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잡지 만드는 고교생들 - 서울 명덕고 영자신문동아리

영어 잡지 『The Pathfinder』는 서울 명덕고 영자신문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취재해 전교생에게 배포됐다. [최명헌 기자]
#"삼호주얼리호 소말리아 해적 피랍이나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처럼 사회적 쟁점이 된 사건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청소년의 관심사를 기획기사로 많이 다룬 것이 지난 호와 달라진 점입니다."(2학년 이동호군)
#"이번 호는 이주민 단체 봉사와 영화·음악 리뷰 등 주제를 좀 더 다양화 해보려고 합니다."(1학년 오택중군)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명덕고 영자신문 동아리 회원들이 방학 보충수업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두 달 전 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취재·편집해 발행한 'The Pathfinder' 2호를 평가하고 올해 편집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학생들은 학업과 잡지 제작을 병행하며 시간에 쫓겨야 했던 지난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잡지를 받아본 학교 선·후배와 친구들이 자신들의 잡지를 소홀히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섭섭함도 얘기했다. 이 학교 이성미 교사는 "외국어고에선 영자신문이 종종 발행되지만 인문계고에서 영어 잡지가 발행되는 것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사회 이슈 취재하며 영어 표현 실력 길러
영자신문 동아리는 2년 전 구성돼 영자신문 읽기부터 시작했다. 몇 달 후 몇몇 학생끼리 영어잡지를 만들어보자는 뜻을 모은 후 지금은 회원이 50여 명으로 늘었다. 잡지는 1년간 꾸준히 준비해 매년 말 발행된다. 2010년 첫 호는 48면이었지만 다음 호는 66면으로 늘어났다. 내용도 교내 행사와 개인 기사가 주였지만 지금은 10대들이 궁금해하는 사회적 이슈도 담고 있다.
오상우(1학년)군은 지난해 8월 말 인도 사람들을 취재하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문화교류차 명덕고를 방문한 인도 대학생들을 인터뷰해야 했다. 오군은 "인도의 영어 억양이 너무 강해 못 알아들어 통역자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겨우 마쳤다"고 회상했다. 이동호(2학년)군은 학교 오케스트라단이 요양원을 방문해 선보인 공연을 취재했을 때를 가장 인상 깊은 추억으로 꼽았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아리랑 연주를 했는데 잘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아리랑을 흥얼거렸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현장을 생생하게 기사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잡지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취재를 맡은 12명의 학생은 각자 3~4 꼭지의 기사를 써야 했다. 긴 기사는 분량이 A4로 5장이나 됐다. 이군은 "예전에는 영어 장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기사를 쓰면서 긴 문장에 점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영자신문 동아리에선 잡지 제작뿐 아니라 영어를 활용한 봉사와 독서활동도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도서관에서 미취학 아동과 초등 저학년, 학부모들 20여 명을 대상으로 영어책을 읽어주고 연극이나 게임을 한다. 점심시간 짬짬이 영어소설을 읽고 15~20분 동안 영어로 발표도 한다. 봉사 현장 기사 작성, 북 평론 쓰기 등은 잡지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다. 남궁영수(1학년)군은 "읽은 영어 책 내용을 매주 동아리 온라인 카페에 요약해 올리는데 이 같은 훈련이 영어 기사를 쓸 때 주제 파악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남궁군은 "영어를 배울 때 읽기나 듣기 위주로 공부해 나의 생각을 영어로 쓸 기회가 적었는데, 영어로 기사를 쓰면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경험이 영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아나운서가 꿈인 전현준(1학년)군은 영어신문으로 신문활용교육(NIE)을 하는 줄 알고 이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는 "단순한 영어 활용 교육이 아니라 영어로 잡지를 만들고 봉사하며 생활 속에서 영어를 체험하니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외국서 살다온 친구들 도움 받아 문장 다듬어
11월 초 전교생에게 'The Pathfinder'가 배포됐을 때 동아리 회원은 모두 감격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교생이 공부 시간을 쪼개 잡지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 특히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모두 마감 공포를 겪었다. "시간 관리가 가장 힘들었다"는 장진우(1학년)군은 "내신이나 모의고사를 앞두면 기사 작성의 흐름이 깨져 다시 리듬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시간이 지나 취재 내용도 잊어버리고 당시 느꼈던 감도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취재하고 바로 쓰면 되는데 학교 생활과 병행하려면 시간 쪼개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취재기자들이 쓴 영어 원고는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장진우·김현재군이 다듬고 고쳤다. 김군은 "발행일이 다가오면서 마감에 쫓기는 압박감이 컸다"고 돌아봤다 "밤늦께까지 이성미 선생님과 학교에 남아 작성자의 의도를 생각하며 문장 오류를 잡느라 애먹었다"고 회상했다.
오상우(1학년)군의 꿈은 기자다. 그는 "기자가 막연히 세상의 일을 알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접 기획하고, 취재한 후 기사를 쓰면서 꿈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올해 동아리 회장을 맡은 오군은 "앞으로는 소외계층에도 눈을 돌릴 계획"이라며 "단순히 학교 내에서 읽고 끝나는 잡지가 아니라 또래 많은 학생과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박정현 기자 < lenajoongang.co.kr >
사진=최명헌 기자
박정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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