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은희경 .. 느슨해지고 싶다는, 빈틈없는 그녀

신준봉 2011. 9. 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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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검객처럼 허위의식의 급소를 찌른다고요?소설은 빈틈없이 쓰려 해요, 그래서 산문집에 허술한 모습을 담았죠적나라하게 나를 노출하는 거라 부담됐지만 .. 배짱이 생긴 걸까요소설의 진지함과 산문의 유쾌함, 둘 다 제 모습이랍니다

[중앙일보 신준봉.권혁재]

통과의례와도 같이 챙겨 읽는 소설이 있다. 적어도 1990년대 후반 이 땅의 독자들에게 은희경의 장편 『새의 선물』이 그랬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소설 속의 이런 문장은 경구(警句)처럼 독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열두 살 소녀 진희가 뱉어내는 당돌한 발언, 그의 눈에 비친 지리멸렬한 어른들의 세계, 아폴로가 달에 착륙했던 69년이나 한국이 첫 인공위성 무궁화호를 쏘아올린 95년이나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는 허무의식 등등.

'가차 없는 시선'으로 얘기되는 은씨 특유의 조롱과 야유는 둔감한 독자들의 의식을 각성시켰다. 누구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조숙한 아이'를 일깨웠다. 95년 출간돼 70만 부 넘게 팔린 소설이 요즘도 쇄(刷)를 거듭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새의 선물』 발표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은희경. 올해 그는 쉰둘이다. 20년 가까이 작가의 길을 달려오는 동안 그는 슬럼프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이제는 여유가 생긴 것일까. 지난해 여섯 번째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내며 "빈틈 없는 소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쓰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는 첫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달)을 냈다. 꾸미지 않은 속내를 툭 털어 내보인 것이다. 그래서 은씨를 만났다. 우리는 한두 번쯤 그에게 소설 선물을 받은 적 있지 않은가.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평론 중 2002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의 글이 인상 깊다. 2001년 발표한 장편 『마이너리그』에 붙은 해설이다. 긴 해설을 다 옮길 수는 없다. 요약하면 이렇다.

'날씬한 여검객을 연상시키는 은희경의 냉소적인 시선은 얼핏 농담이나 유연한 풋워크처럼 보이지만 시종 급소를 찍어 누른다. 급소는 인물들의 허위의식, 자기합리화, 통념, 편안함에의 들척지근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 그의 검은 찌르되 깊게 찌르지는 않는다. 핏방울이 돋아나는 정도. 여기저기 돋아난 핏방울이 만드는 문양은 허위의식의 지도 같은 것이다. 지도의 독법을 익힐 때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우리의 허위의식의 지도이기에.'

글의 맵시, 표현의 통렬함 등에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은희경 소설에 대한 평가는 대략 이성욱의 해설 부근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은희경은 심각하고 진지한 작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 은씨가 산문집, 그것도 팔랑거리면서도 감성적인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산문집을 낸 건 일종의 사건이다. '문학적 커밍아웃'이랄까.

-첫 산문집이다.

"등단 이후 쓴 짧은 글이 꽤 된다. 언젠가 책 낼 생각이 있었지만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이번 산문집은 인터넷에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할 때 함께 써서 독자들에게 매일 보냈던 편지를 주로 모은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 글을 묶는 색다른 산문집이라면 오히려 부담 없이 낼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걱정은 됐다. 나를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거 아닌가. 벗지 않겠다는 여배우가 갑자기 노출신 열심히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내가 배짱이 생긴 거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야겠다는 욕심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

-반응은 어떤가.

"가볍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실제로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는 산문집에서처럼 자유롭게 지낸다. 소설은 항상 정확하고 빈틈없이 쓰려고 하는데 산문집에서 허술한 모습을 보여준 거다. 하지만 산문집 속의 모습으로 나를 제한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는 그런 면도 있고 진지한 면도 있는 사람이다."

-책이 나온 지 한 달 반쯤 됐다. 얼마나 팔렸나.

"2만5000부 정도 찍었다."

-고정 독자층이 있나.

