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영혼은 둘 아니다 .. 뇌 연구하면 종교도 새로워져

이은주 2014. 12. 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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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박사 - 채수일 한신대 총장기독교, 과학적 성과 외면할 수 없어죽음·영생 의미 오늘날엔 달라져과학에 마음 열었던 달라이 라마불교 백팔번뇌도 뇌과학으로 설명

최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뇌과학 연구의 권위자 신희섭 박사(64한국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가 신학자들 앞에서 '뇌 연구를 통한 마음의 이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올해 설립된 한신대종교와과학센터(센터장 전철)가 마련한제1회 종교와과학 포럼이 열린 자리다.

신 박사는 "뇌과학은 의식이 어떻게 뇌와 연결돼 있는가를 다루는 학문"이라며 "뇌과학자로서 뇌와 연관이 없는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구 선진국에서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학문 간 대화가 권장되고 있지만, 이날처럼 기독교 신학계가 먼저 나서 종교-과학 간 융합연구를 주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종교와과학센터는 유럽· 북미 센터와의 공동연구와 '성직자를 위한 과학 코스' 등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이날 포럼이 끝난 후 뇌과학자와 신학자의 대담을 따로 마련했다. 신 박사와 채수일 한신대 총장(62)이 두 주인공이다. 채 총장은 "기독교 신학 자체가 대화하는 학문"이라며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존중하며 대화할 때 인간에 대한 탐구가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와 과학은 보완관계

채수일(이하 채):기독교가 진리를 추구하는 여정에서 스스로 변증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대화가 필요하다. 현재 일부에서는 과학과 등을 지는 극단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의견이 다르더라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결국 서로를 돕는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 없는 과학은 불완전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적이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에 공감한다. 종교에는 과학이 필요한데, 과학자로서 종교를 어떻게 보시는지 묻고 싶다.

신희섭(이하 신):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뇌의 기능이 인간의 행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다. 우리는 커피 잔을 들고 이것이 커피 잔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왜 기분이 우울한지 등을 묻는 것이다. 과학이 이런 질문을 파고들다 보면 종교와 철학에 가 닿을 수밖에 없다.하지만 지금 뇌 연구는 아직 이런 큰 질문에 가 닿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가를 규명하는 수준에 와 있다(웃음). 분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의식과 행위가 뇌와 연결돼 있다는점이다. 예술·철학·종교는 모두 뇌과학의 탐구 대상이다.

채: 과학과의 대화에 개방적인 신학자가 있지만 아직은 그들이 소수인 게 현실이다. 한편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종교는 사기'라고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신: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79)는 미 신경과학자들과 대담에 나설 만큼 과학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다. 불교에서는 과학적인 팩트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종교체험 할 때 뇌에 무슨 변화가 있는 지 미 하버드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협력했다. 저는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불교 자체가 뇌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유식 사상(唯識思想)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사상)은 심리학이고 뇌과학이다. '백팔번뇌'라는 말을 보라. 사람의 마음을 108개로 구분해 놓은 것인데, 그게다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신 단장은 불교가 뇌과학에 가까운 이유로 "관심사가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교에선 사람이 왜 괴로운가를 물으며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따진다. 탐구 대상이 마음이기 때문에 저절로 뇌과학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뇌는적응과 필요에 의해변화하는 것"

채: 기독교는 뇌과학뿐만 아니라 천체물리학·진화론 등 다양한 과학적 발전·발견과 충돌을 일으켜왔다.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기초해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원론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 몸과 영혼을 나누어 본다.기독교 신학은 현재 많은 도전을 마주하고 있는데 저는 뇌과학이 이원론적 기독교 신학에 자기 수정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결정론'과 '뇌 환원주의'에 대해 저항이 적지 않다.

신: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말은유전학 연구하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 유전자가 중요하기는 해도 환경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태아는 수정됐을 때부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산모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태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정서 상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뇌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고 변화한다. 그것을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 부르는데, 그 가소성이 대단하다. 이 가소성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과 같은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채: 그렇다면 뇌가 진화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 가소성이 크다는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반응의 결과가 뇌에 저장되는데 반응의 결과가 뇌 회로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맞다.

채: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는가.

