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로켓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8)
[중앙일보 김형근]

미국의 달 탐사계획인 아폴로 프로젝트는 사실상 로켓공학의 아버지 폰 브라운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he dangers that face the world can, every one of them, be traced back to science. The salvations that may save the world will, every one of them, be traced back to science. 세상이 당면하고 있는 위험들, 그 모두는 과학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들, 그 모두 역시 과학일 수 있다." -이삭 아시모프, 러시아 출신의 미국 SF 작가-
세상에 위험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역사는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과학이 이미 만들어낸 숱한 문제는 이제 다시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 인류가 원하는 과학은 구원과 자비의 과학이다. 그를 외면하는 것이 바로 위험한 과학이고 위험한 과학자다.
폰 브라운과 그의 핵심적인 과학기술자들은 앨라배마, 헌츠빌의 레드스톤 아스널로 이주해 정착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A4를 개량한 레드스톤 미사일과 주피터 미사일, 퍼싱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1960년 폰 브라운과 독일인으로 구성된 핵심연구팀은 다시 마셜 우주비행센터에 있는 미우주항공국(NASA)로 이주했다. 당시 이곳에서는 미국의 유인우주선 발사용 로켓 '새턴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기술시스템 전체를 고스란히 옮겨 설치한 것은 유례 없는 일"
과학저술가로 폰 브라운과 친하게 지냈고 훗날 스미소니안 NASA박물관 우주역사담당 책임자가 된 마이클J. 뉴펠트는 "기술 시스템 전체를 패전국에서 승전국으로 고스란히 옮겨 설치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별한 경우일 것"이라고 기술한 바가 있다.
레드스톤에서 자리를 잡은 폰 브라운은 미사일 연구개발에 관해 핵심기술자들을 '한 지붕 아래 모이기' 원칙을 재점검했다. 그리고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일부 시스템에 대해서는 하청을 주기도 했다.
폰 브라운이 지휘한 미사일 연구에서 빠진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노예 노동력일 것이다. 그러나 강제 수용소에서 제공된 것과 같은 노예 노동력에 상당하는 노동력은 미국에서는 이미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46년 '페이퍼클립 프로젝트'가 오버캐스트 프로젝트를 대체했다. 새 프로젝트는 적국 독일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장기적으로 활용하고, 나치 전범 처리에 관한 트루먼 대통령의 원칙을 강화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 과학자와 기술자는 전범에서 제외시켜라"
다시 말해서 독일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전범분류에서 제외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따라서 미국이 필요한 독일 과학자들은 나치와의 협력이나 동조여부와 관계 없이 선량한 이민자로 대우받아야 하며, 또한 미국입국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무려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일본의 세균전부대 731부대에도 해당됐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마루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넘겨받는 대신 어느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체실험정보가 훗날 미국의 의학 및 약물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부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비밀에 싸여 있으며 정확히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부대를 이끈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石井) 중장도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 전쟁 후 대학 학장까지 지냈다.
미국의 나치 전범 조사팀이 미텔바우-도라 수용소에서 인체실험을 비롯해 잔인한 노예노동에 대한 증거와 증인을 찾는 일에 착수했을 때 토프티 대령은 자신이 접수한 V1, V2 로켓과 관련된 독일 기술팀은 수사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미국은 모든 책임을 나치 친위대에 전가했다. 그리고 합성화학물질 생산공장인 도라에서 자행된, 잔인한 노예노동력 착취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은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독일 과학자들을 고용한 미국의 무기산업체들도 그들을 기꺼이 변호했다. 냉전이 심화될수록 그들의 건망증은 더해 갔다.
독일의 페네뮌데 헌츠빌에서 재탄생
독일의 페네뮌데는 미국의 헌츠빌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미국의 대항공기 미사일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연구개발의 핵심기지였다. 어떤 독일 기술자는 농담 삼아 헌츠빌을 페네뮌데 남쪽지역이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일하는 나치 엔지니어 수가 나중에는 500명까지 늘었다.
그렇다면 나치의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이에 대해 < 히틀러의 과학자들 > 의 저자 존 콘웰 교수는 이렇게 답변한다.
"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나치의 기술적 노하우를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치 과학의 범죄성을 중요한 역사로 기록하고 있는 우리가 서방세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미사일이 사실은 노예 노동력이라는 이름의 인간이 흘린 피의 대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가 아직도 상처처럼 고여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그러한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 나치의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런던에 착륙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나요?

우주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나치 과학의 중심에 있던 폰 브라운의 범죄성은 로켓공학의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서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최근 우주 탐사경쟁이 치열하다. 불모지대나 다름 없는 달에 물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생명체흔적도 발견했다는 뉴스도 있다. 우주의 비밀이 점점 밝혀지고 있고, 인류의 비밀 역시 밝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눈부신 우주과학의 문을 활짝 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과학자가 바로 나치 과학자이자 로켓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그렇다면 폰 브라운을 위험한 과학자로 '찍어내어'이제까지 그의 잘못을 늘어놓은 것은 혹독한 처사인지도 모른다.
아폴로 달 탐사선이 발사되기 하루 전의 일이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나치의 로켓폭탄이 런던 중심에 떨어져 시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던 생생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한 기자가 폰 브라운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만든 아폴로 탐사선이 런던에 착륙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을 받은 폰 브라운은 곧바로 얼굴을 붉히며 기자 회견장에서 큰 걸음으로 빠져 나와 승용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황급히 떠났다.
김형근 칼럼니스트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