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 블랙리스트 5명 승선거부 사건의 내막
[오마이뉴스 김덕진 기자]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2009년 1월 20일 용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의 경찰 특수기동대(SWAT?Special Weapons and Tactics)를 본 따서 만든 대테러 진압 전문 경찰특공대가 도심 한복판에 출동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아래 쫓겨나는 철거민들은 망루를 짓고 스스로를 가두었지만 '자본의 지팡이' 국가공권력은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 한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 날의 사건으로 철거민 10명이 구속되었고 그 중 8명은 4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감옥 문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반년 후 평택. 급작스런 정리해고로 거리로 내몰린 2646명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77일간 물도, 전기도, 먹을 것도, 담배도 없이 옥쇄파업을 하고 있던 그 뜨거웠던 여름, 몽둥이와 방패를 휘두르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지붕 위를 뛰어다니던 경찰특공대들은 급기야 노동자들의 얼굴을 향해 5만V의 전기가 흐르는 테이저 건을 쏘아댔다. 옥쇄파업이 끝나던 날 96명이 연행되었고 그 중 64명이 구속되었다. 그 참혹했던 날 이후 23명의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자괴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병에 걸려 제대로 치료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네 번째 여름, 육지에서 수 백명의 경찰이 제주에 입도했다. 정당성이라고는 먼지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주변에 접근을 통제할 펜스를 치겠다고 용역회사 직원들 앞에 나서 경찰의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그 날 이후 강정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 기독교 목사를 포함하여 수백명이 체포되었고 3억원 가까운 벌금이 부과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6명의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제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우리의 SKY... 쌍용, 강정, 용산
▲ '2012 생명평화대행진 창원행사 준비위원회'는 11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은 문정현 신부가 발언하는 모습. |
ⓒ 윤성효 |
쌍용(S), 강정(K), 용산(Y)은 이명박 정부시절 자본에 의해 쫓겨나고 내몰리며 국가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가장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우리의 SKY(하늘)는 학원마다 별도의 진학반이 마련되어 있는 서울 소재 명문대들의 이니셜이 아니다. 정리해고 되었거나 비정규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는 자연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 안보라는 이름으로 깨어지는 평화, 자본의 이익에 밀려 거리에 나앉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사회의 고작 1%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하늘'로 군림하는 세상이 아니라,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삶의 공간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바로 이 땅의 주인이고 '하늘'임을 선언하는 단어다.지난 6월 출범한 SKYAct는 "함께 살자"는 소박한 구호를 외치며 이 무서운 세상의 권력과 자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용감한 연대다. 상대를 밟고 올라 이기자는 싸움이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을 넘어서고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따뜻하고 담담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 마음들을 모아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 함께 걷자! 강정에서 서울까지"라는 구호를 들고 2012 생명평화대행진이 지난 10월 5일 강정을 출발했다. 전국의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아픔을 가슴에 고이 담아 11월 3일 서울시청광장에 이 땅의 진정한 '하늘님'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희망의 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2012 생명평화대행진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완전한 복직, 주민들의 동의 없이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제주해군기지건설 백지화,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구속자 석방 등 SKYAct의 요구들은 물론 비정규직 철폐, 4대강 원상회복, 핵발전 정책 폐기, 골프장 난개발 중단, 고압 송전탑 건설 중지, 대형마트 골목상권 진출 중단 등 전국에서 마주하게 될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한 요구들을 모두 대행진의 의제로 삼으며 서울로 향할 것이다. 서민들의 목소리, 현장의 요구가 외면당하는 대통령 선거정국에서, 2012생명평화대행진은 당당한 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을 것이다.
대행진이 시작된 지난 10월 5일 나는 제주항에서 생전 처음 겪어보는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사무국장인 나는 제주도청 앞에서 출정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행진단이 도보로 제주항을 향해 행진하는 동안, 대행진의 첫 번째 밤을 보낼 목포로 가는 대형 크루즈의 표를 사기 위해 참가자들의 생년월일을 적어 한발 먼저 제주항에 도착했다.
"아까 표 끊어주지 말라던 사람들 있었죠?"
