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부부 인터뷰] "'꽁지머리' 김병지는 예술가 아내 작품"
[일간스포츠 윤태석·최용재]

"남편은 친구고 동반자고 때론 아빠같은 존재에요. 저는 남편을 만나 또 다른 인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김수연(42)씨의 말에는 남편 김병지(45·전남 드래곤즈)에 대한 존경과 애정, 안쓰러움, 걱정 등 다양한 감정이 묻어났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문장 김병지가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26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클래식 홈경기에 출전하면 K리그 최초 700경기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세운다. 김병지 신화 뒤에는 아내 김수연 씨가 있다. 그 아내는 대학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한 전도 유망한 미술가였지만 남편을 위해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내조에 집중했다. 김병지는 "은퇴 후에는 내가 아내를 외조할 것이다"며 "아내를 위한 갤러리를 꼭 만들어 줄 생각이다"고 힘줘 말했다. 25일 700경기 출장에 하루 앞서 광양 중마동에 문을 여는 공방이 그 약속을 위한 첫 시작이다. 23일 공방에서 김병지 부부를 만났다. |
-'김병지'하면 '꽁지머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 그 머리를 하게된 계기는요.
김병지(이하 김): 집사람 아이디어였죠. 연애할 때 '좀 더 빨리 나를 알리고 싶다'고 고민했고 아내와 상의했죠.
아내: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촌스러웠어요. 머리를 좀 길러보라고 했죠. 염색도 하고 머리를 묶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길거리에서 나이트클럽 웨이터 명함을 우연히 주웠는데 이름이 '꽁지머리'였어요. 미용실을 갔더니 학생들이 '김병지 머리'를 해달라고 하고. 깜짝 놀랐죠.
김: 저 덕분에 축구선수의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그 때는 염색하면 불량스럽다는 선입견도 있었는데 그런 이미지 바꾸는데도 일조 많이 했죠? 하하.

아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철퇴를 맞았겠지만 남편이 운동에는 워낙 철저했으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김병지는 절제와 자기관리의 표본이라 불립니다.
아내: 남편은 하루에 운동하는 2시간을 위해 나머지 22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이죠. 처음엔 이해를 못했지만 어느 순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깨닫고 돕게 됐죠.
김: 아내에겐 늘 미안하죠. 와이프가 몇 년 전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원 두 군데에 동시 합격했어요. 둘 중 한 곳에 입학했는데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아 장학금까지 받더군요. 계속 공부했다면 충분히 교수가 됐을 거에요. 하지만 저와 아이들을 위해 포기했어요. 전 이런 아내를 봐서라도 축구 외에는 가족만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언젠가 아내가 작품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갤러리를 꼭 만들어 줄겁니다. 이 공방은 그 약속을 위한 첫 시작이죠.


아내: 제가 미술쪽으로 자리를 잡을만하면 남편을 따라 옮겨다녀야 했죠. 남편이 경남FC(2009~2012 )에서 뛸 때는 창원에 따라 안 내려가고 저는 아이들과 서울에 남아 작품 활동을 했어요. 경남에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는데 또 기회가 생겨 광양으로 왔어요. 더 이상 제가 작품 활동은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죠. 운동과 가족에만 전념하는 남편은 저에게 친구고 동반자고 때론 아빠같은 존재에요. 어렸을 때 부모님의 훈육으로 자랐다면 지금은 남편이 그 역할을 대신 하는 것 같아요."
-김병지하면 가장 프로페셔널한 선수로도 꼽히는데요.
김: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1998년인가 99년에 프로축구연맹이 아디다스와 통합 계약을 해서 모든 팀들이 아디다스 유니폼, 축구화를 신어야 했어요. 하지만 전 이미 나이키와 후원 계약을 하고 있었거든요. 규정상 아디다스가 아닌 축구화를 신으려면 검은테이프로 로고를 가려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벌금이 경기당 30만원이었죠. 전 나이키 로고 안 지우고 그냥 신었습니다. 벌금요? 꼬박꼬박 냈죠. 그 때 승리수당이 100만원 정도 했으니 비기거나 지면 벌금이 수당보다 더 많은 날도 있었어요. 그래도 벌금 내가면서 꿋꿋하게 나이키 신었습니다. 한 번은 연맹 사무총장님이 '우릴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병지 네가 진짜 프로다'고 하시더군요.

-고리타분한 질문이겠지만 술·담배는 정말 안합니까.
김: 담배야 고등학교 때 호기심에 1~2번 피워본 게 전부고요. 술은 이렇게 예를 들께요. 1990년대 중반에 대표팀 선수들이 합숙 중에 몰래 술 마셔서 음주파동 났잖아요. 모든 대표선수가 축구협회 가서 조사받았는데 '김병지는 조사받으러 올 필요 없다'고 하던데요. 하하.
-700경기 출전이 눈앞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요.
김: 1998년 포항과 플레이오프 2차전이죠. 1-1에서 후반 45분에 제가 머리로 결승골을 넣었잖어요. 타이밍도 좋았고 점프력과 스피드도 한창일 때였죠. 그건 말 그대로 드라마였어요.
아내: 그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전날 방송 촬영이 있어서 농담 삼아 '생일 선물로 골이나 한 골 넣어줘'라고 했는데 들어맞았어요. 득점해야겠다는 남편의 강한 집념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거 아세요? 남편이 골 넣고 벤치에 있는 고재욱 감독님(당시 울산 사령탑)께 달려갔잖아요. 사실은 저에게 온 거에요. 감독님 바로 뒤 관중석에 제가 있었거든요.(웃음)

-가슴 아팠던 기억도 있을 텐데요.
아내: 2002년 한일월드컵이죠.(김병지는 최종명단에 포함됐지만 이운재에 밀려 1경기도 뛰지 못함) 우리 가족은 다 남편이 출전하는 걸로 알았어요. 방송 3사 카메라가 다 우리 집 앞에 몰려있었죠. 그런데 경기에 안 나온거에요. 근데 남편은 안팎이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어떨땐 되게 단순해요. 한국팀이 골 넣고 누구보다 기뻐하는 남편을 보며 안도했죠. 단순히 그냥 즐거운척 하는 게 아니라 모두와 진심으로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었어요.
김: 2002월드컵은 뭐랄까. 저도 나름 노력을 했지만 결실을 못 맺었고…. 하지만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 현역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 이후 내가 선수로서 어떻게 처신하고 지혜롭게 대응해야 하나 배웠거든요.
-700경기 달성 후 새로운 목표는요.
김: 전 세부적으로 목표를 세우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8개의 목표를 세웠고 다 이뤘죠. 첫 번째는 프로 선수, 두 번째는 2억을 저축하는 거였어요.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아서 계속 전세를 살아 우리 집을 갖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세 번째는 국가대표, 네 번째는 월드컵 출전이었죠. 그 다음이 400, 500, 600, 700경기 출전이었죠. 다음 목표는 777경기 출전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가야죠. 500, 600, 700경기를 목표로 할 때도 다들 어렵다고 했거든요. 하하.

광양=윤태석·최용재 기자 yoon.taeseok@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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