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로 돌아온 박승희 "난 더 성숙해졌다"
[오마이뉴스 정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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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상 후 1년만에 국가대표로 돌아온 박승희가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
ⓒ 정인영 |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빙판 위에서 그녀는 순발력과 지구력을 고루 갖춘 최고의 올플레이어이자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당찬 선수였다. 2007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첫 태극마크를 단 후 2010밴쿠버올림픽에서 2개의 동메달과 2010세계선수권 우승을 거쳐 지금까지도, 국가대표 박승희의 위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빙판 밖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빙판 위에 서 있을 때 느껴지던 국가대표 박승희의 위엄과 든든함은 온데간데없고 털털함과 솔직함으로 똘똘 뭉친 20대 박승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친 언니인 박승주(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와 하나뿐인 남동생 박세영(현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에 비해 인터뷰 경험도 많고 그만큼 잔소리도 많다는 박승희. 그녀는 온 가족과 마주앉은 인터뷰 자리에서도 남자친구 이한빈(현 쇼트트랙 국가대표)과의 연애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하는 등 화끈하게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았다.
4년 만에 나선 국내대회 "주변 시선 부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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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희(오른쪽)의 꿈은 동생 박세영(왼쪽)과 함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
ⓒ 정인영 |
지난 시즌은 박승희에게 유독 힘든 한 해였다. 허리부상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건너뛴 후 재활에만 전념하고, 다시 복귀한 국내대회에서 생각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것. 여기에 소속팀인 화성시청 빙상팀의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금은 잘 마무리가 되어 계속 소속팀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 큰 슬럼프 없이 지내온 박승희에게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시리기만 했다.
"계속 대표팀에 있다가 부상으로 1년 쉬게 되면서 정말 오랜만에 국내대회를 뛰었어요. 힘든 시기를 겪은 후라 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시합 앞두고 많이 불안했죠. 또 '쟤는 국가대표니까 분명 잘 탈거야'라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국내대회에 나서는 부담이 상당했어요. 실제로도 경기가 잘 안 풀려서 그 때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그러나 박승희는 특유의 '승희표 무한 긍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이겨내고 묵묵히 4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치른 선발전에서 박승희는 종합 2위로 다시 태극마크를 달며 화려하게 부활 탄을 쐈다.
"다시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선발전 날이 다가올수록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다시 선발돼서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이번 선발전으로 자신감을 다시 얻었다는 박승희는 1년 쉬고 온 만큼 전보다 더 온 힘을 다해 뛰겠다며 다음 시즌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벌써 21살이라며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쌓인다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생각하는 면에서나 행동하는 면에서 더 성숙해졌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특히 지난 해 캐서린 로이터나 아리아나 폰타나 같은 외국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는 만큼 절대 방심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다가오는 시즌을 착실히 준비해 많은 메달을 따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가족?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함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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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희(오른쪽)는 지난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아깝게 떨어진 동생 박세영(왼쪽)에게 "올림픽이 걸린 내년에 잘하면 된다"며 다독였다. |
ⓒ 정인영 |
지난 4월 국가대표로 발탁된 박승희가 가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주말뿐이다. 태릉선수촌에서 매일 7-8시간가량의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외박권이 주어지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선수촌 밖을 나갈 수 없는 탓이다.
그마저도 함께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언니 박승주와 동생 박세영과의 훈련 일정이 다 달라 가족 5명이 모두 모이기는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박승희는 이에 대해 떨어져 있는 생활이 익숙해서 큰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웬만큼 떨어져 있어도 그립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편이에요. 동생은 같은 종목이라 시합장에서 자주 보고, 언니는 지금 선수촌에서 바로 앞방을 쓰고 있거든요."
무심한 듯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승희도 동생 박세영의 경기를 볼 때면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고. 특히 지난 4월, 함께 출전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동생의 첫 선발을 누구보다 간절히 원한 사람은 바로 박승희였다. 첫 날 500m 경기에서 1위를 거머쥐며 국가대표에 유리한 고지에 오른 박세영은 둘째 날 9명이 출전한 3000m 경기에서 최소 8위 안에만 들면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날 박세영은 모두가 의아해할 만큼 스케이팅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9위로 골인, 다시 한 번 남매국가대표에 대한 꿈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박세영의 경기를 간절하게 바라봤을 박승희는 출발하자마자 동생이 경기를 잘 풀지 못할 것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사실 일반 사람들을 볼 때는 잘 모르지만 저는 선수이기 때문에 동생이 탈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바로바로 알거든요. 선발전 때도 출발하자마자 타는 게 좋지 않아서 '이렇게 탈 애가 아닌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경기 끝나고 물어 보니 출발할 때 날을 밟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쉽긴 했지만 탈 때부터 스케이트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았던지라 제대로 타지 못 할 거라는 예상은 했었어요."
경기 직후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내던 동생을 보며 박승희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경기는 많이 남아 있다"며 동생을 위로하는 누나다운 모습을 보였다. 박승희는 한 살 아래인 동생과 어릴 적부터 티격태격 친구처럼 지내왔지만 스케이트 선배로서는 후배 박세영에게 유독 엄격했다.
