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아들이 차린 밥상, 이 정도입니다
[오마이뉴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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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상을 차리는 데도 '컨트롤 타워'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그 막중한 임무를 남편이 맡아왔다. |
| ⓒ 배지영 |
6월 1일, 우리 집 밥상 컨트롤 타워에 미세한 틈이 생겼다. 그날부터 큰아들 제굴은 밥 한다고 정규수업만 마치고 오후 5시 40분에 왔다. 처자식과 보내는 시간이 짧으니까 저녁밥은 꼭 차리고 나가는 남편도 집에 오는 때. 남편이 마파두부를 하면 제굴은 찹 스테이크를, 남편이 오이무침을 하면 제굴은 된장삼겹살을 했다. 여느 날 같던 6월 18일, 제굴은 말했다.
"아빠, 저녁때 집에 (밥 하러) 오지 마세요."
"왜? 아빠 있으면 귀찮아?"
"그건 아닌데요. 그냥 나 혼자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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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1일부터 주방장님이 둘, 밥상 컨트롤 타워에 균열이 갔다. |
| ⓒ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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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은 마파두부를, 큰애는 볶음밥을 만들었다. 제굴은 이런 식의 협동작업이 좀 싫은 모양이었다. |
| ⓒ 배지영 |
다음 날 저녁, 제굴은 야심차 보였다. 제굴보다 30분쯤 뒤에 집에 온 남편은 부엌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얼쩡거렸다. 제굴은 "엄마는 밥이 좋죠?" 하며 버섯 리소토를 했다. 꽃차남이 좋아한다고 파스타를, '육식인'인 자신을 위해서는 찹 스테이크를 했다. 남편은 "우아, 레스토랑 같다야" 감탄했다. 약속 때문에 나가야 한다면서도 식탁에 앉았다.
"아빠, 한꺼번에 음식 몇 가지씩 하는 건 너무 힘들어요. 아빠는 어떻게 날마다 했어요?"
"(얼굴이 엄청나게 환해지며) 그냥 하지. 맛있게 먹으라고."
"프라이팬 들고 요리 세 가지 했는데 지금도 손이 떨려요. 숟가락을 못 들겠어요. 음식점에서 조리하는 사람들은 진짜 장난 아니겠어요."
"엄마, 요리는 노동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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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애가 한 리소토와 파스타. |
| ⓒ 배지영 |
제굴은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머리맡에는 책 두 권이 펼쳐져 있었다. 속셈이 빤하게 보이는 소년의 위장전술, 제굴은 친구가 준 스마트폰 공기계(제굴은 스마트폰 없음)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결국은 얻어맞고 울 거면서도, 꽃차남은 장난감을 들고 제굴 곁으로 가서 말까지 걸며 놀았다. 그게 귀찮은 제굴은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했다. 나는 말했다.
"강제굴! 밥 한다고 유세하냐? 오늘 금요일이다이. 왜 평일에 게임을 해?"
"나도 쉬고 싶다고요."
"내일 나가서 하루 종일 게임할 거잖아!"
"돈이 있어야 하죠.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절대 그렇게 못하거든요."
나는 제굴을 낳은 친엄마. 그러나 콩쥐네 새엄마처럼 굴고 싶었다. 뒷산 자갈밭을 매고,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채워놓은 뒤에 잔치에 가라던 그 엄마. 넓은 자갈밭과 커다란 항아리를 가진 재력가 엄마. 속으로 따져봤다. 자갈밭이래도 밭이니까 비쌀 터이다. 항아리는 내 수준에서도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게임하는 제굴이한테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 지금 항아리 사러 갈 거야. 너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월명공원 갔다 와라. 거기 약수터 물 떠다가 항아리에 채워놓고 놀러 가. 알았어? 알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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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굴이가 놀러나간 토요일. 남편이 채소 실컷 먹으라며 차린 밥상 |
| ⓒ 배지영 |
그날 오후에 우리 식구는 시댁에 갔다. 제굴은 거실 한쪽에서 게임을 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줄곧 자퇴한다는 제굴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어머니. 항상 "우리 손주, 인자 학교 잘 다니지?"라고 확인하신다. 제굴의 답은 시원찮았다. 우리는 아버지가 주신 오이, 고추, 쌀, 양파, 마늘을 갖고 집에 왔다. 일찍 자라고 해도 제굴은 게임을 많이 못했다고 버텼다.
