년 문을 열어 1982년부터 삼성의 홈으로 사용된 대구구장은 내년부터 팬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다. 삼성은 내년부터 대구시 수성구에 위치한 대구-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옮긴다. 대구구장은 아마추어 전용 구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지난 2일, 삼성이 34년간 사용한 정든 대구구장에서의 정규시즌 마지막 홍 경기를 앞두고 양철식씨와 이춘광씨를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대구구장 관중석을 한 바퀴 돈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지정석에 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대구구장에서 자주 만나십니까?

양철식(이하 양)="난 10년째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옆에 있던 이씨는 '선수 가족 중에도 고참이니까'라고 했다.) 밖에서도 가끔씩 만나고."

이춘광(이하 이)="피는 안 섞였지만 형제 같이 마음 속에서 시작된 우정이 있다. 선수들은 아무리 친해도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이 있지만 우리야 그런 게 없으니까."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승엽이가 1995년 삼성에 입단한 뒤에 처음 인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한창 사회 생활을 하고 있어 자주 뵙진 못했다."

="요즘도 대구에서 선수 가족간 모임이 매달 한 차례씩 있다. 선수 가족끼리 화합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는데 형제 같이 지낸다."

="지난번엔 울릉도에 다녀왔고 최근에는 대구-삼성 라이온즈 파크도 같이 둘러봤다. 그런데 신인급 선수 가족은 모임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 쫄아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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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구장 중앙 지정석에 삼성 선수단 가족이 꽤 모여있습니다.

="아마 10개 구단 중 선수 가족이 무리지어 보는 팀은 우리 밖에 없을 거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신동주(삼성 코치) 어머니, 강동우(두산 코치) 어머니, 김진웅(은퇴) 아버지 등 여럿이서 같이 승합차를 타고 한국시리즈 원정 응원도 다녔다. 차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춰서자 다들 뒤에서 밀고. 각자 밥, 김치, 커피 등 분담해서 가져와 지리산휴계소에서 소풍 기분도 내곤 했다."

-대구구장을 그 동안 수 없이 찾았을텐데요.

="본격적으로 방문한 건 승엽이가 입단하면서다. 아마 시절에는 입장료가 1000원이었는데 거의 못 왔었다."

="내 동생이 야구를 했다. 중소기업은행 소속이었다. 내 조카(양일환 삼성 2군 투수 코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20대부터 대구구장을 수 없이 들렀다. 그게 벌써 60년이 됐다. 아마 전국에서 야구장 관람은 내가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아들이 은퇴한 후에도 야구장을 찾는 건 쉽지 않은데.

="맞다. 프로에서 은퇴하면 다른 부모들은 거의 안 오는데 꿋꿋이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밌으니까. 아직도 매일 야구장에 오고 싶다."

="여기 오면 4~5시간은 그냥 흘러가거든.(웃음)"

="늙은 사람이 소일거리도 없고. 특별히 할 게 뭐 있겠나."

이="예전에는 낚시를 참 좋아하셨는데."

="우리 준혁이가 나를 따라다니면서 낚시를 했지. 이제 나이를 먹으니 낚시 다니기도 힘들더라."

="또 여기는 이해관계가 없거든. 한 마음 한 뜻으로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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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혁이가 은퇴한 이후 야구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찬스에서 삼진 당하면 이런 게 올라오더라고(손동작). 지금은 편안하지. 그거 한 가지는 좋더라고."

="나도 승엽이가 일본에서 뛸 때도 간간히 대구구장을 찾았다. 경기 승패도 중요하지만 선수 가족 안부도 확인하고. 그때는 내가 술도 좋아해서 선수 가족이랑 술도 한 번씩 하고."

-이승엽과 양준혁 모두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는데, 어릴 적 함께 대구구장을 찾은 적은 없으세요.

="없었다. 승엽이는 내가 무서워서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못했다. 그때만 해도 집에 돈이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를 보고 함부러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안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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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일환이가 있으니까 자주 왔지. 준혁이가 쪼매만할 때부터" -내년부터 대구 홈 구장이 옮겨집니다. 아쉽진 않으세요?

="아쉽지. 대구 야구의 산 증거물인데. 이제 새 구장으로 옮긴다고 하니 왠지 마음이 허전하다. 그래도 더 좋은 시설을 갖춘 구장으로 옮기면 부상 위험도 줄어들지 않겠나."

="여기서 60년 가까이 야구를 봐 왔는데 당연히 아쉽다."

-예전과 비교하면 대구구장도 많이 변모하지 않았습니까?

="(주변 시설을 직적 손으로 가리키며) 처음에는 (철제 구조물) 없었다. 관중석도 없었다. 옆에 전부 또랑이었다. 사람들이 흙 언덕이나 맨땅에 앉아서 야구 보고 했다. 6·25 전쟁 때는 여기서 권투도 하고 그랬다."

="추석 때는 여기서 가수 공연도 했었다. 여기 위치가 좋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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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대구구장에 관한 추억도 많을 것 같습니다.