▲ 제주항의 S고속페리호의 승선 거부 명단 김덕진,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이름과 생년월일(쪽지에는 '이태후'로 적혀 있었음),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과 홍기룡(쪽지에는 '홍길용'으로 적혀있었음) 제주군사기지건설저지를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이름과 생년이 적혀 있었다. |
ⓒ 김덕진 |
대행진 실무팀들과 함께 S 고속페리호의 매표창구에서 배편을 이용할 47명의 표를 구입하겠다고 말을 건넨 후, S 고속페리호의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승선자들의 명단을 직원에게 건네주기도 전 47명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인 직원 A씨가 직원B에게 "아까 표 끊어주지 말라던 사람들 있었죠?"라고 물었고 질문은 받은 직원B는 직원A에게 작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직원 A는 다섯분에게는 표를 끊어드리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며 42명의 표만 끊어주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의아했던 나는 그 명단을 보여 달라고 했고 쪽지를 다시 건네받은 직원B는 순진하게도 내게 그 쪽지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 쪽지를 살짝 빼앗듯이 건네받았다. 그 쪽지에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이름과 생년월일(쪽지에는 '이태후'로 적혀있었음),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과 홍기룡(쪽지에는 '홍길용'으로 적혀있었음) 제주군사기지건설저지를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이름과 생년이 적혀 있었다.
얇게 코팅까지 되어 있던 그 쪽지를 받아든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올해 초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집시법 위반 사건 벌금은 진작 냈고, 지난 6월 희망걷기 행사로 경찰의 소환을 받은 적은 있지만 아직 3차 소환장도 받지 않았는데 수배나 기소중지를 내렸을 리도 없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대행진단이 시작부터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님도 배를 타지 못한다면 대행진이 시작부터 너무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나는 흥분되었지만 아주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직원A와 직원B에게 이 다섯 사람을 태우지 말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나와 통화를 하거나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두 분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친절히 설명했다. 당연히 직원들의 잘못일 리가 없기 때문에 그 직원들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직원A는 해경에게 연락을 했고 담당자가 곧 올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기로 했는데, 대행진단을 배웅하기 위해 항구에 미리 와 있던 강정마을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격렬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직원A와 직원B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나를 다급하게 불러 "일단 다섯 분도 표는 끊어 드릴 게요. 어차피 배타기 전에 신분증 검사를 하니까요"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일단 47명의 명단을 넘겼고 강정마을 버스를 포함하여 배삯 120여만원을 결제했다. 직원들에게 우리를 배에 태우지 말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재차 물었으나 직원들은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들 중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C가 나타났다. 직원B에게서 건네받은 쪽지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하자 직원C는 직원B와 함께 매표소 뒤로 사라졌다. 직원B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타나 다시 매표를 하기 시작했다. 직원C는 자기 회사의 책임자인 본부장이 오기로 했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달래며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30분이 지나도 본부장은 오지 않았다. 탑승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S고속페리호 본부장의 횡설수설 변명
소식을 들은 지역신문 기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경찰 정보관도 나타났다. 평소 안면이 있었던 제주 경찰 정보관은 내게 자초지종을 묻더니 경찰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뗐다. 해경에도 전화를 해 보았지만 해경 역시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했다. 경찰과 해경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그런 지시를 내릴 수 있겠느냐고 항의하자 그 정보관도 희한한 일이라며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대행진단이 항구에 도착하고 배의 출발 시간이 15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왔다. 그는 무슨 일이냐며 고압적인 태도로 나타나서는 내게 명단이 적힌 쪽지를 한번 보자고 했다. 내가 꺼내 보여주자 그는 그 쪽지를 휙 낚아채더니 마구 구겨서 뒤로 감추며 이 쪽지를 당신이 왜 가지고 있냐며 내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쪽지는 다시 빼앗았지만 그는 결국 표를 끊어주지 않았느냐, 우리는 종종 탑승자 명단을 알려준다는 등 횡설수설을 늘어놓더니 둘러싼 우리들을 밀치며 고소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고함을 치며 자리를 피했다. 직원B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주에 남는 사람들에게 뒤를 부탁하고 출발시간에 쫓긴 우리는 신분증 검사도 없이 배에 탑승했다. 목포에 도착하고 나서야 낮에 어떤 사람이 와서 탑승자 명단에 우리 다섯의 이름이 있냐고 쪽지를 주며 확인을 하고 갔다고 직원들이 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탑승 예약이라는 소중한 개인정보를 공개하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우리에게 표를 끊어주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는 것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분명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다. 직원들은 함구를 명받았고 본부장이라는 간부는 대충 사건을 무마시키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을 것이다.
