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온 추위에.. 꽁꽁 언 인력시장 일감 25% 줄어 일용직들 발 동동

입력 2013. 11. 24. 18:14 수정 2013. 11. 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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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6시쯤 서울 가리봉동 지하철 남구로역 삼거리에는 보이지 않는 긴 선이 생겼다. 일용직 인력시장이 열리는 이곳에서 선택받은 이와 그렇지 못한 이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섰다. 선택받은 이들이 길 건너편에서 일꾼을 태워 가는 승합차에 속속 올라타는 동안, 남은 이들은 영하의 날씨 속에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혹시 모를 일감을 기다렸다.

경기도 광명에서 온 김모(32)씨는 아내에게 "오늘은 그냥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늦잠을 자서 오전 6시가 다 돼서야 나왔다. 일당 10만원 잡부라서 일찍만 나오면 일을 할 순 있는데…"라며 내일을 기약했다.

지난주 서울에는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첫눈이 내렸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에게 더없이 로맨틱한 이 눈은 인력시장 사람들에겐 원망스러운 풍경이다. 눈이 오면 이제 추워진다는 뜻이고 추워지면 일감이 떨어진다. 올해는 예년보다 추위가 너무 일찍 찾아왔다.

취재진이 남구로 인력시장에 도착한 건 오전 4시35분. 이미 500명 넘게 대기하고 있었다. 일당 10여만원 목수 일을 구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날씨에 민감해 추워지면 일감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일이어서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들 가장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 입고 나왔지만 덜덜 떨었다. 씻지 못한 얼굴은 기름기가 가득했고 머리는 눌러 붙었다. 종일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이들에겐 머리 감는 것보다 단잠 5분이 더 매력적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거리를 놓칠까봐 새벽 3시에 나온 사람도 있었다.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이달 들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일자리가 20∼25% 줄었다"며 "특히 올해는 레미콘 기사들이 파업을 해서 건설 공정이 늦어진 사업장이 많아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오전 5시30분을 지나자 사람들을 태운 차량들이 삼거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경찰이 교통지도에 나설 정도로 혼잡했던 도로는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다. 동시에 하루를 공치게 된 이들은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사 안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용직 노동자 10여명이 있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죠. 가족들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내일은 좀더 일찍 나오면 일할 수 있겠죠." 서울 신도림동에 사는 최모(51)씨가 허탈하게 말했다.

일자리 부족의 원인을 중국동포 등에게 돌리며 원망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정모(57·서울 대림동)씨는 "불법체류자들이 일용직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일자리가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자기들끼리 차 몰고 다니면서 일을 다 채간다"고 말했다. 구로동의 정모(46)씨도 "중국인들은 한국에서 돈 벌어 돌아가면 아주 잘 산다던데 난 한 달에 250만원 벌어서 생활비와 병원비 내면 남는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인력시장에는 중국동포와 외국인이 300여명 있었다. 지린성에서 왔다는 중국동포 원모(54)씨는 "처음 한국에 들어와 철근 절단과 용접하는 공장에 있었는데 돈을 하나도 못 받고 쫓겨났다"며 "그 후로 불안정하더라도 매일 돈을 받는 일용직을 한다"고 했다. 중국동포 이모(44)씨는 "우리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다른 일자리는 마땅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한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중국동포들이 일용직 중 과반을 차지한 것은 오래됐다"면서 "내국인은 중국동포에게, 중국동포는 내국인들에게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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