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그대로 베껴 썼다"..국정원, 진술조서도 '위조'

2014. 3. 1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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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진술조서 미리 써놓고 도장만 받았다

[CBS노컷뉴스 정영철 박초롱기자]

↑ 자료사진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진술서나 조서를 미리 써놓고 나중에 탈북자 등 증인들의 도장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정원이 중국 공문서에 이어 진술조서까지 광범위하게 자신의 입맛대로 위조한 구체적인 정황이어서 검찰의 수사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진술서는 참고인 등이 자신이 할 말을 서술하는 것이고, 진술조서는 수사기관에서 문답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인데, 모두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된다.

지난해 6월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정에 탈북자 출신의 이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에앞서 같은해 1월 이씨는 국정원 수사관을 만나 " 2012년 설날에 유우성씨(34)와 중국에 함께 있었다"라고 말한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였다.

국정원은 이 기간 유씨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의심하고 이씨의 진술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이날 법정에서 국정원이 미리 프린트 해 온 진술서를 자필로 베껴썼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와서 증인과 낮에 대화했던 내용을 적어서 프린트를 해 왔느냐"는 질문에 "수사관이 시간이 없으니까 제가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적어오겠다고 해서 타이핑 해온 것을 제가 그대로 옮겼다"고 대답했다.

이씨는 이어 "제가 말은 많이 했지만 그 사람들이 적어 온 대로 베껴 썼다"면서 진술서 내용이 첨삭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실제로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유우성씨와 관련해서는 "유씨 가족들이 다 북한에서 나왔는데 뉴스에는 북한에 있다고 나와서 뉴스가 거짓말"이라고 말하자 국정원 수사관은 "뉴스는 뉴스일뿐이고 조금은 부풀려서 나온다. 우리도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씨 가족이 북한에 없었다는 그의 진술은 진술서에서는 빠졌다. 국정원이 유씨에게 유리한 부분은 누락시킨 것이다.

그는 이후 검찰에 제출하기 위한 진술조서를 작성할때도 '직장으로 소환장을 보내겠다'는 국정원 수사관의 으름장에 어쩔수 없이 따라 갔다고 말했다.

또다른 탈북자 출신 A씨의 진술 조서는 국정원이 미리 작성해 온 것을 A씨가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A씨는 국정원 수사관이 건네 준 진술 조서에서 '유씨가 보위부의 비호를 받았다'는 부분은 자신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국정원은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라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A씨가 하지 않은 말을 진술서에 끼워 넣은 것이다.

A씨는 조서 여러 곳에 비슷한 표현이 있어 이를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국정원 수사관은 '시간이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지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의 진술서도 더 이상 수정되지 않은 채 제출됐다.

유씨 가족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2011년 7월 이후에도 북한에서 유씨 아버지를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는 탈북자 김모씨는 법정에서 판사의 추궁에 오락가락하며 제대로 된 답변을 못했다.

김씨는 끝내 "국정원 수사관에게 '그부분은 헷갈린다. 혹시 1년 전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수사관은 이런 말을 진술서에 담지 않았다.

유우성씨의 동생 가려씨도 자신의 진술서가 이같은 방식으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가려씨도 지난해 6월 14일 법정에서 "내가 진술한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내 말대로 맞춰서 프린트를 뽑아 와 '이것을 보고 베껴쓰라 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의 폭행과 회유에 못이겨 오빠가 간첩이라고 시인했다고 밝힌 가려씨는 경기도 합동신문센터에서 수백장의 진술서를 썼다고 했다.

중국의 한 검사참(세관) 출신 임모씨도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자실 시도)가 한국말로 써온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해 준 것이 진술서가 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유씨의 출입경(국)기록 등 중국 공문서 3건이 위조됐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증거로 제출된 진술서.진술조서도 '가공'된 정황이 나오면서 국정원이 애초부터 특별한 의도를 갖고 간첩사건을 기획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따라서 누구의 지시로 간첩 사건 수사가 시작됐는지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할 중요한 부분이다.

법정에서 연이어 진술서를 베껴썼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담당 검사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도 위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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