신: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매우 종합적인 것이다. 뇌과학에서 풀고 싶어하는 수수께끼가 바로 사람의 성격인데, 사람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은 뇌 전체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평생의 경험과 기억이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무엇을 바꿀 수 있느냐 언제 바꿀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유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의 가소성이 가장 큰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숭이 실험으로도 증명됐다. 태어났을 때 먹을 것은 잘 주면서 부모의 스킨쉽없이 키운 원숭이는 자라서 문제가 생긴다. 매우 잔인한 연구이지만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

채:하지만 사도 바울(성경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처럼 극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 않나.

신: 일명 '은혜를 받았다'는 변화를 묻는 것인가.저는 그것을 굉장히 어려운 변화, 다양한 변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뇌에는 워낙 다양한 회로가 관련 돼 있고 그런 회로가 바뀔 정도라면 엄청난 영향이 필요하다. 그런 변화가 '있다' '없다'는 것은 제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는 그것을 엄청난 영향에 의해 뇌의 단단한 회로들이 바뀌었구나 하고 해석한다.

◆죽음과 내세영생의 의미

채:종교는 인간 인식의 한계, 생명의 한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열망 등에 근거해 고유한 관점을 형성해왔다. 예를 들면 '내세'의 존재 여부를 놓고 과학계와 종교계의 충돌이 크다.

신: 내세의 문제는 과학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있는 것으로도, 반대로 없는 것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과학적인 논의는 불가능하고 전통적인 종교적인 논의만 가능한 것이다.

채: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어떤 종류로든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가령 서구 사람들은 자신이 매주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뇌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연구한 두 학자 라이오넬 타이거와 마이클 맥과이어는 『 신의 뇌』라는 책에서 '뇌가 종교를 만들어낸 것은 종교적 믿음이 뇌와 신체 생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뇌가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막연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을, 불균형과 비대칭보다 균형과 대칭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그것은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입증해야 한다(웃음). 경험상으로 보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한 게 사실이다. 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에 대해 몰라서 그렇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뭔지 확실히 알면 두렵지 않을 수도 있다. 뇌는 합리화를 잘한다. '합리화하는 뇌'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자신을 속인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무자기' 즉,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말씀이 모두 합리화하는 뇌를 설명해 준다고 본다.우리는 도대체 종교가 무엇인지도 다시 물어봐야 한다. 어릴 때 저의 할머니는 "조상님이 도왔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그 분에겐 제사가 생활의 일부였다. 이럴 때 조상님은 종교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습성을 보여준다. 같은 종교라고 해도 너무도 다른 경우를 많이 보았다. 예컨대 불교에 귀의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구복신앙을 갖지만, 고승들을 보면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저는 '종교'보다는 종교를 믿는 습성인 '종교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채: 근본적으로 종교성이라는 것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다고 보시는 것 같다. 저도 그 점에 동의한다.종교성이라는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은데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폄하하는 것은 문제다. 인간에게는 인식의 한계가 있고 인간은 결국 죽는다, 신은 불멸이다 하는 것에 기대며 종교의 우월적 가치를주장한다.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가.

신: 저는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죽음이 뭐냐. 바람 속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것, 태양에 녹아드는 것'(For what is it to die but to stand naked in the wind and to melt into the sun). 영화 '박쥐'의 강렬한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이 싯구가 떠올랐다. 이 시는 언제나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과학자도 동물 실험을 많이 하다 보니까 연말이면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을 위해위령제를 지낸다.

채: 생쥐를 위해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쥐와 살아 있는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사도 그렇다. 실제로 죽은 자에게 혼령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죽은 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사를 무조건미신이라고 보는입장은 잘못된 것이다. 제사의 본질에 대한 논의 출발 자체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신: 과학이 종교를 위협한다고 보시지는 않나.

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학문과의 대화는 상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내 정신적 체계의 무지를 깨닫게 해준다. 신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죽음을 원죄의 결과인 것처럼 말하는데, 오늘날의 신학은 과연 그런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끝은 곧 시작인 것이다.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영생은 생명의 무한한 연장 상태가 아니라, 과학적인 깨달음으로 다시 생각하면 '의미로 충만한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학과의 대화가 그런 통찰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신학과 과학의 대화 가능성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저는 과학과의 대화가 신학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리=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신희섭(64)=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 코넬대에서 유전학 연구로 박사학위. 미 MIT 조교수·포항공대 생명과학 교수·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 역임.

◆채수일(62)=한국신학대학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석사), 독일 하이델베르크대(박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09년부터 한신대 총장. 세계교회협의회(WCC) 정의평화창조위원회·국제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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