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드라마 <나는 살아있다>..시작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2011. 12. 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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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석원 기자]

MBC < 나는 살아있다 > 방송 장면들

ⓒ MBC

좀비, 즉 살아 있는 시체들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영화 감독 조지 로메로였다. 그가 만든 '살아 있는 시체들' 3부작을 통해 지금 우리가 좀비라고 부르는 존재들의 특징 대부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대량생산·대량소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문명 비판, 정부와 군과 재벌이 연루된 음모론, 인종 차별, 환경 오염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코드들을 적극적으로 읽어냈다.

조지 로메로의 3부작 이후, 수많은 아류가 재생산됐다. 근래에 들어서는 기존 좀비물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눈부시게 발전한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극사실적인 영상을 장전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대니 보일의 < 28일 후 > , 잭 스나이더의 < 새벽의 저주 > , 미국드라마 < 워킹데드 >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좀비 영화의 컨벤션 갖추고 '한국의 공중파 드라마'라는 한계 속에 낮아진 잔혹지수

지난 12월 10일 방송 MBC 2부작 특집 드라마 < 나는 살아있다 > 는 국내 최초로 좀비를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 나는 살아있다 > 는 지금까지 나왔던 대표적인 좀비 영화들의 장르적 컨벤션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면서도, 공중파 드라마라는 태생적 한계를 반영해 잔혹 지수를 낮췄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한국'이라는 변수를 가미해서 기존 좀비물과는 다른 몇 가지 차이점을 만들어냈다.

수연(정선경 분)은 당장 심장 이식이 필요한 어린 딸과 '코마' 상태에 빠진 친정 어머니를 병구완하느라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녀는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도 지친 상태다. 병원을 찾은 수연에게 어머니의 담당 의사(유나현 분)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임상실험을 권유하지만, 수연은 이를 거부한다. 한편 특수부대 소속 군인인 준모(백도빈 분)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동료를 수연의 어머니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후송해오는데, 그 동료는 이미 심각한 상태다.

수연에게 제안을 거절 당한 담당 의사는 병원장(박충선 분)의 종용으로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임상실험을 강행하고, 그날 밤 준모가 후송해온 동료를 시작으로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의해 '체질 변이'를 일으킨 이들이 좀비 같은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준모는 아직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들을 불러모으고 지원 병력이 도착하는 아침까지 버텨보려 하지만 좀비가 된 사람들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그와 일행은 사투를 벌이게 된다.

기존 좀비물을 보면, 좀비들은 살아 있는 동물, 특히 인간을 주로 공격해서 아귀처럼 그 살과 내장, 부속물 등을 먹어치우며, 대부분 식욕 외에는 다른 욕망이 없는 존재들이다. 또한 그들은 이미 한번 죽어서 영혼이 없기 때문에 부모·자식도 몰라본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마도 그들을 퇴치하려면 반드시 뇌를 날려 버려야 한다는 '상식'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 나는 살아있다 > 의 '괴물'이 된 사람들은 일반적인 좀비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면서도, 두 가지 뚜렷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이들을 그냥 좀비라고 부르겠다.

우선, 이들은 머리에 총알을 박아도 좀처럼 퇴치되지 않는다. 박힌 총알마저 밀어낼 정도의 놀랄만한 재생 능력 덕분이다. 또한 영혼이 아예 없어진 존재도 아닌 듯하다. 당연히 그들이 이미 한번 죽었던 존재인가도 불분명하다. 수연의 노모는 중요한 순간마다 모성애라는 본능을 체현하고, 준모의 동료 역시 그를 공격하다가 준모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멈칫 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드라마의 완성도에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이른바 '수퍼 좀비'의 탄생을 의미한다. 덕분에 생존자들은 더 위험해졌지만, 달려드는 좀비들과 치고 받는 '액션'을 책임져야 할 준모라는 캐릭터의 존재가 애매해졌다. 머리에 총을 맞아도 다시 일어나는 좀비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총검술로 그들의 공격 속도를 늦추고 일행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는 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준모 캐릭터가 살자면 비장하게 죽거나, 인상적인 작전을 세우는 등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상 두 번째 주인공인 이 캐릭터에 끝내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맥스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볼만한 건, 멋있는 히어로, 제대로 된 작전, 처절한 사투는 없어도 절체절명이라는 긴박한 상황 자체가 스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전자가 빚은 결과가 아쉬움이라면, 후자는 보다 심각한 문제를 던진다. 영혼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존재들을 그들이 공격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제거'하거나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모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사실 이 문제는, 좀비들이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존재라고 설정한 기존 좀비물에서도 심심찮게 제기된 문제다. 하물며 < 나는 살아있다 > 는 이들에게 인간성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설정을 세웠으니 문제는 더 커졌다.

솔직히 그들에게 인간성이 남아 있다고 일갈하던 수연이 오로지 딸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떤 죄책감도 없이 서슴지 않고 좀비들의 머리통을 향해 몽키 스패너를 날리는 모습은 정서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같은 행동을 했다면 수연의 캐릭터는 일관성과 함께 고뇌하는 인물 특유의 입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성이 남아있는 좀비'라는 야심만만한 소재에도 '모성코드' 사용 아쉬움

하지만 드라마는 제목까지 '나는 살아있다'라고 지어놓고도 그런 문제 의식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한 단계 발전된 고민도 내놓지 못한다.

MBC < 나는 살아있다 > 의 주요 출연진. 왼쪽부터 홍근하 전병철 정선경 이연주 백도빈 윤원석

ⓒ MBC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 나는 살아있다 > 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가 됐다. '인간성이 남아 있는 좀비'라는 야심만만한 소재에 도전했지만 도전 그 이상의 의미를 성취하지 못했고, '모성 코드'를 이용해 시청자가 수연 일행을 응원하게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결말에서 감동보다는 일말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좀비들에 대한 '학살', 또는 좀비처럼 보이지만 아직 인간성이 남아 있는 존재에 대한 '살인'이 정당한 것인가, 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져놓고 흐지부지 이야기를 봉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공중파 드라마라는 한계, '슈퍼 좀비'라는 설정상의 무리수로 인해 좀비물 특유의 장르적인 쾌감과 재미도 극대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 나는 살아있다 > 는 볼만한 드라마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선경의 연기가 반갑고, 전반적으로 어두운 드라마에서 의외의 웃음을 담당한 전병철과 윤원석의 콤비 연기가 맛깔나다. 짧은 머리와 제복을 입은 모습이 썩 잘 어울리는 백도빈도 캐릭터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존재감 하나로 드라마에 무게를 더했다.

기존 웰메이드 좀비물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 나는 살아있다 > 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독특한 관극 체험을 선사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인이 주인공인 좀비물이 어디 흔한가? 이 드라마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른바 한국 최초의 좀비 드라마가 갖는 프리미엄이다.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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