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우봉 안지호 의사 유허비 제막식 가져

2010. 12. 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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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항거한 의사의 애국정신 받들어

생전에 기거하던 가야읍 신음리에 세워

일제에 항거한 우봉(藕峯) 안지호(安智鎬) 의사(義士)의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21일 오전 11시 제막식이 열렸다.

유허비건립추진위원과 후손, 하성식 함안군수와 조진래 국회의원, 도 및 군의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경과보고에 이어 조훈래 유허비건립추진위원장의 인사말씀과 하 군수와 조진래 국회의원, 김석만 의장 등의 추도사가 있었다.

이어 참석자들의 비 제막이 진행됐으며 안수향 부위원장의 고유문 낭독이 있었고 안지호 의사의 증손자인 안희주씨의 유족대표 인사말과 기념식수가 이어졌다.

가야읍 신음리 861-2번지 일원에 세워진 유허비는 총 높이 4.39m이며 비신의 높이는 2.44m, 폭은 84cm이다. 높이 1m, 폭 1.2m의 이수는 정면의 용의 문양, 옆에는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높이 75cm, 폭 1.4m, 길이 2.6m의 귀부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이며 하단에 부대석이 마련됐다.

비문은 「藕峯安智鎬義士遺墟碑」로 새겨졌으며 당초 지내시던 생가가 경주마휴양조련시설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인근 도로변에 의사의 정신을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웅장하게 세웠다. 유허비 옆에 따로 높이와 폭이 1.5m인 취지문비를 세워 유허비를 세운 뜻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안지호 의사는 1857년 9월 21일 고성군 고성읍 풍화리에서 태어나 대산면 옥렬리에서 자랐으며 가야읍 신음리에서 지내시다 나중에 대산면 산서리(現 가야읍 산서리)로 옮겼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했다.

1913년 여름 경상남도지사에게 도정이 부패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발송했고 1915년 9월에는 우리의 원수 일본이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고 약속을 어겼다는 탄원서를 마산경찰서장과 일본정부에 발송하여 구류 15일을 살았다.

1917년 12월 일본은 도적의 마음으로 백성을 포악하게 다스린다는 규탄의 글을 써서 함안경찰주재소의 유리창을 파괴하고 투입하여 감옥에 갇혔으며 풀려난 후 다시 조선총독부에 필리핀, 폴란드가 독립했으므로 조선도 독립되어야 한다는 독립청원서를 제출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전국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함안으로 돌아온 후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는 등 함안읍의거를 주도했다.

1919년 3월 19일 합안읍의거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소지하고 함안군청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들어가다 가장 먼저 유치장에 수감되었으며 유치장 안에서 '도적놈들아'를 수십 번 외치고 대한독립만세를 수백 번 외치니 시위군중이 주재소를 파괴하고 의사를 구출했다.

군중과 함께 군청과 주재소를 파괴하고 우편국, 소학교 및 보통학교, 등기소를 돌며 기물을 파손했으며 군수의 관복을 찢고 경찰서장과 일본관리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피신을 권하자 의사(義士)의 도(道)가 아니라고 거절했다. 2∼3인이 체포되자 그들은 죄가 없으니 나를 체포하라며 자진해서 체포됐다.

법원에서 심리 때에도 일본은 우리 군부(君父)를 시해하고 우리 동포를 살해하기를 수백 명이 되어 나는 통곡하고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다며 군청, 경찰 주재소 등 도적놈의 소굴에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당여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지청 마산지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으며 항고하여 대구복심병원에서 징역 7년의 가중형을 받았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기각됐다. 1921년 12월 23일 마산형무소에서 향년 65세로 순절했다.

1925년 전국유림향약본부에서 표창완의문으로 지사의 충의를 기리었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으며, 서울 서대문형무소 독립관에 의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산면 옥렬리 이열마을에는 추모비가 세워져 의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끝)

출처 : 함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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