내 본래 생일은 3월 10일이지만 주민등록상 생일은 2월 18일로 되어있다. 그냥 "호적이 잘못되었다"는 사정이 아니라, 공식적인 호적정정 과정을 거쳐 생일을 변경했다. 내 주민등록초본을 보면 3월 10일을 두 줄로 지우고 2월 18일로 수정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내 미니홈피나 페이스북, 네이트온 메신저 등 생일이 공개되는 모든 곳에는 내 원래 생일인 3월 10일로 기재되어 있다. 생일잔치도 매년 3월 10일에 한다. 그러므로 공개된 신상정보로만은 경찰 등의 공권력이 아니면 주민등록상 내 생일을 알아 낼 수가 없다.
또, 이태호 처장이나 홍기룡 집행위원장의 이름을 틀리게 적은 것은 전화나 무전으로 통보를 받아 명단을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상한 것은 누군가 와서 명단을 주고 갔다고 직원들이 증언을 했지만 쪽지의 한쪽면만 얇게 코팅이 되어 있었다는 것과 이면지를 사용하여 출력한 것으로 보이는 뒷면에는 '휴항일수 : 1일'이라는 글씨가 프린트 되어 있는 점이다. 누가 보아도 '항해'와 관련된 곳에서 사용했던 종이이니, S고속페리회사나 해경이 누군가에게 전화 등으로 명단을 전달 받아 작성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생명평화대행진이 필요한 이유
▲ 2012 생명평화대행진 '우리가 하늘이다' 공식 웹자보 |
ⓒ 생명평화대행진 기획단 |
누군가 2012 생명평화대행진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추어내러 전국을 돌아다니겠다는 대행진이 거슬렸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는 집권당의 대선 후보에게도 우리의 대행진은 반가운 일일 리가 없다. 누가 지시한 일이든 심각한 개인정보의 유출이며 인권 침해임이 틀림없는 '승선거부사건' 또는 '개인정보유출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제주 강정을 출발한 2012 대행진단은 목포, 광주, 광양, 순천, 보성, 공주, 대전, 마산, 창원, 고리, 밀양, 청도, 김해를 지났고 이제 또 구미, 대구, 부산, 전주, 지리산 실상사(민회), 군산, 청주, 문경, 괴산, 동해, 삼척, 원주, 여주를 거쳐 평택에서 만민공동회를 열고 오산, 수원, 안산, 인천을 거쳐 서울로 입성하게 된다. 정리해고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표적·징계해고 노동자들, 태풍피해에 대한 현실적 보상과 기초 농산물 국가 수매제를 주장하는 농민들, 4대강 사업 피해 지역과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 고압 송전탑 건설로 쫓겨나는 할머님·할아버님들, 쫓겨날 위기의 임대주택 주민들 등 지금까지 만난 이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고 만날 것이다.
큰 소리와 화려한 불빛에 묻혀버린 우리의 목소리와 현실. 그들이 진정으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인지, 애써 눈감고 귀를 닫은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 두 개의 문에서 인권활동가 박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용산참사를 저지른 국가폭력을 참아줬다. 그래서 쌍용자동차의 폭력진압이 가능했다. 언제까지 우리들이 참아 줄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을 들으며 인내하는 것을 인격수양의 척도로, 삶의 미덕으로 여기라고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아흔을 훌쩍 넘긴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노투사 스테판 에셀의 책 < 분노하라 > 는 전 세계에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난 그 책을 다음과 같이 한줄로 정리한다.
"사회의 부조리와 부당함, 차별과 억압에 무관심한 이들아.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분노하라."
부당한 국가권력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본에 분노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누구는 거리에 나서고, 누구는 글을 쓰고, 누구는 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투표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저 많은 일정들 중에 하루도 중요하지 않은 날은 없다. 하지만 만약에 딱 하루만 올 수 있다면, 10월 20일(토) 지리산 실상사에서 열리는 민회와 10월 23일(화) 문경새재를 다 같이 걸어 넘는 문경새재 행사, 10월 28일(월)부터 시작되는 만민공동회에는 할 말 많은 사람들이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11월 3일(토) '바람버스'를 타고 각자의 바람을 담아 서울광장에 모이는 날에는 날씨가 화창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의 바람과 절규를 담고, 더 많은 이들의 후원과 응원을 업고 희망의 생명평화대행진은 오늘도 걷는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생명평화대행진 공식 카페 : http://cafe.daum.net/walk4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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