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주사파는 유시민 심상정이 키웠다
[데일리안 박한명 폴리뷰 편집장]"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여 드립니다."
그런 광고 카피가 딱 들어맞는 경우였다. 연일 신문, 방송을 장식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보여준 시대착오적 행태는 국민이 생각하던 수준을 뛰어넘는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비례대표 경선과정이 총체적 부정선거였다는 당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그들은 "관행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실이었다"고 맞섰다.
이미 세상에 드러난 유령 투표, 대리 투표, 뭉텅이 투표 등 불법· 부정을 그렇게 쉽게 발뺌할 수 있을까? 자체 수습책을 위한 당 중앙위원회에선 급기야 주먹질이 오고갔다. 이날 통진당 당권파는 민주주의 머리를 잡아채고, 할퀴고 폭행했다. 경악한 우리는 그 모습의 목격자가 됐다.
그들의 발언들도 낯설고 충격이었다. 풍문으로만 듣던 주사파의 민낯을 보게 됐던 것도 그 덕이다. 유치원생에게나 물을 법한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물음에도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을 드리겠다"고 회피하던 이정희 전 통진당 공동대표를 보며 설마 했던 국민들은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라고 강변하는 당권파의 몸통 이석기 당선자의 발언에 정말 식겁했다. 그는 "부정이 50%, 70%는 되어야 총체적 부정"이라고 강변했다. 그런 그들의 독선과 위선이야말로 상상 이상이며, 끝내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으니 차제에 밝힐 것은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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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초유의 폭력사태가 발생해 충격을 주는 가운데14일 국회에서 열린 공동대표단회의에서 유시민 공동대표가 굳은표정으로 안경을 만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해방 이후 진보세력 내지 좌파도 여러 가지이지만, 저들의 정확한 갈래를 따지는 것도 일반인에겐 너무 복잡하다. 한미 FTA를 추진하던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통합적 진보"로 자처했고, 자기를 공격하던 세력을 "세계화 물결에 소극적인 교조적 진보"라고 비판했다. 그만큼 저들은 조금씩 다르며, 실제로 내부 편 가르기에도 능숙하다. 이들과 또 다른 갈래인 민노당의 후신인 통진당은 진보 좌파 이념의 어디쯤에 속할까? 그중 당권파의 정체성과 뿌리는 정확하게 어디일까? 정말 시대착오적인 종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그걸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주사파가 운동권의 중심을 파고들게 된 배경부터 파악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은 주사파 세력이 편리하게 가져다 쓴 만능의 가면이었다. 아직도 일부 국민이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좌파' '민주화 세력'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민주화운동에 올라탄 저들의 기생 방식 때문이다. 물론 주사파 세력이 1980년대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전두환 체제가 직접 원인이다.
군사 정부에 대한 환멸, 광주 사태의 참혹함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체제 운동을 촉발시켰고, 이때 일부가 북한 체제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한국 정부에 대한 반발과 적개심을 양분으로 삼아 민족주의 정서를 적절히 자극하며 등장한 게 운동권 내부의 NL파, 이른바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파였다. 계급투쟁을 먼저 전개해야 한다는 PD(민중민주주의파)보다 민족통일운동을 우선시하며 운동권을 장악한 것인데, 그건 어렸을 때부터 민족담론에 익숙한 우리네 정서상 필연이었을까?
문제는 정통성의 근간을 어디에 두느냐가 NL계에서도 주사파와 비(非)주사파로 갈라졌다. 주사파는 우리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당시 유행하던 신제국주의론 등 좌파이론과 공산주의혁명에 있어 수령의 역할을 적절히 섞어 비주사파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렇게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들의 선민의식과 독선은 놀라웠다. 애시당초 정통성 없다는 남한 정부를 타도하는 '혁명적 작업'에 절차적 민주주의 따위야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이석기, 이정희, 김선동, 김미희, 김재연 등 당권파들이 보여준 낯선 행태에 그런 배경이 들어있다.
그렇게 NL을 장악한 주사파는 한때 운동권의 중심이었지만, 공산주의가 망한 이후 1987년 체제를 거치며 나름 적응과 변신을 한 다른 운동권 세력과는 괴리된 채 음지로 숨어들었다. 이석기가 몸담았던 민혁당이 바로 그것이다. 통진당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이란, 다른 말로 과거 민혁당 재건세력이다. 전향하지 않은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북한에 둔 채 1980년대 식 통일운동을 목표로 하는 시대착오적인 수구 좌파집단에 불과하다. 이정희, 이석기 등이 거리낌 없이 안하무인식 궤변의 시대적 배경이 그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이 신앙을 붙들고 있는 세력은 남한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반면, 이 신앙을 버린 '원조' 주사파 김영환 같은 이는 북한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 지금이다. 이것이야말로 주체사상이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지만, 역설적으로 통진당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음지에서 있던 저들의 실체를 모두가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함께 음미해볼 대목은 당내 계파 싸움에서 뜻하지 않게 영웅이 된 유시민, 심상정 전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의 실체가 아닐까?
그들이야말로 통진당 사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권파들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고 고발한 유 전 대표는 과거 개혁당 시절엔 "국민의례는 군사 파시즘과 일제 잔재가 청산 안 된 것"이라고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진보당이 한국사회의 우환덩어리가 됐다."고 한 노 대변인, 심상정 전 대표의 당권파 비판도 실은 너무 늦었다. 당권파의 실체를 알고도 야합했다가 상황이 바뀌니 다시 헤어지려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그들은 면하기 어렵다. 심상정, 노회찬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이들의 실체를 알고도 묵인했고, 그걸 이유로 결별했다가 다시 야합하길 반복했다.
또 하나. 옆집 사정에 밝아야 할 민주통합당에겐 '미필적 고의'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리 선거승리가 절실하다 해도 민주주의 파괴세력이 장악한 통진당과 연대에 나선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셈이다.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얼마 전 "껍데기만 남은 진보는 이제 깃발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들과 함께 성찰적 진보의 길을 가야한다"고 고백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어쨌거나 곪아가던 종기가 터지는 건 일단 긍정적이지만 통진당 당권파들의 실체가 드러난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이 기회에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진보의 재구성도 생각해볼 시점이다. 상식이지만, 서구의 좌파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탈바꿈한지 오래이고, 실사구시의 현실적 노선으로 컴백했다. 앤서니 기든스의 지적대로 "역사발전의 전위(前衛)"라는 옛 시절의 허장성세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그러나 통진당의 전신이자, 한국좌파 정당의 한 갈래인 민노당은 2000년 초 창당 초부터 낡은 정통 좌파노선을 고집했다. 그들은 서구적 의미의 사회민주의 노선마저 배격하는 시대착오적 태도를 보였는데, 그게 오늘의 사태와 무관치 않다.
민노당은 지난 해 말 국민참여당 · 새진보통합연대와 합당하며 통진당으로 출범한 모태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통진당 당권파 사태는 아직도 낡은 껍질을 벗지 못한 2012년 한국 진보, 한국 좌파의 총체적 한계일 뿐이다. 그들이 작별해야 할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마르크스 레닌주의 도래를 꿈꾸는 낡은 사관을 버려야 하고, 모든 통일은 좋다는 식의 맹목적 민족주의와도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실패국가이자 역사에서 미끄러진 체제로 규정된 북한과의 관계 설정을 애매하게 둔 채, 그들의 인권에 눈 감고 뒷거래도 하는 종북 좌파는 설 자리가 없다는 건 자명하다.
글/박한명 폴리뷰 편집장(http://www.goodsocie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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