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카톡 엿볼라" .. 검사·경찰·의원까지 사이버 망명
"망명을 환영합니다^^"
"OO씨도 망명 축하!"
증권사 지점에 근무하는 조모(32)씨가 지난 1일 스마트폰에 '텔레그램'을 깔자마자 메시지가 답지했다. 텔레그램은 독일에 기반을 둔 모바일 메신저. 조씨가 이 메신저를 설치한 것은 전국 각 지점에서 근무 중인 입사 동기들의 메신저 대화방을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주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곳이지만 증권사 특성상 간혹 민감한 주제의 대화가 오간다. 조씨는 "일부 동기들이 '누가 들여다볼 수 있지 않느냐'며 불안해했다"면서 "여기저기서 망명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사이버 망명(亡命)'이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8일 검찰의 사이버 허위사실유포 전담수사팀이 신설된 데 이어 경찰의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 압수수색으로 '사이버 검열'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국산 메신저에서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로 이동하는 이들이 잇따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장병완 의원실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국내 다운로드 순위(애플 앱스토어 기준)는 검찰 전담팀 발표 후 일주일 만에 1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보안'이 필요한 대화가 잦은 이들에게 해외 메신저는 일종의 비상구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해외 메신저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최근엔 정치인과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까지 속속 '망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얼마 전 텔레그램에 가입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국내 메신저는 누군가 다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쓰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심지어 검찰과 경찰에서도 텔레그램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 검찰 내 텔레그램 사용은 일부 특수부 검사들과 홍보라인 검사들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보안 문제 때문에 평소 카카오톡은 물론 문자메시지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이용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 정보과 관계자도 "팀원 5명이 얼마 전부터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병행해서 쓰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해외 메신저 가입이 부쩍 늘었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변재일·민병두·은수미 의원 등 초선·중진을 막론하고 텔레그램을 깔고 있다.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은 "텔레그램에 가입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는데 그 사이에 새로 가입한 지인이 400명이 넘었다"며 "사이버 사찰 논란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국내 IT(정보기술) 산업까지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메신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건 수사 당국이 해외 IT업체 서버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다음카카오 측은 "카카오톡 사용자 정보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대화 보관 기관을 기존 5~7일에서 2~3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메신저는 사적이고 내밀한 대화를 하는 창구인데 이것을 들여다본다고 하면 불안감이 증폭되기 마련"이라며 "개입과 압박보다는 자체적으로 사이버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평소엔 국내 메신저를 쓰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해외 메신저를 쓰는 식으로 이용 패턴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석승·이서준·정종문 기자
◆텔레그램(telegram)=러시아 출신 두로프 형제가 지난해 8월 출시한 모바일 메신저로 모든 대화내용이 암호화된다. 지난해 12월 암호를 푸는 사람에게 20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암호를 푼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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