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습격]불두화(佛頭花)에 관한 생각(221)
부처머리처럼 빠글빠글하다고 해서 불두화란 이름을 얻은 꽃. 어린 내 눈에 띄었다면 필시 '아지매꽃'이라고 했으리라. 동네에 그런 머리를 한 아지매들 많았으니까. 스님들은 승무 고깔을 닮았다고 승무화라고도 한단다. 꽃 하나도, 마음만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의 머리가 진짜 곱슬이었을까. 불상들은 한결같이 그런 사실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처음에 부처가 깨달음을 전파할 때 자신과 관련된 형상을 인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초기 불교에서 그것은 금기였다. 부처의 존재를 나타내는 방법은, 사각형의 빈 의자(좌대), 보리수나무, 발자국이었다. 설법하는 모습은 법륜(바퀴)로 표현됐고, 열반하는 모습은 탑으로 나타낼 뿐이었다. 그 이상은 없었다.
인더스강 건너 편에선 이런 금기를 지키지 않았다. 종단의 기율이 제대로 미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 간다라지방에서는 유럽과의 무역이 활발했고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가들이 들어와 부처상을 제작했다. 콘텐츠는 부처이지만 그 디자인 양식은 영락없이 서방 미술인 간다라 짬뽕미술이 나타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랬기에, 처음으로 생겨난 부처의 모습은 아폴로나 소프클레스를 닮을 수 밖에 없었다. 곱슬머리와 콧대 높은 부처는 고대유럽 장인들의 작품이다.
부처는 비단같은 천을 늘어뜨린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이 입던 히마티온이다. 보통 내의 위에 걸치는 옷으로, 겨드랑이 아래로 감아 늘어뜨리는 옷이다. 인도에서 석가가 입었던 옷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부처가 서양패션을 했는데도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불교는 당시 계급으로 철저히 분화되어 있던 사람들의 평등을 주장했다. 따라서 외국인을 야만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런 포용적인 성격이 수많은 이방의 침입 속에서도 불교를 건재하게 한 힘이었다. 부처상이 등장하자 열광한 것은 수많은 대중들이었다. 교단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부처상을 모시기 시작하자 종교 전체가 그것을 따르게 된 것이다.
불교의 아미타불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란의 고대종교인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착한 신인 아후라 마즈다와 나쁜 신인 앙그루 마이뉴가 싸움을 벌인다는 이원론적인 세계를 믿는 신앙이다. 물론 마즈다를 기대어 마이뉴를 쫓아내는 게 요체이다. 미래에 성불하는 미륵불은 이란의 태양신 미트라와 유대의 구세주 사상을 배경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또 극락을 서방에 위치시키는 생각 또한 예사롭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왜 하필 서쪽인가. 서방을 정토로 보는 그 생각에는 숨겨진 문명의 회로가 숨어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폴로의 머리를 한 부처를 삼국시대 때부터 받아들여 열심히 조각한 공로가 있다. 히마티온도 실감나게 표현했다. 문명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퓨전이 되어 삼투하고 있었던 셈이다. 불두화는 우리에게 그리스와 로마의 코쟁이들을 꽃으로까지 불러들인 케이스이다. 불두화는 씨앗이 없는 꽃이다. 꺾꽂이나 포기나누기로만 번식할 수 있다. 이런 점이야 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에게 멋진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색을 경계하고 대중에게 자비를 베풀어 더 많은 꽃을 피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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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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