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기황후, 여성정치인이 비전 아닌 연인 도움으로..

데일리안 2014. 3. 24. 10: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포스터.ⓒMBC

드라마 '기황후'의 제39회 방영분에서 승냥이(하지원)는 왕유(주진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은 아버지의 원한을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여기 있는 고려인들을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싸울 거다. 나를 황후로 만들어 달라. 내 아들을 황제로 만들어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야겠다. 나와 손을 잡겠느냐."

승냥이는 기황후, 왕유는 충혜왕이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역사 기록에는 악인과 악녀로 묘사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역사적인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처음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역사 왜곡논란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기황후'는 다른 드라마들을 따돌렸다. 고려 여성이 공녀로 원나라에 들어가서 황제의 부인이 되고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물론 한국인들이 고려인의 후예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견물생심인가. 고려를 위해 황후에 오르는 승냥이 즉 기황후는 엄연하게도 고려의 내정 간섭하고, 자신이 원하는 왕을 앉히기 위해 고려에 많은 군사를 보내 공격하도록 했다. 더구나 오빠 기철을 통해 고려를 지배하고 이득을 공고히 하게 했다. 이를 거꾸로 보면 고려를 위해 내정간섭을 하고 제대로 된 왕을 옹립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을 했으며, 다른 불순한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오빠 기철에 힘을 실어 주었는지 모른다. 어차피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은 원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니 원나라 황후였던 기씨에게 긍정적일 리는 없겠다.

드라마 '기황후'는 초반부터 가족애로 서사 전개의 모티브를 삼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나라 권력자들에게 목숨을 잃은 데다가 자신은 공녀로 내동댕이쳐진 것에 대한 복수가 승냥이의 동기를 정당화해주었다. 정말 드라마 '기황후'에서 실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애를 바탕으로 복수를 그린다는 빤한 소재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드라마가 한국 트렌드 드라마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데 있다. 여성 주인공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함에도 불구하고, 멋진 남성들이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며 보호해준다.

이 드라마에서 고려의 왕 왕유만이 아니라 원나라 황제 타환(지창욱)도 승냥이가 없는 삶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원나라 황제 타환은 승냥이를 매우 사랑하지만, 그는 승냥이에게 일말의 감정도 없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구도를 본다면, 몽골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원 제국의 황제가 쩔쩔매는 모습은 고려 후예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말이다. 중국 사람들이 이 같은 설정에 못마땅한 이유는 그들이 원나라를 자신들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곤테무르칸(혜종 황제)을 원의 궁안에서 공략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고려 때부터 인연히 있었다는 사실은 기황후의 매력에 대한 상상력을 이미 위축시켰다.

여성들이 주인공은 사극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로맨스이다. 그것에 함몰되기 때문에 나라를 운영하거나 정치철학 그리고 국정운영 비전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당한다. 여성들은 제국을 경영하면 안 되는 것일까. 더구나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여성들간의 정치적 모략들이 횡행한다. 물론 이는 막장 드라마 버금가지만, 고려의 여인 승냥이가 벌이는 싸움이라 정당화 된다.

승냥이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테니 도와달라고 한다. 이유는 고려와 자신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만을 위한 최고의 자리는 이기적이므로 다른 악녀 캐릭터와 다를 바가 없으니 고려를 앞에 내세운다. 고려만을 내세우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니 자신을 위해서도 싸우겠다고 말한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퇴장한 타나실리(백진희) 등장한 비얀후드(임주은)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시청자가 고려인의 후예이니 심정적인 동일시를 하니 가능한 설정일 뿐이다.

그러나 사서에 전하는 기황후는 엄연하게 고려에 악행을 저질렀으니 돌아갈 곳 없는 역사적 미아가 되었다. 당연히 이 기록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면, 악녀의 딱지를 벗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기황후만을 다룬 작품이 없었다. 다룬다 하더라도 권력을 두고 벌이는 싸움에는 어쩌면 옳고 그름이 없는지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는 자신의 이익과 그것을 대의명분 삼을 뿐이겠다.

차라리 드라마 '기황후'는 처음부터 솔직했어야 한다. 부모님의 원수와 고려 공녀, 궁녀들의 죽음에 대한 응징이 명분이라고 둘러댈 필요가 없었다. 여성이 막후 실력자가 되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잘못인가. 여성이 정치적 지배자가 되면 안되는가. 우리는 그것이 전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치나 권력은 그 자체가 나쁘다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잘만 쓰면 훨씬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갈고 닦고 경험하고 연습 훈련하면서 경륜과 통찰력을 쌓아야 한다. 이에는 오랫동안 준비와 숙의, 체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승냥이에게는 그런 비전이나 그에 따른 실천이 없었다. 갑자기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며 자신들의 연인들에게 도와 달라할 뿐이다. 그리고 타고나길 명민하여 천재적인 지략가라고 그려질 뿐이다. 그런 방식이니 정치가 실패하는 것이다.

어쨌든 동아시아를 쥐었다 폈다 한 점은 기황후에 관련해 사실이겠다. 현실적으로 막후지배자로 한 세기를 풍미했던 그녀의 통치관은 지금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성해야 하지만 드라마 '기황후'는 원수를 죽이고 단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것만 꿈꾼다. 현대의 기존 정치인들과 닮았다. 그냥 오르기만 할 뿐 그 이후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으니 말이다.

중원에서 물러간 뒤 1370년부터 1402년까지의 몽골 황제들은 기황후의 자손이었다. 32년 간 다섯 명의 황제는 기황후의 아들에서 3세손이었다. 그래서 몽골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스의 나라라면서 호감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는지 모른다. 고려를 벗어나 큰 눈으로 전체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막후 여성 정치인이었던 기황후의 정치적 비전과 국정운영의 철학을 탐구하여 오늘날에 적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퓨전 사극이 멜로 3각 관계와 로맨스, 그리고 막장드라마를 엮으니 시청률은 나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 Copyrights ⓒ (주)데일리안,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