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와 함께 못 산다고? .. 까마귀는 인문학 피해자"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올세라. 청강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고려 말기 학자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백로가'다. 백로는 정몽주를, 까마귀는 간신과 역적을 뜻한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 '새'에서 까마귀떼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으로 관객의 공포심을 자아냈다. 김성수(61·사진) 경북대 조류환경생태연구소 박사는 이 같은 까마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5년여 동안 떼까마귀와 백로의 생태를 연구 중이다. 그는 "공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알려진 떼까마귀와 백로가 울산 삼호대숲에서 함께 잘 지내고 있다"며 "까마귀는 인문학의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오후 5시30분 울산시 남구 삼호동 태화강 대나무숲의 하늘이 떼까마귀로 뒤덮였다. 강변의 전깃줄과 송전탑도 휴식을 취하는 떼까마귀들로 가득했다. 하늘을 수놓던 떼까마귀들은 해가 저물자 대숲으로 숨어들었다. 김 박사는 "잎과 가지가 촘촘하게 얽혀있는 대숲은 떼까마귀가 수리부엉이 등 천적을 피하기에 최적지"라며 "삼호대숲이 떼까마귀의 주된 월동지가 된 이유"라고 소개했다.
겨울철새인 떼까마귀는 시베리아와 몽골에서 여름을 보낸 뒤 매년 10월 중순 삼호대숲에 찾아와 이듬해 4월까지 머문다. 텃새인 큰부리까마귀와 달리 수천에서 수만 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한다. 울산에서 겨울을 보내는 떼까마귀는 3만~8만 마리로 전국 최대 규모다.
떼까마귀는 해가 뜨면 울주군 두동·두서면과 경주 일대의 빈 논으로 날아가 곡식과 벌레를 잡아먹는다. 김 박사는 "떼까마귀 한 마리가 하루에 약 5g의 배설물을 논밭에 배설한다"고 말했다. 하루에 150~400㎏의 거름이 공짜로 생기는 셈이다. 그가 "떼까마귀는 흉조가 아닌 길조"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김 박사의 하루는 떼까마귀가 잠에서 깨기 전인 오전 4시에 시작된다. 천적에게 잠자리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일출 전에 보금자리를 떠나는 떼까마귀의 특성 때문이다. 그는 매일 새벽 삼호대숲을 떠나는 떼까마귀의 수를 세고 일몰 때는 다시 돌아오는 수를 센다. 한 마리씩 일일이 셀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가상선을 그려 100~500마리씩 묶는 식이다. 개체수뿐 아니라 날씨와 기온·수온·조도 등 기상정보도 노트에 꼼꼼히 적어둔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삼호대숲의 여름철새인 백로의 생태도 집중 연구했다. 2011년엔 '울산 태화강에 도래하는 떼까마귀와 백로의 기상에 따른 행동 변화'라는 박사 학위 논문도 발표했다. 그는 "백로 중 일부는 겨울에도 태화강을 떠나지 않고 떼까마귀와 함께 대숲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가 없어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그가 태화강의 철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9세 때 출가하면서부터. 통도사 스님이 된 그는 울산 학춤의 계승자로 뽑혔고, 새의 움직임을 보다 자세히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에 삼호대숲에 사는 떼까마귀와 백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누군가 까마귀와 백로, 태화강의 생태 환경 등에 대해 연구할 때 내가 기록해 놓은 데이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싶다"며 "지금까지 모은 각종 자료를 모두 정리해 사회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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