"한 살 차이이긴 하지만 아직 제 눈에는 마냥 어려 보여요. 저는 동생이 괜히 건방져질까봐 잘 탄다고 말하지도 않아요. 동생이 잘 타고 와도 오히려 잔소리를 하곤 하는데, 동생은 그런 저에 대해 신경도 안 써요.(웃음)"
한편 지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4위로 태극마크를 달게 된 이한빈(25. 서울시청)은 박승희의 스케이트 선배이자 남자친구로 알려져 있다. 비록 남매국가대표에 대한 꿈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지만, 박승희는 교제 중이던 이한빈과 함께 국가대표로 발탁 되면서 '연인 동반 금메달'이라는 꿈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오빠는 굉장히 어른스러운 면이 많아요. 제가 평소에 많이 덜렁대는데, 오빠가 옆에서 잘 챙겨주거든요. 선수촌에 함께 들어와서 오빠한테 의지도 많이 되고,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아요."
하지만 공개연애에 대한 불편함도 분명 있었다. 비밀연애로 시작했지만 함께 선수촌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연애 사실을 공개했다는 박승희는 전보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됐다고.
"시합을 타다 보면 가끔 못 할 때도 있는 건데, 괜히 이런 저런 말이 나올 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주위에서 안 좋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올해는 특히 더 잘 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연애하느라 실력이 떨어졌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요."
올림픽... "소치에선 내가, 평창에선 세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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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희가 국제대회에서 따온 메달들. 중간에 2010밴쿠버올림픽에서 따낸 2개의 동메달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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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막내 시절부터 지금까지. 쇼트트랙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올림픽 등 박승희는 어린 나이에 큰 대회를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지 않고 대범하게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유독 큰 대회에 강하다는 박승희는 대회 전 자신이 그만큼 신경을 더 많이 쓰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 결과라고 말했다.
"제가 잘 안 떠는 것 같나요?(웃음) 많이는 아니지만 저도 긴장을 안 하진 않아요.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그 긴장감을 모두 잊어버리는 스타일일뿐이에요. 실제로 경기가 시작되면 경기에만 집중하느라 그 많은 관중들 소리도 하나도 안 들려요.
올림픽 때도 아무래도 첫 출전이다 보니까 처음 1500m를 탈 때 많이 떨리더라고요. 근데 막상 스타트 라인에 서고 출발을 하니까 월드컵 뛸 때랑 느낌이 똑같았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긴장을 덜 했고, 결과도 동메달로 좋았죠."
박승희는 큰 슬럼프 없이 꾸준히 세계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탓에 앞으로 2년 남은 소치올림픽에서 가장 기대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박승희가 대한민국이 유독 약한 단거리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도 그 이유로 뽑힌다.
부모님에게 순발력을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유독 단거리에서 빛을 발했다는 박승희는 실제로 이번 시즌 국가대표 새 얼굴인 심석희(16, 오륜중)와 함께 500m 메달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허리부상으로 휴식을 자청한 것을 제외하고도 박승희는 이번이 국가대표로 5번째 발탁이다. 그 사이 이미 한 번의 올림픽을 치른 박승희에게 자국에서 열리는 2018평창올림픽에도 도전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평창에는 욕심이 없다는 생각을 밝히며, 오히려 동생인 박세영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쇼트트랙의 선수 생명이 길지 않다 보니 '꼭 평창올림픽에 뛰어야지'하는 생각은 아직까진 없어요. 오히려 저는 동생에게 많은 기대를 걸죠.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선수생활이 긴 편이니까요. 또 세영이도 평창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싶어 하는 욕심도 있고요. 저는 아직은 소치올림픽까지만 생각하고 있어요."
다수의 월드컵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우승, 그리고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까지. 국가대표로 뛴 지난 4년은 박승희에게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 할 것만 같았던 박승희에게 찾아 온 지난 해 일련의 시련들은 그녀에게 뒤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녀는 더 단단해져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한층 더 여유 있어졌다.
선수생활을 짧게 하고 싶다고 밝힌 박승희는 평창올림픽은 생각하지 않고 소치올림픽에 모든 걸 쏟고 싶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힘찬 비상을 꿈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박승희에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을 들은 박승희는 주저 없이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말하며, 밴쿠버에서의 아쉬움을 씻어내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뭐든 금방금방 잊어버린다는 그녀의 말대로 박승희는 곧 올림픽 금메달을 상상하며 금세 다시 밝게 웃어보였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기 때문에 소치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하나라도 땄으면 좋겠어요. 물론 더 많이 딴다면 좋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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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빙상패밀리로 주목받고 있는 박승희네 가족. 왼쪽부터 아버지 박진호 씨, 셋째 박세영(쇼트트랙), 어머니 이옥경 씨, 둘째 박승희(쇼트트랙), 사촌동생 정지웅(쇼트트랙). 첫째 박승주(스피드 스케이팅)는 국가대표 합숙 훈련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
ⓒ 정인영 |
덧붙이는 글 |
* 빙상패밀리의 릴레이 인터뷰 2탄,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박세영편이 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아이스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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