"엄마, 요리는 노동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완전 힘들어. 다 하고나면 손까지 떨려요. 근데 왠지 뿌듯해요."
6월 22일 월요일, 밥상을 차린 제굴은 말했다. 할아버지가 준 감자가 많으니까 감자요리를 세 가지나 하고, 삼겹살에 브로콜리를 곁들인 요리도 했다. 일요일 밤에 게임 못했다고 투덜거릴 때하고는 완전 다른 얼굴. 나는 좀 더 솔직해졌다. "엄마는 소처럼 채소를 먹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생채도 만들어 봐"라고 권했다. 제굴은 재깍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우하하하! 내 강아지가 생채를 만든다고이? 할머니가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줄랑게. 아니여? 직접 한다고? 글믄 무를 채 썰어가지고, 멸치액젓이랑 깨랑, 마늘 다진 거랑 고춧가루랑 넣어. 매실 액기스도 쬐까 치고. 그런 것을 대강 넣고 손으로 주물러. 그렇고 해 가지고 먹는 거여. 오메, 내 강아지 고생스라서 어째. 할머니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디."
할머니가 전수해준 방법으로 생채 만든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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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채 만드는 제굴. |
| ⓒ 배지영 |
생채를 버무린 제굴은 나보고 맛 좀 봐달라고 했다. 채 썬 무가 아삭해서 "오, 맛있다!"고 감탄했다. 제굴은 뭔가 부족한지 머리를 갸웃했다. "당분간 느끼한 음식은 자제할게요"라고 말한 제굴은 뚝배기에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우렸다. 거기에 달걀찜을 할 거라고 했다. 제굴 옆에 서 있어봤자 나는 거치적거리는 존재, 거실로 와서 앉아 있었다.
"아악~ 엄마! 너무 뜨거워. 뚝배기가 이렇게 뜨거운 건지 몰랐어요. 데인 것 같아요."
뚝배기 요리를 처음하는 제굴이 보통의 냄비처럼 잡은 모양이었다. 오른쪽 손가락 세 개에 물집이 올라왔다. 제굴은 찬물을 틀어놓고 손을 넣었다. 그때 남편이 집에 왔다. 제굴은 데인 것보다 생채가 잘 된 건지 평가받고 싶어 했다. 한 입 먹어본 남편은 소금 간 안 했냐고 물었다. 낯빛이 어두워진 제굴은 "외할머니는 그런 말 안 하셨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남편은 얼음을 꺼내서 제굴 손에 감싸주면서 말했다. 자신은 무채 썰어서 소금물에 담가놨다가 물기 쪽 짜내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소금으로 숨을 죽이기도 한다면서. 처음부터 다 잘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제굴을 다독였다. 제굴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생채 간을 안 한 것과 데인 손가락. 어떤 것이 제굴을 더 힘들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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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굴이 처음으로 생채 만든 날 차린 밥상. 달걀찜 하다가 오른쪽 손가락 세 개는 화상을 입었다. |
| ⓒ 배지영 |
"(울기 직전) 제굴아, 어쩌다가 이랬어? 화상은 2차 감염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응급실 가야지. 언니야, 최 박사(보건의료 행정직 종사자, 내 절친)한테 전화해 봐. 빨리 좀. 어?"
안 보고도 증상을 아는 마성의 '의료인' 최 박사는 새살 돋는 연고를 발라도 된다고 했다. 나는 영어 학원 갈 채비를 했다. 지현은 제굴 곁에 더 있겠다고 했다. 제굴이 처음으로 생채를 만든 날, 조리 기구에 손을 데인 날. 나는 아이의 쓰라림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제굴 인생을 살아줄 수 없는 노릇. 내가 할 수 있는 건 효과 좋은 화상 크림을 사놓는 정도 뿐.
6월 24일 수요일 저녁, 제굴은 부엌에 서서 음식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를 종류 별로 맘껏 차렸다. 제굴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도 두 가지나 했다. 설거지 그릇을 치우고 나서는 담임 윤용호 선생님이 내준 에세이를 영어로 썼다. 고든 램지(영국의 요리 연구가)가 말한 대로 "요리는 지옥"이라고. 그런데도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재미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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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굴이 만든 찹 스테이크와 여행지 느낌의 조식. |
| ⓒ 배지영 |
| ○ 편집ㅣ박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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