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동쪽, '오름'의 나라

정선애 2015. 7. 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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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산간의 여유, '송당'의 오름에 서다

[오마이뉴스 정선애 기자]

 안돌오름 오르는 길
ⓒ 정선애
흔히 제주도 지역을 구분할 때 동, 서, 남, 북부로 나눈다.

그 중 제주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제주의 동부권, 어느 곳에 가봤냐고 묻는다면 거문오름, 만장굴, 사려니숲길부터 신양섭지코지 해변을 비롯해 세화 해안도로와 성산일출봉 등 막힘 없이 관광명소들이 입에서 술술 나올 것이다.

사람마다 제주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 포인트는 제각각이겠지만, 진정한 제주 동부를 돌아보고자 한다면 한라산 동쪽, 오름들이 앉아 있는 중산간을 둘러보는 것이 진정한 제주의 속을 꼼꼼히 탐험했다 말할 수 있겠다.

제주 동부권의 오름들은 대개 50~400미터 정도의 둥그스름한 산체가 이웃집 초가 머리마냥 이곳 저곳에 봉긋이 솟아올라 있다. 오름과 구릉의 완만한 능선이 하늘을 타고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여성의 아름다운 나체와 흡사해 사진 작가는 물론 수많은 예술인들이 오름을 타고 거닐며 영감을 받곤 한다.

오름 곳곳에 산담을 두른 무덤들은 나무 무성한 활기찬 오름보다 가을이 되면 억새가 바다를 이룰 것 같은 민둥한 오름 등성이에 모여 있다.

'숨참'의 시간 후 돌아보는 오름의 감동

 송당 마을 안쪽 길, 체육공원 입구를 지나 왼편에는 '괭이모루'(고양이가 앉은 형상의 낮은 언덕)가, 오른 쪽에는 당오름 본향당 가는 길이 있다.
ⓒ 정선애
 당오름에는 송당 본향당이 있다. 이곳은 제주마을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금백조가 모셔진 신당으로 굿을 하는 심방들은 송당을 뿌리깊은 마을이라는 뜻의 '불휘공 마을'이라고 부른다.
ⓒ 정선애
옛날, 마을 및 개인 자산 중 최고라 치던 보물들이었던 소와 말을 방목해 풀을 먹이던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소 한 마리를 지키는 것은 마을 내 사람들이 함께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쉐테우리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오름은 중산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라산을 한번 올라봤던 사람들은 사시사철 변하는 산의 모습에 정신을 잃고, 날씨의 변화무쌍함에서 인내를 배우고, 무한한 생명력의 기운을 온몸을 받아들이며 하늘과 맞닿았다는 성취감을 갖게 된다.

반면 제주의 오름은 아득한 풍경에서 전해오는 진한 그리움과 황량한 대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대지로부터 시작해 능성이를 타고 오르며 낮은 풀을 훑고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잠시 '숨참'의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길이 아름다워 차분한 감동을 주는 것이 오름이다.

산에 오르면 오르기 시작한 땅의 입구가 보이지 않지만 오름은 다르다. 올랐을 때 내가 올라온 길의 생김은 물론 내가 거쳐 온 길과 바로 아래 땅의 모습을 선명하게 직시할 수 있다. 지나간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오름은 산보다 땅에 더 가까워 더욱 친근하고 서정적이다.

구좌읍 중산간에 많은 오름을 거느리고 초원과 밭들이 어우러진 마을 송당리에는 무려 18개의 오름이 있다. 한라산을 제외한 제주의 봉우리 368개 중에서도 아름답다는 오름들이 모여 '오름의 정원'이라는 별칭을 따로 갖고 있을 정도다.

송당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전통적으로 축산업이 발달한 마을이다. 마을 안쪽 곳곳에 축산가들이 있고 초원과 이어진 오름마다 풀어 놓은 소떼들이 한가로운 곳이다. 동부권 오름권역 내에서도 이곳 오름들은 이웃처럼 지척으로 산재해 서로를 마주 보며 닮아있다.

안돌오름, 밧돌오름

 멀리서 바라본 안돌오름
ⓒ 정선애
 밧돌오름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정선애
이 곳에서 만난 안돌오름은 그리 큰 오름은 아니나 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모양의 잘생긴 등성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오름이다. 내선악(內石岳)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 바로 북동쪽에는 밧돌오름이 있다. 조선시대에 두 오름 사이에 돌담이 있어 돌담 안쪽에 있던 오름을 안돌오름, 바깥에 있던 것을 밧돌오름이라 불렀다.

안돌오름은 368m의 높이로 비교적 밧돌오름보다 높고 오름 대부분이 풀밭으로 덮여 있어 정상에 오르면 매끄러운 능선의 굴곡이 경사면 아래로 여인의 가슴 계곡처럼 유여하게 흐른다. 또한 멀리 한라산맥의 처음과 끝이 곱게 놓여 있고, 동부권 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돌오름은 오르고 내리는 길의 경사가 조금 심한 편이다. 둘러진 길의 형태가 아니라 하늘을 향해 뻗은 밧줄처럼 길이 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러운 걸음을 내주는 오름이기도 하다.

 밧돌오름에서 바라본 안돌오름
ⓒ 정선애
 송당 마을의 정취
ⓒ 정선애
오를 적 발 한 발짝에 얼굴 한 뼘을 바람에 내주고, 또 한 발짝에 주변 야생화를 눈에 담는다. 사뿐히 오르면 모자이크처럼 잘 짜여진 밭뙈기들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바로 옆 밧돌오름을 보며 다음에 오르기로 계획한 오름의 생김새도 충분히 사진에 넣을 수도 있고, 저 마다의 오름을 낮은 자세와 높은 자세의 오름에서 색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는 재미를 충분히 나눠준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20분 사이로 오를 수 있으나 송당 마을 안길로 이어진 송당목장을 지나는 코스를 따라 걷는다면 2시간 내외의 탐방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안돌오름과 밧돌오름 사이에는 왕래할 수 있도록 길이 트여 있으며, 밧돌오름을 내려가면 마을길로 다시 돌아 갈 수 있다.

사실 송당에는 도내에서 가장 높은 높은오름(405.3m)을 비롯해 체오름(382.2m), 세미오름(380m), 아부오름(301.4m) 등 올레꾼들 사이에서 더 알려진 오름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직 유명세를 타지 못한(?)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에 대해 글을 쓴 이유는 송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최소한의 발품으로 중산간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풍광을 한 아름 얻어가기 때문이다.

제주를 둘러보는 길은 초원과 언덕 그리고 낮은 구릉지대를 오르고 내리는 길에 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느낄 수 없는 제주의 싱싱함은 오름의 능선에 몸을 곧추세우고 발끝 아래 땅과 동화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그곳에 서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송당마을은 오름과 신화와 가장 아름다운 돌담길을 가졌다.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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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제주시대>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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