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실린 '혈액형 이야기'.. B형 남자 제멋대로?
[[오마이뉴스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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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B형 O형 AB형이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AB형이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O형이 궁금함을 못 이기고 AB형을 쫓아나갔다. B형은 먹던 밥을 계속 먹었다. 그러자 A형이 B형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쟤네 나 때문에 나간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이 우스갯소리는 매우 간단명료하게 혈액형별 성격의 핵심을 찌른다. 속을 알 수 없는 AB형, 호기심 많은 O형, 고집 센 B형, 소심한 A형에 대한 묘사는 한국인에게 꽤 익숙한 편이다.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기 전에 "너 무슨 형이야?"라고 물어보던 어린 시절부터, 헤어진 애인을 타박하기 위해 "역시 B형은 안돼"라고 둘러대는 것까지. 혈액형은 종종 사람을 설명하는 그럴 듯한 요인이 되어줬다.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유행도 타지 않는다. 개그와 영화, 만화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이 흥미로운 '피 이야기'는 지난 9월 초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26일 < 혈액형과 성격 > (다은출판사, 2011)을 출간한 SBS 오기현 PD의 글이다. 그는 2006년 < SBS 스페셜 > 에서도 '혈액형과 성격'을 주제로 하는 에피소드를 연출한 적이 있다.
오기현 PD를 28일 오후 목동 SBS 앞에서 만났다. 오며가며 몇 번 인사를 나눈 그는 차분하면서도 꼼꼼해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뗀 그는 어려운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기자는 그가 A형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만난 오 PD는 여전히 첫 인상 그대로였다. 그의 혈액형은 무엇일까?
한 편의 '한일탐사 다큐멘터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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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현 PD는 < SBS 스페셜 > 을 위해 2006년 이른바 '혈액형 성격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일본으로 취재를 떠났다. 당시 일본은 아침마다 혈액형으로 보는 운세를 방송하고, 혈액형으로 병을 치료하는 병원과 혈액형 별로 반을 나눈 유치원이 존재할 정도였다.
제작진은 혈액형별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오오이 보육원에서 각 반에 블록장난감을 나눠주고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각 반의 담임교사들은 '조용히 노는 A형' '마음에 드는 아이끼리 모여 노는 B형'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O형'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AB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카메라에 담긴 아이들의 모습은 설명대로인 듯했다. 하지만 촬영시간이 10분을 넘어서자 모든 반의 노는 모습에 차이가 없었다. 오기현 PD는 "한국에 돌아와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도 같은 실험을 해봤지만 혈액형별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혈액형 강조하는 일본의 검은 속내?
일본에서 제작진은 혈액형에 관한 책을 100권 넘게 발행한 '혈액형 인간학 연구소'라는 곳도 찾아갔다. 원장 노미 도시다카는 아버지인 노미 마사히코의 일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노미 마사히코는 1971년 <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궁합 > 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혈액형은 곧 히트 상품이 됐다. 재밌는 것은 그가 의사도, 심리학자도 아닌 방송작가 출신이었던 것. 그는 대중의 흥미를 끌 요소가 필요했고 30년 전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행한 혈액형론을 끄집어냈다.
혈액형 성격론의 시작은 1880년대 우생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를 유전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우생학은 '아시아인종이 유럽인종에 해를 끼친다'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유럽인은 A형과 O형이 많고 아시아인은 B형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오자, 이를 B형 열등론으로 발전시켰다.
이 이론은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일본인은 서유럽처럼 A형과 O형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특히 노미 마사히코는 저서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B형과 AB형이 많다"며 "혈액형 분포상의 특성이 그 나라의 국민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는 연구과제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적었다. 오기현 PD가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기 시작한 것은 이처럼 검은 속내가 빤히 보이는 일본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혈액형 성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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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혈액 속에서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발견된 적이 없다. 둘 사이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혈액형 성격론이 설득력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오기현 PD는 "심리현상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당신은 타인에게 존경받기를 원합니다" "평소에는 게으른데 좋아하는 일에는 집중합니다" 따위 문항의 성격이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싶은 사람은 누가 있나. 좋은 일은 누구나 열심히 한다. 이것이 보편적인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징이라고 믿는 '바넘현상'이다. 이외에 믿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확인편파', 자기최면인 '자기충족적 예언'과 같은 심리효과가 혈액형 성격론을 지탱한다. 여기서 문제는 '소심한 A형'이라는 평가에 맞게 소심해지거나, 'B형은 제멋대로일 것'이라는 등의 편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혈액형 O형과 B형이신 분만 지원주세요, 다른 형은 지원 삼가 바랍니다. 다른 형은 추진력이 없어요"
오기현 PD는 혈액형으로 인한 잘못된 편견의 사례로 엉뚱한 채용 공고를 보여줬다. 실제로 대전의 농협중앙회 한밭사업단이 공제보험 담당 직원을 모집하면서 지원자의 혈액형을 중요 지표로 삼았다. 이 공고는 네티즌의 거센 항의로 3일 만에 취소됐다.
결론적으로 < 혈액형과 성격 > 은 시중에 나와 있는 '혈액형 심리테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혈액형 성격론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인간 차별에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듯이 혈연에 유난히 집착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혈액형과 성격은 앞으로도 쉬이 떨어져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혈액형(Blood Type)을 묻자 당황하며 "레드 타입(Red Type)"이라고 답하는 서양인과 구직 이력서에까지 혈액형을 적는 우리나라의 혈액형에 대한 관점에는 확실히 문화 차이가 존재한다.
고백하자면, 인터뷰를 준비하며 오 PD를 A형이라고 생각했던 기자도 어느새 그가 소심한 성향인지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AB형이었다.
< 혈액형과 성격 > 왜 집필하게 된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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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하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준비해야 하니까 자료 축적을 잘 안 해요. 방송 하면서 늘 아쉬웠던 부분이에요. 최근에 제가 대학원을 다녔는데 남한 방송사들의 방북 대중공연의 내용과 효과를 연구하면서 KBS와 MBC 6개 프로그램을 분석했는데 자료를 갖고 있는 PD가 거의 없었어요. < 혈액형과 성격 > 은 < SBS 스페셜 > 을 만들면서 준비했던 자료들을 모아 만든 책이에요. 중요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꼭 책이 아니더라도 자료는 반드시 모으려고 해요. 그런데 마침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으니 재밌죠. 집필자에게 물어봤더니 "아이들이 혈액형에 관심이 많아서 글을 채택했다"고 하더라고요. 과거에 교과서는 명망가나 저명인사의 글을 실었는데 이제는 현장성을 담은 PD의 글도 싣는 것을 보니 시대가 많이 바뀐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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