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꽃이 필 때면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오마이뉴스 정만진 기자]
▲ 대한민국 사람 중 이것이 무엇의 잎인지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답은 본문 안에 있다. |
ⓒ 정만진 |
마을 앞뒤로 솔밭이 있었고 그 너머로 들이 이어졌다. 논에는 모내기 철이 지나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가 자라는 벼들이 푸르른 빛깔을 뽐냈고 산비탈 높은 곳에 개간된 밭에는 고구마 잎이 녹색과 보라색을 섞어 가며 무성해졌다.
사과나무밭 주인은 부자인데...
▲ 경북 의성의 문익점 면작 기념비 |
ⓒ 정만진 |
그때는 학교에서 붓글씨를 쓸 때 '문익점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신기하지 않았다. 늘 보는 것이 붓대롱이었고 목화밭이었기 때문이다. 실물을 못 본 사람들은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목화꽃은 정말 예뻤고, 나중에 꽃이 터져서 밭이 온통 뽀얗게 변하면 그 풍경 또한 장관이었다.
그 후 중학교부터 도시에서 살았고 농촌에는 가볼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고구마, 수박, 땅콩, 호박, 고추, 쌀 등은 사서 먹으니 잊히지 않았지만, 수세미와 목화는 도시 생활과 아주 무관한 탓에 그 생김새마저 기억에서 사라졌다.
50년 만에 본 목화
그런데 뜻밖에 목화를 만났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세워진 문익점 기념비는 답사 여행을 통해 목격한 바 있지만, 목화 실물은 약 50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오늘 눈앞에 나타났다. 물론 처음 잎만 봤을 때는 그것이 목화인 줄 알아채지도 못했다.
목화를 만난 곳은 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와촌 휴게소였다. 휴게소 건물 오른쪽에 <자연과 사람>이라는 안내판이 공중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는데, 놀랍게도 목화가 자라고 있었다. 그저 콩으로만 여겼는데 그 옆에 '목화'라 쓰인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아직 철이 아니어서 꽃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인 횡재인고!
관리를 맡고 있는 천대윤(65)씨가 보였다. 도시 생활을 하던 중 은퇴하고 고항으로 돌아왔는데 "우연히 4년 전부터 휴게소 직원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했다. "본래 조경이나 원예 분야에 종사했느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고, '휴게소 뒤 빈 땅에 식물원을 만들면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가 되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가 채택돼 내가 재배와 관리를 맡았다"고 했다.
▲ '자연과 사람' 입구. 앉은 채 식물들을 돌보고 있는 천대윤 씨의 뒷모습과 관람객 두 사람이 보인다. |
ⓒ 정만진 |
그러고 보니 손님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열어도 될 만큼 머리 위로 수세미 천지가 열려 있다. 어릴 때는 지붕에서 처마 아래로 늘어진 수세미 몇 개를 보면서도 날마다 신기해 했는데, 여기서 수 백 개의 수세미를 한꺼번에 본다. 굵기와 길이도 엄청나다. 수십 종류의 식물들과 잘 자란 수세미를 보며 "식물 키우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하니, 천대윤씨는 "아이고, 제가 잘 키워서가 아니라 식물들이 저절로 잘 자란 것이지요" 하고 겸양해 한다.
추석 지나면 수세미를 손님들에게 무상 배부
<자연과 사람> 안에는 까만 씨앗이 달려 보통 보는 개나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야생 개나리, 작고 동그란 전구 같은 모양으로 복실복실하게 매달린 방울토마토, 줄기가 10미터 이상 올라간다는 제비콩 등등 눈길을 끄는 식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 아래 받침대에 얹히면서 둥그렇게 자란 수세미 |
ⓒ 정만진 |
그래도 역시 오늘 구경의 장원은 목화였다. 그리고 차상은 수세미였다. 특이한 모습으로 자란 수세미를 그냥 놓칠 수 없어 사진기에 담았다. 이 정도 볼거리라면 휴대폰으로 찍을 일이 아니므로 정식으로 사진기를 들고 <자연과 사람> 안을 두루 돌아다녔다. 내심 '목화꽃이 필 때 반드시 다시 와서 봐야지...'하고 벼르면서.
"오이, 막 따 가지 마세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은근히 걱정도 일었다. "사람들이 이곳의 오이를 다 따가버렸다"는 천대윤씨의 말을 조금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화꽃도 누군가가 따갈지 모르는 일 아닌가? 순간적으로 "기사를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견학하기 힘든 목화와 수세미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구경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널리 퍼뜨려야' 홍익인간의 후손답지 않겠나?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 왼쪽 노란 꽃이 수세미 꽃이다. 수세미 꽃 자체도 50년만에 보는 것이라 반가웠고, 특히 꽃을 파고드는 벌의 모습도 신기하여 한 장 찍어보았다. 그 아래것은 손톱 물들이던 채송화. 채송화도 예전처럼 그렇게 흔한 꽃은 아니다. 가운데 흰 테두리 안의 작은 사진은 수세미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천대윤 씨의 모습이다. |
ⓒ 정만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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