="많지. 1990년대만 하더라도 관중석에 신문지 깔고 앉았다. 지금 이 곳은 특석 및 지정석이었거든. 그 당시에는 선수 가족이 기자실에 앉아 야구도 보곤 했다. 그런데 강기웅, 이종도 등 고참 선수 부모님이 기자실에 들어오면 자리를 비켜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관중석에 신문지 펼쳐 놓고 앉아서(웃음)."

="예전에는 야구장 근처에 깡패도 많았다. (티켓도 없이) 야구장에 막 밀고 들어오고. 인근 경찰서에서 순찰 나와서 질서 바로 잡고 그랬지." -수십년 전과 비교하면 관중 문화도 많이 달라졌죠.

="지금이랑 완전 다르다. 바로 앞에서 입에 함부로 담을 수 없는 욕설도 많이 하고. 준혁이가 매번 잘 하다 한 번 실책하면 '야~ 이 XX 새끼야'라고 하고. 그럼 속에서 끊어 오르지. 많이 속상하고. 그래도 참아야지."

="그래서 주변 눈치도 봤지. 한편으로 생각하면 프로선수가 되어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하며 많은 사랑도 받으니까…" -대구구장 하면 가장 남아있는 추억은.

="준혁이 신인 시절. 1993년에 신인왕을 받았는 데 그만큼 인정해 준 거 아닌가. 또 2002년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제일 좋았다. 대구구장에서 은퇴식을 진행할 때는 수십년 뛰던 운동장을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좀 안 됐더라고. 여기(이승엽 아버님을 가리키며)는 좋은 상을 하도 많이 받아서 기억이 많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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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인 56호 홈런을 쏘아올렸을 때. 그 당시 잊을 수 없지. 세상에 야구장에 잠자리채 갖게 오는 풍경을 내 아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나. 불멸의 장관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잠자리채에 들어간 공은 없더라고.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이번에 (개인 통산 400홈런을 앞두고) 포항에도 잠자리채 몇 개 보이던데. 참, 추억을 떠올리게 하더라."

-대구구장에서 각종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예전에 삼성-해태전 당시 삼성 팬들이 해태 구단 버스에 불을 냈어. 한 번 꺾어봐야 했는데…"

="겁나 준우승만. 한이 맺혔거든."

="해태의 벽이 너무 높았거든. 돈 내고 입장한 팬들은 얼마나 약이 오르겠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적 감정까지 있으니까 버스에 불을 지르는 상상도 못한 일이."

="또 예전에는 알콜 반입 검사가 없었다고. 젊은 사람들이 술 사와서 마시고, 쓰레기통 던지고."

="1999년도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때 관중이 계란 던지고 호세는 방망이 집어 던지고."

-이승엽과 양준혁 모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레전드다. 자식 자랑 좀 한다면.

="아들 자랑하면 팔불출 이라고 하는데(웃음).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승엽이가 6살이었다. 당시 생일 선물로 학용품을 사주려 했더니 '아버지, 야구 글러브와 방망이 사주세요'라고 하더라고. 동네 형들이랑 야구하겠다고. 조금 기특하더라고. 그러더니 유리창 자주 깨트려서 변상하고. 사실 승엽이가 처음 야구를 하고 싶어했을 때 중도에 포기할까봐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동덕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대구 지역 멀리 던지기 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때 중앙초등학교 신용승 선생이 승엽이를 눈여겨봤다. 왼손에다 또래보다 체격이 컸거든. 그때 선생이 승엽이한테 '야구하고 싶냐'고 물으니까 얘가 '네'라고 했지.

내가 반대했지. 동덕초 정규수업을 마치면 집에 책가방만 던져놓고 중앙초에 가서 며칠 동안 야구하더라고. 한 동안 고민하다 '딱딱한 공 받고 때릴 수 있겠냐'고 물으니까 '야구만 시켜주면 부모님 절대 애 안 먹이겠다. 시켜만 주세요'라고 하더라고. 마치 가둬논 동물이 제 우리 문을 열어준 것 처럼 좋아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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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는 대구 지역 3개 중학교 감독이 스카웃 하려고 시간차를 두고 집에 찾아오고. 얘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선배들한테) 많이 맞았어. 그래도 어릴 때 나랑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걸 지키려고, 그때 마음 안 잊고 열심히 한 게 대견하다."

="준혁이는 야구 집안 출신이다 보니 어릴 때 부터 자연스레 야구를 접했다. 준혁이는 야구하고 싶어하고. 야구가 굉장히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종목이고 성공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동생을 불러 '1주일 동안 한 번 지켜보고 네가 판단해라'고 했지. 그랬더니 동생이 '형님 틀림없습니다. 한 번 시켜보십시오'라고 하더라고. 이후 승승장구했지. 초-중-고교때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야단인데 서로 데려가려고 하니까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나."

-신축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옮긴 후에도 계속 야구장을 찾으실거죠?

="당연하지. 한 번 둘러봤는데 잘 지었더라고. 주변 자연 환경이 정말 좋더라."

="그렇다. 계속 봐야지. 외국 못지 않은 최고의 구장이 되겠구나 싶더라." [불판토크①] ‘아듀 대구구장’, 승엽-준혁 부친의 추억[불판토크②] 준혁父 “결혼해”- 승엽父 “KS엔 꼭 돌아와”

대구=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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