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최용수의 '응답하라 1997 도쿄'

[춘천=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요즘 대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옛 추억을 끌어내 그 속에 흠뻑 빠지게 한다. '응답하라 1997'이란 제목의 드라마 얘기다. 대중문화, 특히 가요계의 황금기라 불렸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들의 삶도 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에겐 더 없는 공감이다. 삐삐, 다마고치, 전화카드, 크리스마스 실 등 그 시절 삶의 양식도 곳곳에 묻어나온다.
그 시절 얘기하는데 또 축구가 빠질 수 없다. 황선홍, 홍명보, 고정운, 하석주, 김병지, 윤정환 등 기라성 같은 선수가 즐비했던 시기다. 하지만 드라마 속 1997년 당시, 최고의 스타는 '독수리' 공격수 최용수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매 경기 골 폭풍을 몰아쳤다. 그래서 드라마 주인공 성시원(정은지 분)의 아버지 성동일은 축구 경기를 보며 외쳤다. "최용수 저 XX 대단한 놈이여!"
타임머신을 그 시절 하이라이트로 돌려보자.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 6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열렸다. 홈 관중의 일방적 응원을 등에 업은 일본이 선제골을 뽑았다. 후반 20분 야마구치의 로빙슛이 김병지 골키퍼 키를 넘겼다. 어두운 그림자가 태극전사들 위로 드리웠다.
초조하게 시간만 흐르던 후반 38분, 오른쪽 측면 이기형의 크로스가 날카롭게 올라왔다. 최용수는 훌쩍 뛰어올랐다. 수비수 두 명을 앞에 놓고도 정확한 헤딩으로 골문 앞쪽으로 공을 보냈다. 이어진 서정원의 헤딩슛. 골망을 갈랐다. 동점이었다.
불과 3분 뒤, 이번엔 아크 부근에서 최용수가 공을 잡았다. 페널티박스엔 일본 수비수 6명이 버티고 있었다. 대신 중원에 틈이 났다. 2선에서 올라오던 이민성에게 패스했다. 공을 잡은 이민성은 주저 없이 대포알 같은 왼발 슈팅을 날렸다. 시원스레 날아간 공은 골키퍼 앞에서 한번 바운드 된 뒤 그대로 골문에 빨려들어갔다. 역대 한일전 최고의 명승부, '도쿄대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후지산이 무너집니다!" 아나운서의 중계 멘트는 가장 적절하면서도 극적으로 역사적 승리를 수사했다.
골을 넣은 서정원과 이민성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숨은 주역은 최용수 서울 감독이었다. 경기 내내 일본 수비진의 견제대상 1호였다. 두 골 모두 그의 어시스트에서 비롯됐다.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로 도쿄대첩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됐었다. 드라마 속 성동일의 애정 어린 외침의 이유이기도 하다.

정작 최 감독 본인은 요즘 드라마에서 됴쿄대첩과 자신이 새삼스레 회자된 것은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고개는 끄덕였다. 불쑥 "인생은 타이밍이라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당시 한일전 앞두고 'IMF 사태'가 터졌었다. 선수들 모두 축구를 통해 희망을 주고 싶었다"라며 "그날 승리로 인한 인상이 15년을 가는 것 같다"라며 웃어보였다.
말 나온 김에 당시 얘기를 물었다. 그 때의 감격은 고스란히 살아났다. 최 감독은 "경기 끝나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더라"라고 했다. 그는 "첫 골부터 정말 멋있게 넣었다"라며 "공이 골문에 들어가는데 소름이 돋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역전골 상황도 정확히 기억했다. 그는 "동점 되고 한동안 도취돼서 '와…'하고 있었다"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어 "얼른 정신 차리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수비수 등지고 공을 잡는 순간 줄 곳이 없더라. 그때 옆에서 (이)민성이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툭 밀어줬는데 한 번 치고 들어가더니 바로 때리더라"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민성이가 골을 넣었을 때 '이런 게 기적이구나!' 했다"라고 털어놨다.
'도쿄대첩'을 만든 원동력은 뜨거운 승부욕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그는 "코너킥 상황이면 옆에서 '퍽퍽' 하는거다. 공격에 가담한 유상철, 김태영 등이 일본 수비수들과 부딪히는 소리였다. 일본 선수들이 거친 몸싸움에 약한 편"이라며 "나조차 보면서도 속으로 '어휴'했을 정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최 감독은 "일본을 상대로 강한 전투심을 그라운드에 다 쏟아낸 거다. 그 외에도 카메라엔 안 잡혔지만, 데드볼 상황에선 차고, 부딪히고…. 정말 살벌했다"라며 웃었다.
흥미로운 얘기를 덧붙였다. 그는 "그 때 뛰었던 홍명보, 유상철, 김태영, 하석주 이런 사람들 정말 승부기질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양반들"이라며 "황선홍 감독도 인상은 선해 보이지만 얼마나 지기 싫어하는 줄 모른다. 특히 한일전이라고 하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어 "그런 사람들이 전부 지금 지도자를 하고 있으니…피터지는 싸움이 될 거다. 어휴, 무섭다"라고 익살을 부렸다. 도쿄대첩이란 기적을 일궈냈던 '승부의 화신들'이 K리그와 대표팀에 포진되어 있으니, 그만큼 한국 축구 역시 뜨겁고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속엔 K리그 후반기에 이어질 스플릿 시스템에 대한 기대감도 담겨있었다.
전성호 기자 spree8@<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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