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덕수궁 석조전 복원 논란 잠재운 1898년 설계도

[중앙일보 이경희] 19일 오전 배재대 건축학부 김종헌 교수의 e-메일을 받았다. "문화재청이나 학계가 도면을 구하려 노력했는데 한 개인연구자에 의해 발굴돼 부끄럽기도 하고, 다행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건축공학자 김은주 박사가 영국인 건축가 J R 하딩이 1898년 작성한 덕수궁 석조전(石造殿)의 최초 설계도를 찾아냈다는 본지 보도(8월 18일자 1, 8면·사진)에 대한 촌평이었다.
석조전은 스러져가던 국운을 되살리려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고종 황제의 명으로 세워진 서양식 궁궐이다. 하지만 고종의 염원과 달리 나라는 이내 일본에 빼앗겼고, '시대의 목격자' 석조전 역시 이후 미술관·박물관으로 쓰이면서 크게 변형됐다.
석조전은 근래에도 몸살을 앓았다. 건물 내 궁중유물전시관이 2005년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하자 미술계는 현대미술관으로, 문화재청은 원형을 찾아 '대한제국 역사관'(가칭)으로 써야 한다며 충돌했다. 문화재위원회는 2008년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문화재청은 이듬해부터 원형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최초 설계도나 평면도는 찾지 못한 상태에서였다. 건물을 뜯어보고 원형을 80% 가량이나마 파악하는 수준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 보였다.
하지만 김 박사의 연구로 석조전은 원형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최광식 문화재청장은 이번 자료를 복원 공사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22일 김 박사,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기존 공사 상당 부분을 뜯어내야 할 판이지만 '졸속 복원'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우리는 문화재가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것에만 울분을 토하곤 한다. 하지만 김 박사는 "석조전의 원형이 가장 크게 훼손된 건 1980년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변경하면서"라고 지적했다.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무신경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석조전은 문화재 복원에 대한 중요한 잣대를 환기시킨다. 충분한 근거 없이 이뤄지는 추정 복원은 문화유산을 다시 한번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료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큰 근대유산의 복원은 '속도전'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역사의 빈틈을 채울 연구·조사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dunglejoongang.co.kr>
▶이경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zang2ya/
▶ 김정일, '기쁨조 관찰용 CCTV'서 김정은 생모 본 순간…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