"'은희경 매직 서커스 유랑단'이라는 이름의 다음 팬 카페가 십수 년 전 만들어졌다. 초창기 대학생이던 회원들이 아이 아버지, 어머니가 됐다. 지금도 활동하는지는 모르겠다. 한번은 이 팬 카페 초청으로 야유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작가라고 특별대우해 주지도 않고 말 그대로 대학생 MT처럼 술 마시다 자는 분위기였다. 예의나 형식 차리지 않는 스스럼 없는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다."

-산문집에는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도 꽤 있다. 상당히 공들여 쓴 트윗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길을 가다가도 항상 좋은 문장을 생각하곤 한다. 메모를 잘 하지 않으니 문장이 떠오르는 대로 트위터에 올리게 되더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적 있지 않나.

"2009년 작품 '첩첩산중'에 '소설가 은희경' 역으로 출연했다. 집으로 찾아온 작가 지망생 여성에게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하는 단역이다. 이틀 동안 찍었는데 재미있었다. 요즘 문예지 '창작과 비평' 연재 중인 장편 '태연한 인생'에 당시 경험이 나온다."

-소설은 물론 이번 산문집에서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는 '너'라는 대상이 자주 나온다.

"한 작품에는 작품을 쓸 당시의 내가 있다. 누구랑 친했고 어딜 자주 갔고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가 고스란히 남는다. 글에 등장하는 '너'가 애인 아니냐는 오해를 받곤 하는데 대상은 그때그때 다르다. 여자 친구인 때도 있었고 가족, 아이인 적도 있었다. 우리 집안이 친애성(親愛性)이 있는 편이다. 다감한 마음 말이다. 그래서 그런 대목이 자주 나오는 것 같다."

-30대 중반에 불현듯 삶에 속았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고 작품 써서 소설가가 됐다는 얘기가 너무나 유명하다.

"난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사회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원하는 정답에만 맞춰 살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깨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어느 날 갑자기 들었다. 그걸 알아보기 위해 소설가가 됐지만 그때까지의 내 인생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내게 소설 쓰기는 스스로의 고유성을 각성하기 위한 거다. 독자들에게도 그런 나의 모습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새의 선물』을 보면 소녀 진희가 어려서 커다란 고통을 겪은 결과 냉소적이게 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사람마다 고독이나 고통을 느끼는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자기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 고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기도 하는 것이어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나는 소설 주인공을 고통으로 울부짖거나 하게 하지 않는다. 참는 것으로, 반어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산문집도 나왔는데 요즘은 좀 한가한가.

"소설가가 이렇게 바쁠 줄 몰랐다. 10월부터 3개월 일정으로 스페인에 간다. 한국문학번역원 체류 프로그램이다. 그때까지 문학상 심사에 강연에 일정을 너무 많이 잡아놨다. 왜 그랬나 괴로워하고 있다."

글= 신준봉 기자 < informjoongang.co.kr >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shotgunjoongang.co.kr >

은희경은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전주에서 중·고등학교 다님.

숙명여대 국문과,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돼 등단.

같은 해 첫 장편 『새의 선물』로 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소설집 『상속』, 장편 『마이너리그』『비밀과 거짓말』 등.

-동서문학상·이상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이산문학상·동인문학상 등 수상.

[시시콜콜] 『새의 선물』 원래 제목은 …

'연애 대위법' 딱딱하다고 해 바꿨죠 … 그런데 '새의 눈물'로 기억하는 독자가 많네요

은희경의 소설 제목은 감각적이고 친근하게 와 닿는 '문장형' 제목이 많은 편이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이 그렇다.

대표작 장편 『새의 선물』은 원래 은씨가 생각했던 제목이 아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 제목에서 따서 '연애 대위법'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부하고 딱딱한 제목이어서 역설적이고 희극성이 담긴 소설 내용이 가릴 수 있다"며 주변에서 말렸다.

은씨는 시집을 펼쳐 들었다. 시집을 특별히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언어를 다루는 참신한 발상을 배울 수 있어 기회 날 때마다 찾는 편이다. 20세기의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 『새의 선물』 맨 앞에 실린 시 '새의 선물'의 전문은 이렇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알쏭달쏭한 내용이다. 은씨는 "뭔가 시의 이미지가 내 소설 속 소녀의 태도와 비슷한 것 같아서 이걸 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소설 제목을 '새의 눈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웃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도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시(長詩) 『두이노의 비가』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대목이 나온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권혁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shotgun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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